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 영웅의 고독사.. 독이 된 금메달

2015. 7. 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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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아시안게임 김병찬씨, 끝내 이기지 못한 생활고의 무게

[서울신문]지난달 26일 오후 7시 30분 강원 춘천시 후평동의 한 임대아파트. 방 한쪽에서 하반신이 마비된 40대 남성이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고독사’가 빈번한 현실에서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쓸쓸한 죽음을 맞은 이 남성은 1990년대 대한민국 역도계를 대표하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김병찬(46)씨였다. 국제대회 금메달로 한때 많은 국민들의 환호와 갈채를 받았던 ‘역도 스타’다.

김씨가 오랜 시간을 홀로 지낸 탓에 그의 죽음은 유일하게 이 집을 드나들던 이웃 주민 김모(59)씨에게 발견돼 경찰에 신고됐다. 그의 죽음도 장례가 끝난 30일에야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이웃 주민 김씨는 “매일 김씨의 집을 방문하는데 그날 저녁에는 김씨가 작은방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숨진 채 누워 있었다”면서 “국제대회에서 국위를 선양한 금메달리스트가 홀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춘천경찰서는 김씨의 사인을 위장출혈이라고 밝혔다.

왕년의 역도 스타가 어떻게 이렇게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을까. 김씨는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역도 남자 90㎏급에서 합계 367.5㎏(아시아 신기록)을 들어 올리며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듬해와 1992년 아시아역도선수권 3관왕을 2연패했고, 1991년 세계역도선수권에서는 용상 은메달과 합계 동메달 등을 휩쓸었다.

그러나 김씨는 1996년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를 당해 역도계를 떠나야 했다. 소형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넘어져 머리를 다치고 하반신이 마비되면서 선수 생활은 물론 변변한 직업도 가질 수 없었다. 매월 손에 쥐는 돈은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에게 주어지는 연금 52만 5000원과 18만원 안팎의 정부 지원금뿐이었다.

김씨는 이 돈으로 홀어머니와 근근이 생활을 이어 갔다. 2013년 8월 김씨를 보살피던 홀어머니마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김씨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생전의 그는 집에 좀도둑이 자꾸 들어도 하반신이 마비된 자신이 손쓸 수조차 없었다고 이웃들에게 하소연하곤 했다. 지난해에는 식도암 초기 진단을 받아 항암 치료까지 받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정부의 연금 규정에 따라 월 지급액이 100만원, 은메달은 75만원, 동메달은 52만 5000원으로 일정 수준의 생활 보장이 된다. 하지만 아시안게임 메달은 연금 점수가 상대적으로 ‘박하게’ 매겨진다. 최소 20점을 넘어야 하며 10점당 15만원씩 지급하도록 돼 있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박한 연금은 이달 초 경찰청의 무도 경찰관 특채에 유도와 태권도 메달리스트 출신들이 대거 지원한 배경이 되기도 했다. 당시 경쟁률은 9.8대1이나 됐다.

특히 김씨는 오히려 연금에 발목이 잡혀 정부의 최저생계비를 전액 지원받지 못했다. 메달리스트 연금이 보건복지부가 정한 최저생계비(49만 9288원)보다 3만원 가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등록돼 18만원 안팎의 의료급여와 주거급여 등을 지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이에 따라 김씨처럼 최소한의 생계수단조차 없는 메달리스트에게는 예외적으로 연금 외에도 최저생계비를 전액 지원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한 관계자는 30일 “현재로선 지급 규정을 손보기 어렵다”면서도 “여론이 그런 쪽으로 움직인다면 검토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춘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서울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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