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해상작전헬기, 너 마저' 잇단 방산비리에 국민은 허탈

남승우 입력 2015. 5. 26. 13:04 수정 2015. 5. 2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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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159, 일명 '와일드 캣'. 영국과 이탈리아가 합작해 설립한 아구스타웨스트랜드가 제작한 해상 작전 헬기입니다. 호위함을 비롯한 아군 함정에 탑재해 운용하는 헬기로, 수중에 있는 적의 잠수함을 탐지해 어뢰로 공격하는 게 주요 임무입니다.

해군은 2013년 1월, 기존의 '링스' 헬기를 대체할 신형 해상 작전 헬기로 '와일드 캣'을 선정했습니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이후, 대잠수함전 전력 강화 필요성에 따라 긴급히 추진된 사업입니다.

그런데 '와일드 캣' 선정 당시 평가를 맡았던 해군 전·현직 장교 3명이 최근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에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평가에 참여한 예비역 해군 소장 등 다른 3명도 구속 상태로 조사받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기종 선정 과정에 '서류 조작'이 있었던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최신 해상 작전 헬기 도입 추진이 결정된 건 2011년 8월. 총 사업비 규모가 1조3036억 원인 대규모 프로젝트입니다. 1차로 5890억 원을 들여 8대를, 2차로 7146억 원을 들여 12대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1차 사업 후보에 오른 건 '와일드 캣'과 함께, 미국 시콜스키의 MH-60R '시호크'. 성능은 '시호크'가 뛰어났지만, 선정된 건 '와일드 캣'이었습니다. 저렴한 가격이 이유였다는 게 당시 알려진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와일드 캣'의 선정 과정에 비리가 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선정 평가 자체가 조작됐다는 사실이 방산비리 합수단 수사로 드러난 겁니다.

연루된 인물은 3명. 당시 해군 전력분석시험평가단 무기시험평가과장이었던 예비역 해군 대령 51살 임 모 씨와 방위사업청 해상항공기사업팀 사업계획담당이었던 예비역 해군 중령 43살 황 모 씨, 그리고 현직 방위사업청 해상항공기사업팀 전력화지원담당인 해군 중령 신 모 씨입니다.

기종 선정 평가가 진행된 2012년 8월부터 11월까지의 기간, '와일드 캣'은 아직 개발 단계여서 실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해상 작전 헬기와는 최대 이륙 중량 등 기본 제원이 다르고 대점수함전 장비 등 필수 장비가 탑재되지 않은 육군용 헬기에 모래 주머니를 채워 시험 비행을 했습니다. 또 전혀 다른 기종의 대형 헬기 시뮬레이터로 영국 해군의 훈련 모습을 참관했습니다. 그러고서는 "62개 평가 항목에 대해 실물평가를 했다"고 시험평가결과서를 작성했습니다. 거짓을 쓴 겁니다.

'와일드 캣'의 성능과 이에 대한 평가도 문제였습니다. 해상 작전 헬기는 아군 함정에 탑재돼 이동하면서 적의 함정과 잠수함을 공격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를 위해선 잠수함과 함정을 탐색할 수 있는 장비 등을 모두 탑재하고도 충분히 체공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입니다. 잠수함 공격용 어뢰도 2발 이상은 탑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번째 발사에서 적중에 실패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해상 작전 헬기가 이런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오히려 아군 함정이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적의 함정과 잠수함을 제때 차단하지 못해 역으로 공격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군도 애초부터 충분한 체공 시간과 무장 능력을 차기 해상 작전 헬기의 작전요구성능(ROC·required operational capability)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와일드 캣'은 제작사가 제시한 자료만 보더라도, 최대 체공 시간이 79분에 불과했습니다. 이마저도 잠수함 탐지용 '디핑 소나'와 어뢰 2발, 승무원 3명, 무장 장착대 등 임무 장비를 모두 탑재할 경우엔 38분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가 담당자였던 황 씨 등 3명은 시험평가결과서는 "133개 항목 전부 요구 성능을 충족했다"고 썼습니다. '실물 평가'와 마찬가지로 또 거짓을 쓴 겁니다.

시험평가결과서를 허위로 쓴 결과는 어땠을까요? 방위사업청은 실물평가 결과 요구 성능 전부를 충족했다는 내용의 이 시험평가서를 근거로 2012년 12월 '와일드 캣'에 대해 '전투용 적합' 판정을 내렸습니다. 결국 '와일드 캣'이 경쟁 기종인 '시호크'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으면서, 이듬해 1월 해상 작전 헬기 1차 기종에 선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문가들은 전력 차질을 우려합니다.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등 대한민국에 대한 잠수함 위협이 어느 때보다 고조된 상황에서, 해당 기종이 과연 적의 잠수함을 제때 탐지해 제거하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냐는 겁니다.

당초 올해 말로 예정됐던 '와일드 캣' 4대의 도입 일정부터 물건너가게 생겼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방위사업청은 시험평가서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수사 결과가 나온 직후, '와일드 캣'이 우리 군의 작전요구성능에 미달하면 인수를 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방사청은 이 경우 제작사는 작전요구성능을 충족할 때까지 성능을 개량해야 하고, 계약금액의 0.15%인 하루 수억 원씩을 배상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제작사가 반발해 국가간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통영함에, 방탄복에, 방상외피에, 공군 전자전 훈련 장비에, K-11 복합 소총에 이어, 이번엔 우리의 바다를 적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헬기까지, 캐면 캘수록 나오는 고구마 줄기 같은 방산비리 시리즈를 보면서 허탈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외부의 적을 방어하기에만도 여념 없을 판국에, 우리 내부의 적부터 척결하는 데 국가적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현실이 야속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런 에너지를 앞으론 쏟지 않아도 될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방산비리 척결 수사는 강도 높게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국민이 우리 군을 믿을 수 있는 그 날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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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우기자 (futuri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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