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뮤지컬, 그동안 참 잘했어요

2015. 7. 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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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빨래를 하며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뮤지컬 <빨래> 중에서) 지난달 14일 서울 대학로 동양예술극장. 뮤지컬 <빨래>의 10주년을 기념해 이 작품을 거쳐 간 배우 49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빨래터에 모인 동네 아낙들처럼 웃고 떠들며 지난 시간을 추억하는 이 자리는 한바탕 축제와 같았다. 2015년 한국 창작뮤지컬계는 축하하고 기념해야 할 일로 가득하다. <빨래> 10주년뿐 아니라 <사랑은 비를 타고>와 <명성황후>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베르테르>는 15주년이다. 한국 뮤지컬 산업화의 분기점을 브로드웨이 라이선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초연된 2001년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론 그보다 먼저 창작뮤지컬이 밑돌을 깔았던 셈이다. '특별한 해'를 맞아 일제히 기념공연에 돌입했거나 돌입할 예정인 이 작품들의 역사와 장수비결을 살펴봤다.

■ 살롱 뮤지컬 붐 일으킨 <사비타>

지난 1995년 9월20일 현대 토아트홀에서 첫 막을 올린 <사랑은 비를 타고>(사비타)는 화려한 무대장치나 소품 없이 단 3명의 배우만이 출연하는 작품이다. 7년 만에 재회한 두 형제와 한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형제애를 깊이 있게 다룬 <사비타>는 당대 최고 배우인 남경읍·남경주·최정원을 앞세워 젊은 층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초연부터 3개월 이상 장기공연을 펼쳤고, '살롱 뮤지컬'(소극장 뮤지컬)의 붐을 이끌었다. <사비타>의 성공 이후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등 소극장 창작뮤지컬이 잇따라 만들어졌다. 또 뮤지컬 제작사들의 성장에 주춧돌을 놓았다. 뮤지컬 전문지 <더 뮤지컬> 박병성 편집장은 "<사비타>는 서울뮤지컬컴퍼니, 오디뮤지컬컴퍼니, 엠뮤지컬컴퍼니 등 제작사를 옮겨가는 동안 승승장구하며 이들 회사에 다른 작품을 기획·제작할 수 있는 '종자돈'을 만들어 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 첫 대형 창작뮤지컬 <명성황후>

1995년 12월3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첫 공연한 <명성황후>는 12억 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초대형 창작뮤지컬이다. '권력욕에 눈이 멀어 나라를 망친 민비'로 불렸던 명성황후를 열강의 다툼 속에서 국권을 지키려다 참혹한 죽음을 맞은 '조선의 국모'로 새롭게 조명하며, 한국 뮤지컬의 대형화·브랜드화를 이끌었다. 경사진 이중 회전무대 등 스펙터클한 장치와 600여벌의 화려한 궁중의상 등이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한국방송 대하사극 <명성황후>,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등 명성황후를 다룬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명성황후>는 '해외 마케팅'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제작사인 에이콤 윤호진 대표는 "1997년 뉴욕 링컨센터, 2002년 런던 웨스트엔드 아폴로해머스미스 극장, 2003년 엘에이 코닥극장, 2004년 토론토 허미버드센터 등 연이은 해외 공연으로 창작뮤지컬의 세계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 첫 팬클럽 만들어낸 <베르테르>

2000년 11월10일 종로구 연강홀에서 초연한 <베르테르>는 괴테의 동명소설을 세계 최초로 뮤지컬로 만든 작품이다. 30여곡의 서정적인 넘버와 바이올린·첼로·비올라 등 현악기 위주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무기로 한 <베르테르>는 최초의 팬클럽인 '베르테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베사모)을 탄생시켰다. 9명에서 출발한 베사모는 한 때 500명에 이르렀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당시는 '송앤댄스'나 '아이러브뮤지컬'등 뮤지컬 동호회가 하나둘 생겨나는 시점이었다. 이런 분위기가 <베르테르> 마니아의 성장을 도왔고, 이들은 '회전문 관객'의 시초가 됐다"고 설명했다. '베사모'는 작품을 응원하는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제작에까지 관여했다. 2003년 경영난으로 공연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베사모'는 자체모금을 통해 3억 원을 조달해 직접 제작에 나서며 작품의 명맥을 이었다.

■ 낮은 곳 눈 돌린 힐링뮤지컬 <빨래>

<빨래>는 2005년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초연됐다. 비정규직,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장애 가정 등 사회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면서도 보는 이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힐링 뮤지컬'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추민주 연출이 졸업공연으로 첫 선을 보인 뒤 10년 동안 대학로 소극장 7곳을 옮겨다니며 대학로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았다. 지금까지 22명의 솔롱고, 20명의 나영이 등 123명의 배우가 거쳐갔다. 추민주 연출은 "꿈을 이루고 싶지만 잘 안 되는 사람들, 하지만 용기를 내는 사람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로 '장수 비결'을 설명했다. <빨래>는 중·고교 교과서에 대본이 실리고, 2012년엔 일본에 라이선스를 수출해 도쿄·오사카 등에서 공연됐다. 그 해 일본 뮤지컬 전문 계간지 <뮤지컬>이 선정한 '뮤지컬 베스트10'에서 공동 6위에 오를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의미 있는 해를 맞았지만, 최근 뮤지컬계가 당면한 위기 속에서 이들 작품 역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갈수록 대형화되는 라이선스 작품의 공세를 이겨내고 스타 마케팅에 길들여진 관객들의 입맛까지 맞추기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다. <사비타>와 <명성황후>가 지난 2011년 이후 4년만에야 다시 서울공연에 나선 것도 이런 현실적 어려움을 보여준다. <빨래>는 '해외공연'과 '원소스멀티유즈'를 통한 활로를 모색 중이다. 중국에도 라이선스를 수출해 내년 5월 베이징에서 중국어 공연을 할 예정이다. 오는 11월에는 소설 <빨래>도 출간한다. 영화 제작도 추진 중이다. <명성황후>는 새로운 넘버를 추가하고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편곡자 피터 케이시와 협업해 전체적인 업그레이드를 해서 20주년 공연에 나선다. 박병성 편집장은 "콘텐츠의 힘만으로 고정 팬 층을 만들고 10년, 20년씩 장기 생존을 했다는 것은 작품이 경쟁력이 있음을 증명한다. 앞으로 한국 뮤지컬계가 라이선스가 아닌 창작으로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는 만큼, 이 작품들 역시 강점을 살려 새로운 관객 확보와 해외 라이선스 판매 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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