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의 韓재벌 위기론]①"오너 리스크-도전정신 실종 탓"

김태현 2015. 5. 2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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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태현 기자] 글로벌 시장에서 맹활약하면서 사실상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국내 대기업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수출 기업에 적대적인 엔화 약세, 원화 강세와 함께 한동안 수출 경기의 버팀목이었던 신흥국 경기 둔화까지 겹친 탓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들의 잃어버린 도전정신이라는 뼈아픈 지적이 일본 언론으로부터 제기됐다.

일본 유력 경제매체인 닛케이비즈니스는 최신호에 ‘한국 재벌의 위기’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를 게재하며 “한국 대기업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부족한 도전정신과 오너 리스크”라고 꼬집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 프린트 부문에서 근무하던 엔도 나오야(遠藤直也)씨는 삼성전자와의 근로계약을 연장하지 못하고 지난 3월 일본으로 돌아갔다. 지난 2011년 경쟁업체에서 삼성전자로 이직한 뒤 사무실이 있는 수원에서 생활하며 낯선 문화에 적응하긴 어려웠지만, 선진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이를 새로운 제품 개발에 적극 활용하는 삼성의 도전정신에 큰 희망을 걸었다.

소위 ‘잘라파고스’(재팬+갈라파고스)라 불리는 함정에 빠져 최신 기술 흐름을 무시한채 자신들만의 방식을 고집하다 경영난에 빠진 일본 정보기술(IT) 기업들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엔도씨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독자 개발한 기술을 상사에게 보고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거냐. 안 된다”였다. 검증되지 않는 기술을 사용했다가 실패하느니 차라리 보고조차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식이었다. 결국 그가 만든 독자 기술은 묵살되고 말았다는 게 엔도씨의 주장이다.

닛케이비즈니스는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스마트폰 개발만 놓고 봐도 삼성전자는 도전정신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내놓은 ‘갤럭시S5’의 실패 사례를 거론하면서 “다른 회사들도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특징없는 스마트폰을 내놓다보니 가격 경쟁력에서 앞선 중국산(産) 스마트폰에 밀릴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이러다 삼성이 프리미엄 전자제품만 내세우다 세계 시장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소니나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 전자업체들의 전철을 밟는 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오너 중심의 ‘독재형 리더십’도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다고 닛케이비즈니스는 주장했다. 잘 나가던 STX가 무너진 것이 이같은 독재형 리더십의 실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강덕수 STX 전 회장은 과도한 사업 확장으로 회사를 파산으로 몰고 갔지만 이 과정에서 그의 독주를 견제할 세력이나 수단은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최근 ‘땅콩회항’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인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사례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닛케이비즈니스는 지적했다. 그룹 오너 일가에 고언(苦言)을 해 줄만한 충신도 없을 뿐더러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오너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다만 닛케이비즈니스는 “한국 재벌의 위기가 곧바로 한국 경제의 위기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 낙관론의 근거로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한국 벤처기업들에게서 찾고 있다. 대규모 설비투자로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대기업들에 비해 자금력에서는 뒤지지만 대기업들이 잃어버린 도전정신과 독창적인 기술로 무장한 벤처 기업들이 한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제2의 벤처붐’을 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신설 법인수는 전년대비 12.1% 증가한 8만4697개로 집계됐다. 사상 최초로 8만개를 돌파했다. 또 주요 벤처기업 130개사의 올 1분기 순이익도 전년동기대비 162.03% 급증하고 매출액도 6.15% 늘어났다.

김태현 (thkim124@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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