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꿈'꾸어도 될까요.. 찬반 엇갈리는 공공정자은행

박주연 기자 입력 2015. 5. 22. 22:50 수정 2015. 5. 22. 23: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정자로 내 아이를 갖고 싶은데 받을 수 있는 정자가 있습니까?"

지난 20일 서울 중구 제일병원 비뇨기과.남편 ㄱ씨(40)가 머뭇거리면서 의사에게 물었다. ㄱ씨는 2012년 결혼했다. 아내 ㄴ씨(33)는 하루빨리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1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 2013년 ㄴ씨가 먼저 난임 검사를 받았다. 아내에겐 문제가 없었다. 불임 원인은 남편에게 있었다. ㄱ씨는 정액은 물론 고환·부고환 조직에도 정자가 없는 '무정자증'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대학병원 재검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ㄱ씨는 정자은행을 이용하면 다른 사람의 정자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오랜 고민 끝에 아내를 설득했다. 하지만 의사는 "요즘은 정자 기증자가 거의 없어 정자를 공여받으려면 기증자를 직접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서울시 중구 제일병원 정자은행 배양실에서 연구원이 정자 급속 동결을 준비하고 있다.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부산대·서울대·단국대 등의 비뇨기과 교수들이 주축이 된 '한국 공공정자은행 설립추진위원회'가 지난달 29일 단국대 의대 제일병원에서 발기인 대회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들은 무정자증으로 임신이 불가능한 부부들이 기증한 정자로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기증자에 대한 현실적 보상 등이 포함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지역별로 거점 정자은행(비영리 운영 공공정자은행)을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다. 현실적 보상은 곧 정자 거래로 이어지고, 남편의 정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정자로 아이를 낳을 경우 가족관계에 혼란을 줄 뿐 아니라 아이의 행복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무분별한 인공시술로 '맞춤아기' 출산을 확산시킬 우려도 제기된다.

현행법상 정자는 타인에 대한 공여가 가능하지만 매매가 금지돼 있다. 기증 정자에 대한 관련 규정도 모호하다. 추진위는 공공정자은행 설립이 연간 5000명 이상의 출산 증가로 이어져 저출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난임환자는 2008년 16만2459명에서 2010년 18만6026명, 2014년 20만9638명이다. 연평균 4.3% 증가했다. 남성 쪽에 원인이 있는 경우가 40%다. 이 중 10%는 입양이나 비배우자 인공수정이 필요한 무정자증이다. 그 수는 약 2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비배우자 간 정자 공여는 뜨거운 윤리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생명을 만드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과 난임부부들의 현실적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는 견해가 팽팽하게 맞선다.

2007년 정부가 정자 기증과 관련해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 '생식세포 관리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내놓았으나 결국 무산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공공정자은행 설립 추진으로 이 같은 논쟁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