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갈라파고스'에 갇힌 한국

신성식.김동호.김기찬.강병철.조현숙 입력 2015. 4. 28. 01:45 수정 2015. 4. 2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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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퇴 시대] '환갑=은퇴' 깨자 <상> 수명 35세 조선 중기 때 잔치 대중화중·일선 사라져 .. 북한조차 "70 환갑"

1804년 단원 김홍도가 남긴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契圖)’는 당시 개성에서 열린 잔치 풍경을 담았다. 환갑을 넘긴 개성지역 전·현직 관료를 위한 연회였다. 고려 궁궐터인 만월대에 걸린 천막 아래에서 수백여 명이 술과 음식, 가무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림 속 주인공인 60세 이상 양반은 64명에 불과했다. 60세까지 산 사람이 워낙 드물어 나라에서 ‘기로연’이란 잔치를 베풀던 시절이다.

 환갑을 축하하는 풍습은 중국에서 건너왔다. 국내 문헌에 등장한 건 600~800여 년 전부터다. 『고려사』 중 충렬왕 22년 기록에 담긴 내용이다. “왕의 나이 61세에 점을 보는 사람이 이르기를 ‘환갑은 경사스러운 일이지만 액운이 따를 수 있다. 은혜를 베풀고 죄인을 풀어주라’.” 해로 따지면 1296년의 일이다. 『고려사』의 편찬이 끝난 시기(1491년)까지 감안하면 환갑이란 단어는 고려 말, 조선 초기인 1200~1400년대부터 널리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민속박물관 장장식 학예연구관은 “환갑이 워낙 귀했기 때문에 장수를 축하하는 잔치를 벌이는 풍습이 함께 자리를 잡았다. 환갑까지 못살고 죽었다면 61번째 생일에 ‘사갑제’라고 해 장수하지 못한 한을 푸는 굿을 후손이 해주기도 했다”고 했다.

 조선시대 평민의 수명을 정확히 보여주는 자료는 없다. 서울대 의대 황상익 교수가 당시 유럽 지역 사망자 평균 나이(35세 안팎)와 조선 왕의 평균 나이(46~47세)를 따져 추정한 수치가 35세 미만이다. 회갑잔치를 대중적으로 하기 시작한 건 조선 중후기에 접어들어서다. 회갑연은 살아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화려한 잔치였다. 접시에 한 자(약 30㎝) 이상으로 음식을 쌓아 올렸다. 자녀의 효심이 음식의 높이와 비례한다고 해서다. 환갑을 맞은 주인공도 제일 화려한 옷을 차려입었다.

 그러나 ‘환갑=장수 노인’이란 공식은 조선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이제 환갑은 중국은 물론 가까운 일본에서도 더 이상 쓰지 않는 개념이다. 한자 문화권 중에서 한국만 ‘환갑 갈라파고스’에 갇혀 있는 셈이다. 한국전통문화대 최종호(민속학) 교수는 “과거 환갑은 중장년과 노년을 나누는 경계 지점, 장수의 경계 지점이었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이런 의미는 희미해졌고 남한보다 기대수명이 짧은 북한에서조차 최근 ‘70 환갑’이란 용어가 등장할 정도”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복지전문기자, 김동호·김기찬 선임기자, 강병철·조현숙·천인성·최현주·박유미·김민상 기자 hope.bant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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