<조명(照明)> KBS「역사추리」, 광주毒針術의 진상

1996. 5. 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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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聯合)) 徐漢基기자= 12.12 및 5.18사건 법정공방으로 지난 16년간 베일에 감춰져 있던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체적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신군부에 의해 저질러졌던 또하나의 의혹인 `광주독침사건' 진상이 방송사상 처음으로 본격 조명돼 관심을 끈다.

KBS 1TV「역사추리」가 오는 17일 오후 10시15분에 내보내는 `광주독침설의 진상'(가제)이 그것.

`광주독침사건'이란 광주민주화항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80년 5월25일 전남도청 시민군에 끼어있던 장계범이란 인물이 독극물에 감염돼 전남대 부속병원에 실려갔다는 보도가 나가면서 갑작스레 부각된 사건.

이 사건은 공교롭게도 이날 서울역에서 독침을 소지하고 있던 이창룡이란 남파간첩이 광주로 내려가려다 붙잡혔다는 언론보도와 맞물리면서 더욱 부풀려져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의 선동.사주를 받아 폭도들에 의해 저질러진 폭동이라는 여론이 조성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은 이해하기 힘든 몇가지 의문들 때문에 신군부측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우선 장계범이란 인물은 이날 입원하자마자 아무 이상이 없다는 듯이 바로 퇴원해버려 진짜 독침을 맞았는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당시 주위에서는 그가 도청을 빠져나가기 위해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소문이 한참 나돌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시민수습위원회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항쟁에 "빨갱이가 개입했다"는 헛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의견분열이란 진통을 겪으면서 실제 시민군에서 이탈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등 잠시 동요하는 모습을 띠었으며, 계엄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 다음날인 26일 바로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리고 이후의 결과는 다 알려졌듯이 계엄군에 의한 27일의 도청함락으로 이어 졌다.

이외에도 그는 시민군이 상무대 연병장으로 끌려갔을 때 복면을 한 채 등장, 핵심 지도부를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신군부에 협조했다는 프락치 의혹을 받고 있다.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그가 별다른 이유없이 이내 풀려나온 대목은 그에 대한 프락치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또한 이창룡이란 간첩도 체포된 뒤 얼마 안 있어 고정간첩단을 검거하는데 기여했다는 이유로 슬그머니 풀려나는 등 이 두 사건은 이상하리만치 흐지부지 마무리되며 사람들의 관심권에서 사라졌다.

이 두사건의 연결고리를 끈질기게 파헤쳐온 '광주독침설의 진상' 연출자 윤태호PD는 "광주시민들은 5.18항쟁에 북한의 불순분자들이 개입했다는 여론호도성 보도에 극도의 경계심을 보였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한 뒤 "신군부는 도청내에서 독침사건이 났다는 거짓 정보를 언론에 흘림으로써 시민군의 분열을 유도하려고 했을 뿐 아니라, 광주항쟁의 성격을 무자비한 폭도에 의한 유혈폭동으로 몰고가려 했다"고 신군부의 독침조작설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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