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평화헌법 9조의 운명,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가 분수령

박석원 2015. 5. 28.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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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올 8월 안보법안 다음 타깃은 개헌

70년간 보수세력 필생의 과업으로

아베, 1차 집권 때 실패 교훈 삼아

단계적 개헌으로 방향 틀어

1단계 개헌도 갈 길 멀어

현재 국민 여론은 반대 약간 우세

부결 땐 동력 다시 얻기 힘들 듯

일본 국회가 집단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한 안전보장 관련법안을 올 8월까지 처리하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다음 타깃은 헌법개정이다. 아베 총리는 일본이 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완전한 '보통국가'가 되기 위해선 '평화헌법' 개정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전후체제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일본우익들이 숙원이라고 생각하는 개헌에 도달할 수 있을까.

패전의 대가로 탄생한 평화헌법 9조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에는 군대를 내각이 아닌 일왕이 통수하는 '메이지(明治)헌법'(제국헌법)이 있었다. 그러나 패전과 함께 일왕의 군사관련 기능을 전부 박탈하는 헌법개정의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국사령부(GHQ)는 일본정부에 헌법개정을 지시했고, 일본은 전문가들을 구성해 개정안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1946년 2월 개정안의 일부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맥아더 사령부가 발칵 뒤집혔다. 일왕제를 유지하고 기존 제국헌법과 유사하게 '일왕은 명령하되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이다. 맥아더 사령부는 일본이 민주주의 원칙에 근거한 헌법초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전후 미 워싱턴에 설치된 연합국의 일본관리 최고정책기관인 극동위원회를 통해 연합국이 직접 헌법제정 작업을 진행하겠다며 세가지 극약처방을 주문했다. '일왕은 국가수반의 지위로 제한한다' '전쟁을 포기한다' '일본의 봉건제도를 폐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을 명령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일본헌법의 핵심은 제9조다. "①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 국권의 발동인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한다. ②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그 외의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평화헌법'이라는 인류의 염원이 담긴 이름이 붙은 것은 오직 이 조항 때문이다. 특히 전쟁포기를 명문화하는 경우는 일부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군대까지 보유하지 않겠다고 헌법에 명시한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일본 시민단체가 40만명의 지지서명을 받아 헌법9조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것도 바로 이 조항에 인류보편의 가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보수층 "점령군의 손으로 만든 헌법 고쳐야"

그러나 일본 보수세력은 패전의 결과로 탄생한 헌법을 고치려는 시도를 70여 년 내내 숨기지 않았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기시는 도조 히데키 내각 때 상공장관을 지내며 태평양전쟁 개전 문서에 서명,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됐다. 그러나 전쟁말기 불퇴전을 고수하는 도조의 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 등으로 석방된다. 이후 중의원시절부터 헌법개정운동을 펼쳤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개헌론이 지금 외손자인 아베 총리로 이어지고 있다.

아베는 지난해 3월 국회 답변에서 "현행 헌법이 점령군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며 "나는 전후체제를 탈피해서 현재의 세계정세에 맞도록 새로운 일본을 만들고 싶다"고 선언했다. 그가 거론한 전후체제는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을 점령 통치했던 연합군총사령부가 일본에 도입한 현재의 민주주의 제도를 말하는 것으로, 이 체제의 근간은 평화헌법에서 나오고 있다.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국제적 약속이 평화헌법에 담겨있는 것이다. 보수집단이 비난을 받는 건 이런 가치들을 지우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측근으로 전후 70년 담화 작업에도 관여하고 있는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국제대학 학장은 28일 니케이(日經)신문에서 "일본헌법을 만든 것은 연합군사령부다, 점령국이 피점령국의 헌법을 만드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전쟁을 금지한 9조 1항을 바꾸자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력 불보유를 정한 9조 2항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차례 실패한 개헌 재수생 아베

골수 개헌론자인 아베 총리는 2006년 1차 집권 때부터 전후체제 탈피를 내걸고 개헌을 밀어붙이다 지지율 하락을 자초하며 1년 만에 퇴진한 바 있다. 권토중래 끝에 5년 후인 2012년 말 재집권에 성공하자마자 들고 나온 게 바로 국회의 개헌 발의요건을 정한 헌법 96조의 선행 개정 주장이었다. 실패를 교훈 삼아 우선 절차적 벽부터 허물겠다는 우회전략이다. 그는 2013년 2월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민이 헌법을 바꾸려고 해도 3분의 1을 조금 넘는 국회의원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운을 띄웠다. 중ㆍ참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돼있는 요건을 중ㆍ참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완화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하지만 연정파트너인 공명당은 물론 자민당과 보수세력 내에서 '사도(邪道)개헌''뒷문 입학'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개헌 찬성세력 내에서도 입헌주의에 어긋난다거나 편법이란 비판이 나오면서 동력이 차츰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면서 아베 정권은 단계적 개헌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개헌의 알맹이인 '헌법 전문(前文)과 9조 개정'을 접어두고 야당과 국민의 반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부분부터 고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대규모 재해나 유사시 개인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긴급사태조항 ▦정부나 국민의 환경안보에 책임을 지우는 환경권 신설 ▦차세대에 부담을 떠넘기지 못하도록 하는 재정규율조항 등이 대상이다. 긴급사태조항은 민주당이 2005년 제안한 개헌안에 담긴 내용이며, 환경권은 공명당이 2014년 중의원 선거 공약에 포함한 것이다. 진입장벽이 낮은 내용부터 한차례 개헌을 추진한 뒤 9조 개정의 숙원을 달성하겠다는 시나리오다.

아베가 넘어야 할 3가지 벽

아베에게 이제 남은 숙제는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3분의 2 의석 확보 ▦개정 항목의 압축 ▦국민의 동의라는 세 가지 벽을 넘는 일이다. 연립여당 내 공명당을 설득하는 것도 관건이다. 공명당은 애초부터 헌법개정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는 지난 1일 거리연설에서 "헌법개정 자체가 큰 목표는 아니다. 어디를 어떻게 바꿀지 내용이 중요하다"며 "개정의 기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고 자민당을 견제하고 있다. 개헌 적극론자인 유신의 당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大阪) 시장을 끌어들여 공명당을 견제하려던 카드도 오사카 주민투표가 부결됨으로써 전략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정치권의 협조를 얻기 위한 별도의 당근책도 진행 중이다. 대규모 재해 발생시 국회의원 임기연장을 긴급사태 조항에서 논의한다는 것이다. 동일본대지진의 기억을 자극하며 각 당의 동참을 끌어내는 작업을 구상 중이다. 아베 총리가 당내 온건파인 후나다 하지메(船田元) 의원에 헌법개정추진본부장을 맡긴 것도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민주당 간사장과의 친분을 고려한 것이다.

정치권을 돌파하면 결국 국민투표를 통한 일본국민의 선택만 남게 된다. NHK와 교도통신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개헌 반대가 찬성보다 근소하게 많거나 잘 모르겠다는 답변이 다수로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자민당은 지역순회 개헌설명집회를 시작했다.

1단계 개헌에 성공하면 일본 보수세력의 최종목표인 헌법 9조 개정에 다가서게 된다. 자민당은 2012년 ▦헌법 전문은 전면 개정한다 ▦헌법 9조는 전력을 보유하지 않고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삭제하고 새로운 국방군을 보유한다 ▦일왕은 국가원수란 사실을 명확히 한다는 내용의 헌법초안을 만들었다.

자민당 인사는 "국민들이 (1차) 헌법개정이 성공하고 나면 이후 개헌에 대한 저항감은 낮아질 것"이라며 "하지만 일단 부결되면 헌법개정은 다시는 동력을 얻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내년 참의원 선거 민심이 평화헌법 제9조의 최후 운명을 가늠해볼 가장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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