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하고 있는 내 나이가 어때서

중림동 새우젓 입력 2015. 7. 4. 18:28 수정 2015. 7. 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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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술 마시다가 아이돌 얘기를 하게 됐는데, 신화창조(신화 팬클럽)인 친구가 하는 말이 '요즘 애들은 나이 먹은 남자들이 삭막한 사회 속에서 꿈을 잃지 않고 힘을 모아 음반을 내고 활동하는 멋진 아저씨 그룹이 신화라고 생각하고 있어'라는 말에 문화 충격ㅋㅋㅋㅋㅋ(@Haming_fry).'

트위터에서 이 글을 읽은 순간 잠시 멍해졌다. 그래, 시간이 많이 흐르긴 흘렀구나. 요즘 텔레비전 화면을 채우는 아이돌의 나이를 헤아려본다. 아마 그들의 부모님이 '썸'을 타실 때부터 나는 이미 덕후였을 거다.

하지만 이 '멋진 아저씨 그룹'에게 연예 정보 프로그램 리포터가 쏟아내는 질문은 몇 년째 똑같다. '격한 안무 소화하기 힘들지 않냐' '그룹의 장수 비결은?' '결혼은 언제쯤?' 정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신화 활동 기간 17년 내내 군복무를 제외하고는 계속 공연하고 신보를 내며 활동했는데, 그간의 음악적 발전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연예 '정보' 프로그램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저 '30대 아저씨'로만 바라볼 뿐, 시청자에게 아무런 새로운 정보를 주지 못하는 셈이다.

ⓒ이우일 그림

여자 연예인에게는 나이가 더 가혹한 족쇄다. 늙지 않는 만화 속 인물(잊지 말자, <슬램덩크>의 채치수는 지금도 열아홉 살이다)이 아니고서야 우리는 다 같이 나이를 먹는다. 하지만 여자 연예인은 나이 듦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억척 아줌마로 이미지 변신을 하거나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기로에 놓이는 것 같다. '40대 맞아? 나이 잊은 미모' 따위 기사 제목들이 단적인 예다. 나는 그런 말이 그 연예인에 대한 찬사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새롭게 발현되는 재능은 모두 미뤄두고, 오로지 늘 젊고 예쁠 것만을 요구하는 강박처럼 느껴진다.

장르는 달라도 사랑하는 마음만은 같은 덕후들이여, 통하였느냐

나이가 족쇄가 되는 건 덕후도 마찬가지다. 덕후의 DNA 염기 서열이 조금 다른 것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 주변에는 덕질을 안 해본 사람은 있을지언정 한 번만 한 사람은 없다. <밍크> <파티> <나나>를 나눠 읽던 이는 <뉴타입> 휴간 소식에 가슴 저며 한다. 좋아하던 선수가 다시 감독이 되어 팀으로 돌아오는 그 긴 시간에 늘 같은 등번호의 유니폼을 고집하는 이도 있다. 장르는 달라도 무언가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은 같기에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잘 모르는 분야의 이야기라도 즐겁게 들어준다. '취존(취향 존중)'이 덕후들의 미덕 아니던가. 문제는 머글과의 대화다. 신나게 눈을 빛내며 이야기를 하던 도중, 문득 '너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그런 걸 좋아해?'라는 비아냥 섞인 반응이 돌아오면 좀 억울해진다.

중·고생 때는 공부에 전념해야 할 시기라면서, 부모님이 주신 용돈 허투루 쓰지 말라고 눈치를 주지 않았던가? 성인이 되어 비로소 내 땀 흘려서 번 돈으로 가열차게 덕질 좀 해보려고 하니까 이제는 나이 운운하는 소리를 듣고 만다. 그렇잖아도 학생 때는 직장인들의 돈이 부럽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학생들의 시간과 체력이 부러운데 말이다. '네 나이가 지금 몇 살인데 아이돌에, 애니메이션에, 프라 모델에, 스포츠에, 전자 기기에 빠져 있느냐'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리어 '당신 나이는 지금 몇 살이기에 여태껏 남을 존중하는 법도 못 배웠느냐'라고 되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덕질'만이 아니라 인생에서 무엇을 하기에 적당한 시기 같은 건 따로 없는 듯하다. 그냥 내가 간절히 원할 때, 온 마음을(물론 우주까지는 나서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한곳에 쏟아 붓고 거기에서 오는 즐거움을 누리면 그뿐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 덕질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중림동 새우젓 (팀명) /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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