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票퓰리즘' 함정에 빠진 與野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려던 여야가 지난 2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대 중반에서 50%로 올리자고 합의한 것을 계기로 정치권이 '포퓰리즘의 함정'에 빠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원칙 없이 여야 합의만을 강조하다 보니 다가올 총선·대선을 의식한 포퓰리즘에 매몰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야 합의대로 하면 국민연금으로 받는 돈은 지금보다 약 25% 늘어나게 된다.
지난 2일 여야 합의 과정은 협상을 빌미로 서로 '책임은 전가하고, 비판은 분산시키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식 정치 과정을 보여줬다. '공적연금 강화'를 주장했던 공무원 단체가 만든 합의문 초안에는 '국민연금 수급액 인상을 위해선 보험료율(내는 돈의 비율) 인상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 실무기구의 한 위원은 "합의문을 만드는 과정은 여야 정치인들이 주도했다"며 "'합의됐다'고 불러서 갔더니 '보험료를 더 낸다'는 문구가 갑자기 빠져 있었다"고 했다. 돈을 올려준다는 문구를 넣으면서, 더 낸다는 표현은 빠진 것이다.
복지부는 "소득대체율 50%는 불가능한 목표"라는 의견을 냈고, 실무기구 위원들조차 "위험한 합의"라고 했지만 정치권은 이를 무시했다. 2000만명의 국민이 이해 당사자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문구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조정하는 등 제도 변경은 그 자체가 국민께 큰 부담을 지우는 문제"라며 "공무원연금 개혁과는 다른 문제로 국민 부담이 크게 늘기 때문에 반드시 먼저 국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세금으로 충당 시) 2083년까지 해마다 23조원 상당의 국민 혈세를 투입해야 한다"고 했다. 매년 4대강 사업비(23조원)와 맞먹는 세금이 국민연금에 투입돼야 한다는 얘기다.
여야 합의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새누리당은 "합의를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고 야당에 책임을 돌렸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의 노후 보장은 당연한 것"이라며 당위성을 주장했다. 여야 간의 이 같은 '핑퐁식 떠넘기기'는 무상 급식과 무상 보육, 기초노령연금 등 무상 복지 논란이 나올 때마다 지속된 패턴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무상 급식으로 돌풍을 일으키자 새누리당은 "포퓰리즘이다"라고 비판하면서도, 대안으로 전면 무상 보육을 내걸었다. 야당이 "아이들 밥 주는 것도 의무교육"이라고 주장하면, 새누리당은 "문제는 있지만 주던 밥을 어떻게 뺏느냐"며 한발 슬쩍 물러섰다.
이번의 여야 합의는 연금을 매개로 한 '실버 민주주의'의 신호탄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29일 보궐선거가 치러진 인천 서구 강화을의 경우 고령자가 많은 강화군의 투표율은 50.3%였지만 젊은 층이 많은 인천 서구의 투표율은 29.3%였다. 그만큼 정치권이 노령층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점점 연금과 노인복지 문제가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는 추세다.
실제 노인(老人) 대국이라는 일본에서는 연금 등 사회보장 급여 지출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23%에 달하지만, 출산·보육 등 가족 지원 예산은 1% 안팎에 불과하다. 집권 자민당은 "지속 가능한 사회보장 제도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된 연금 개혁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은 "국민연금의 잠재 부채(미래에 갚아야 할 돈)는 이미 500조원에 달한다"며 "이번 합의로 미래 세대에 엄청난 짐을 물려주게 됐는데 여야가 선거 때문에 정신 줄을 놓은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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