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시장 위의 재벌..영향력 규제 못하면 허울뿐인 민주주의"

입력 2015. 7. 1. 10:20 수정 2017. 2. 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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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 합동토론회] 신광식·김상조 대표 발제
정부지배력 쇠퇴..재벌이 빈틈 대체
경제 외 사회전반 과도한 영향력
낙수효과·국민경제 선순환 실종
보수세력에 밀려 경제민주화 실패
진보·보수 모두 진영논리에 매몰
경기규칙 안으로 재벌 끌어들여야

[한겨레]

‘보수와 진보, 함께 개혁을 찾는다’를 주제로 국가미래연구원, 경제개혁연구소, 경제개혁연대가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대회의실에서 연 합동토론회에서 신광식 연세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가 ‘재벌과 민주주의·시장경제의 조화’에 대해 발제하고 있다. 맨앞부터 이혜훈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좌승희 케이디아이(KDI)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신광식 교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 이사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 최정표 건국대 교수, 김진방 인하대 교수.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30일 처음 열린 ‘보수-진보 합동토론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신광식 연세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와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재벌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위협이 되고 있고, 재벌 성장의 ‘낙수효과’(재벌 등 선도 부문의 성과가 커지면, 후발·낙후 부문에도 과실이 떨어지는 효과)가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 진단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이뤘다. 또 시장과 정부 간의 조화로운 역할을 중심으로 한 재벌정책 방향과 잘못된 진영논리의 극복 필요성에도 목소리를 같이했다.

■ 재벌의 민주주의·시장경제 위협

신광식 교수는 “대기업과 이익집단들은 경제력을 기반으로 경제뿐 아니라 정치, 문화, 언론, 사법, 학계 등 사회 전반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의 이익을 보호·강화한다”면서 “이들의 영향력이 규율되지 못하면, 민주주의 이상은 허울”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정부는 강력한 산업정책을 통해 재벌 기업을 지원·육성했고, 이 과정에서 정치인과 밀접한 연계·보상의 관계를 형성했다”면서 “이런 정치와 재벌의 관계로는 우리 경제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관행화한 범법 기업인들에 대한 집행유예·가석방 ·사면 등 느슨한 법집행과 특혜를 대표 사례로 꼽았다.

김상조 교수는 “1987년의 정치 민주화를 거치면서 정부의 지배력은 점차 쇠퇴했고, 재벌이 빈틈을 대체해 나가기 시작했다”면서 “정부를 대신해 자원배분의 중추 역할을 담당해야 할 금융·자본시장은 여전히 과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재벌이 정부의 통제는 물론 시장의 규율도 받지 않는 경제권력으로서 자리잡았다”고 진단했다.

■ 재벌 낙수효과 실종

김상조 교수는 “과거 재벌의 성장이 낙수효과를 통해 국민경제 전체로 선순환 하는 효과가 강하게 나타났지만 지금은 기존 재벌의 기득권 구조가 공고해졌고, 개천에서 용 나는 식의 새로운 대기업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1980년대 말에 노사분규와 임금상승을 경험한 대기업들이 품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공정에서만 직접고용을 유지하고 범용공정은 중소 하도급업체에 외주를 주는 간접고용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대-중소기업 간 격차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심화시켰다. 성장과 분배가 악순환에 빠졌다”고 짚었다.

신광식 교수는 “우리나라는 1965~1990년에 고속의 동반성장을 했고, 재벌들이 산업화와 경제성장에서 중심 역할을 했다”면서 “그러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지금, 우리는 저성장과 양극화에 빠져 있고, 소득 불평등이 성장을 저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 경제민주화 실패

신광식 교수는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은 경제민주화를 강조한 보수 후보를 선택했지만, 재벌 중심의 보수 기득권 세력은 이를 강하게 반대했다”면서 “결국 경제민주화는 좌초했고, 재벌들은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교수는 “당시 문재인 후보는 박근혜 후보에게 경제민주화 이슈의 주도권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성 측면에서도 신뢰를 받지 못했다”면서 “문 후보는 선명성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선명성이 신뢰를 얻는 데 장애가 됐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한국 진보진영은 모든 현안에 대해 바로 선명한 구조 교정 수단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타성으로 굳어져, 오히려 실현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 재벌정책 방향

신광식 교수는 “시장이 대다수 국민에게 이익이 되도록 형성·작동하도록 하는 포용적 성장을 이뤄야 한다”면서 “시장이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함으로써 성장을 달성하면서도 시장에서의 소득분배가 더 공정해지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국책연구기관의 독립성 보장, 경제적 약자를 위한 집단소송제 도입과 징벌적 손해배상제 강화, 사외이사제도 개선, 경쟁적 언론시장 조성, 공정한 법치를 강조했다.

김상조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성장·저소비·고실업·고위험·규제강화·미국의 역할 축소 등이 세계경제의 새로운 정상 상태가 됐다”면서 “낙수효과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 성장모델을 확립하려는 노력이 바로 경제민주화이고, 그 출발점이 재벌개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재벌개혁은 재벌이 시장과 사회가 정한 경기규칙 안에서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면서 “경제민주화의 과제와 전략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고, 시장과 정부의 역할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잘못된 진영논리

신광식 교수는 “보수는 시장은 스스로 효율적으로 작동하며, 현실의 시장실패 대부분은 정부실패에 기인한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데 필요한 법·제도적 기반과 여건을 조성하는 데는 무관심하다”면서 “반면 진보는 시장의 힘과 효능을 무시하고 모든 시장실패를 정부의 규제·개입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정작 시장이 잘 작동하게 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재벌개혁을 비롯한 경제민주화는 혁명이 아닌 진화의 과정으로, 아무리 절박한 과제일지라도 세심하고도 신중하게 접근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신광식 교수

재벌 잘못된 관행…사회가 비용 치러

신광식 교수의 재벌진단
오너 체제 장점 사라지고 부작용만

재벌은 우리 경제의 고속성장을 주도한 기업조직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재벌 기업의 성공은 재벌이라는 한국식 기업집단 조직의 전반적 효율성을 반영한다. 하지만 현 경제여건과 시장상황은 과거 고속성장기와는 크게 다르다. 우리는 개도국 단계를 벗어났으며, 글로벌 경제와 지식기반경제에서 살고 있다. 자원의 국제적 흐름에 대한 장벽은 거의 다 사라졌고, 기업 활동은 세계화됐다. 기업집단 내부 시장을 통한 자원 동원과 활용의 필요성과 효율성은 대폭 축소됐다. 자원 동원보다는 진정한 창의와 혁신이 긴요한 상황이다.

흔히 재벌 총수(일가)는 ‘오너’라 불리며, 한국식 오너 경영이 재벌의 강점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오늘날 재벌 기업의 소유구조로 볼 때, 대다수 총수 일가는 오너가 아니라 대리인(전문 경영자)이다. 1983년 30대 재벌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17.2%이었는데, 2014년 40대 재벌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4.2%(최저 0.5%~최고 42%)다. 재벌 오너 경영의 장점은 사라지고, 총수일가의 내부거래를 통한 사익편취 등 대리인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이 대리인 비용은 총수일가의 경영권 유지·강화·승계 목적 등에 의해 증폭되고 있다.

재벌의 결함은 1997년 외환위기와 대규모 기업실패에서 드러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기업지배구조 개선, 순환출자 억제, 부당 내부거래 차단 등을 위한 여러 조치가 도입되었다. 하지만 총수일가의 내부거래 등을 통한 사익편취, 편법 증여·상속, 탈세, 횡령, 배임, 내부자거래, 주가조작, 회계분식 등 각종 비윤리적 행위가 여전하다.

일부 재벌의 성공을 배경으로 재벌들의 기존 경영방식과 행태가 옹호되곤 하지만, 재벌은 과거 방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재벌의 여러 관행은 우리 경제사회에 상당한 비용을 치르게 하고 있다.

정리/곽정수 선임기자

김상조 교수

이재용-참모 목표 달라……관리시스템 오작동

김상조 교수가 본 삼성 과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 결단 필요

삼성은 자신의 성공 요인을 ‘황금의 삼각 축’으로 설명해왔다. 총수의 리더십, 미래전략실의 기획력, 그리고 계열사 경영진의 전문성 등이 그것이다. 과거에는 이 삼각 축이 성공의 동력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3세 승계가 진행 중인 삼성에서는 ‘이재용 부회장 등의 총수일가’와 ‘미래전략실의 핵심 참모들’이 일종의 과도기적 집단지도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10년, 20년 뒤를 생각해야만 하는 이 부회장과 기껏해야 몇 년 또는 당장 눈앞의 일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미래전략실 임원 사이에는 유인구조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메르스 사태와 엘리엇 사태에 대한 삼성그룹의 초기대응 실패는 삼성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관리 시스템이 오작동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삼성이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출입 창구와 의사결정자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좁히고, 의사결정자의 권한과 책임을 최대한 일치시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에 대해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삼성(을 비롯한 많은 재벌)은 현행 제도 아래서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위해서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을 이유로, 결단을 미루고 있다. 대신에 사업재편이라는 이름으로 총수일가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작업을 계속 이어감으로써 시장과 사회의 기대로부터는 더욱 멀어졌다. 결국 헤지펀드의 공격을 자초하는 결과를 맞게 됐다.

지분 지배력으로 존경받는 최고경영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족한 지분을 채우는 것은 경영자의 비전과 리더십이다. 삼성이 한국사회에서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가 정한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존재임을, 총수가 ‘은둔의 제왕’이 아니라 시장과 소통할 의지와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이 짊어진 미래의 책임이다.

정리/곽정수 선임기자

[보수-진보 합동토론회 | 재벌과 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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