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기 외로워서.." 월세 30만원에 방 한 칸 세놓는 어르신들

이병희 기자 2015. 5. 2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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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30평형 아파트 세놓습니다. 보증금 300만원, 월세 30만원. 지하철 역까지 도보 10분 거리.'

서울 마포구 A공인중개사 대표 이모씨는 대뜸 "요즘 어디 가서 이만한 물건 찾기 어려울 것"이란 말부터 꺼냈다. "원룸, 오피스텔이요? 서울에서 집구하려면 옥탑방도 이거보단 더 줘야 돼요."

서울 마포구 30평대 아파트의 평균 월세가격은 100만~200만원, 보증금은 5000만~2억원 수준이다. 역세권에 있는 아파트를 구하기는 더 어렵다. 근처에 대형마트와 공원까지 있는 곳은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이런 지역에서 월세 30만원대 아파트가 매물로 나온 것이다. 방3개, 화장실은 두 개가 달렸다. 단, 조건이 있다. 방 한 칸만 세를 놓은 것이다. 거실과 주방은 집주인과 함께 쓴다. 이씨는 "화장실이 두 개 있는 아파트여서 크게 불편할 일은 없다"고 했다.

집을 보러 갔다. 집주인 김순자(가명·68) 할머니는 "관리비라도 보탤 요량으로 세 놓은 것"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인근 복지관에서 보내는데, 관리비를 다 내려니 버겁다고 한다. 월 평균 관리비는 냉난방비를 합쳐 30만원 안팎. 난방비가 비싸서 여름에는 조금 덜 나오고 겨울에는 더 나온다고 했다. 월세는 말 그대로 관리비인 셈이다. 김 씨는 "TV도 마음대로 봐도 되고, 주방에서 음식을 해먹어도 된다"고 했다. “아들 같은 사람이 깨끗하게만 써주면 오히려 고맙다”는 것이다.

“그럴 바엔 아드님과 함께 지내는 게 낫지 않으세요?”라고 했더니 김씨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가정도 있고, 애들이 요새 어디 같이 살려고 하나요…." 김씨는 "넓은 집을 혼자 쓰려니 적적한 것도 있다"고 했다.

그에겐 30대 초반인 기자가 아들 같아 보이는 듯했다. “젊은 사람인데 옮길 가구는 있어요? 방에 침대도 있고 책상도 있어서 다 쓰면 돼. 아들이 쓰던 건데 1년도 안 됐어요. 침대보랑 이불도 어제 다 새로 갈아놨고.”

집을 둘러보고 나오자 A공인중개사 대표 이씨는 "혼사 사시면서 이렇게 방만 내놓는 어른들이 종종 있다"고 했다. “외로우신 거죠. 여기 자기집 갖고 사는 분들이면 크게 돈에 구애받지 않는 분들이에요. 그렇데도 집을 세놓는 건 아들 딸 같은 사람들랑 아침 저녁으로 인사라도 하는 낙을 삼고 싶은 거죠."

서울 영등포구의 B부동산에도 이런 매물이 나왔다. 집주인 박모(65·여)씨는 "관리비는 없고 30만원만 내면 된다. 방도 넓고, 나랑 마주칠 일도 많지 않다”고 했다. 그는 궁금한 게 많은 듯했다. “고향은 어디에요? 하숙 생활을 해 봤어요? 뭐 그런 거 아니겠어요, 맛있는 거 있으면 나눠먹고 서로 안부 물어주고. 하다못해 가스검침원이 왔다고 벨을 눌러도 든든한 사람 같이 살면 안 무섭고 좋지 않겠어요.”

그러면서 “한 3년을 혼자 사니까 허전하더라고. 그래도 집에 누가 같이 있으면 좋겠고…”라며 말을 흐렸다. 그는 “다른 데도 더 보고 마음에 안들면 아무때라도 오라”고 했다. 사람이 그리운 듯했다.

B부동산 대표 기모씨는 “요즘 이렇게 방을 내놓는 어르신들이 제법 있다”며 “저쪽에는 (월세) 25만원인 집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서로 조건에 맞는 사람들을 연결해 주면 좋긴 한데 외로워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마음이 짠한 구석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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