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과학자가 말하는 '리더십'의 재해석

고재열 기자 2015. 4. 2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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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꽃보다 할배>를 만든 나영석 PD와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에 이어 '리더십의 재해석' 시리즈가 만난 사람은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바이오 및 뇌공학과)다. 그는 매년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저녁 전국 수십 개 도시에서 과학자들이 동시에 강연을 하는 '10월의 하늘'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카이스트 과학자들과 대전시립미술관이 함께 진행하는 '뇌 과학과 예술'이라는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으며, '백인천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야구학회를 만들어 심포지엄을 여는가 하면, 아프리카에 IT 지원사업을 하고 '미래세대 행복위원회'를 조직하고, 건축가들과 함께 스타트업을 만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와 <과학 콘서트>를 펴낸 그는 과학의 영역을 대중문화와 예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한 대중 과학자이기도 하다. 과학자 하면 대개 하나를 깊이 파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정 교수는 이처럼 여러 분야로 관심을 확장해 새로운 성취를 이뤄내는 스타일이다. 그에게 리더십에 대한 생각과 함께 뇌를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물었다.

뇌 과학자가 보기에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우리 뇌의 디폴트 모드는 리더십 모드가 아니라 팔로십 모드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리더가 되려는 성향을 가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따라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의 말을 듣고 학습을 하면서 여러 사람 사이에 끼어 있을 때 생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리더를 찾고 그를 따른다. 내가 특별히 주목받거나 타깃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뇌는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서로 '퍼스트 펭귄(물개에게 잡힐 위험을 감수하고 맨 먼저 물에 뛰어드는 펭귄)'이 안 되려는 게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다.

리더가 되면 가질 수 있는 게 많지 않나?

서로 리더가 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리더에게 콩고물이 많은 것이다. 섹스의 기회, 돈과 지휘 통제권 같은 권력을 주면서 리더가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리더가 위험한 자리인 걸 알면서도 되려는 사람이 많다.

내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언제 그 일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재미있어하며 리더가 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 뇌에는 팔로십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일을 하고 리더십을 보인다고 하면 세상은 더욱 재미있어질 것이다.

리더의 덕목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나?

사람은 자기 객관화가 힘들다. 특히 한국의 리더들은 늘 자신이 유리하게 상황을 해석하곤 한다. 자기 객관화는 인간의 최고 덕목이다. 사랑을 하려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냐고 물으면 나는 자기 객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성숙해야 자기 객관화 능력이 생긴다. 보통 사람들이 쉽게 얻지 못하는 정말 고등한 능력이다.

세상에는 좋은 머리를 나쁘게 쓰는 사람도 있고 좋게 쓰는 사람도 있는데, 정 교수는 재미있게 쓰는 사람의 대표 사례 같다. 이것이 지속 가능한 머리 쓰기의 한 방식인가?

말을 들어보니 그런 것 같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바로 재미있게 머리 쓰기다. 그런데 나에게는 양립하기 힘든 딜레마가 있다. 한편으로는 삶을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순간들로 채우고 싶은 욕망에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 남이 안 하는 것을 해보고,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기도 하고, 위험한 영역에도 가보고…. 그런데 세상의 뜻 깊은 많은 일들은 어떤 일이 꾸준히 반복되었을 때 그것의 합으로 성취가 만들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둘의 조합을 만드는 것이 딜레마다.

리더가 동참하는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려울 듯하다.

어떤 일을 추진하든 결국은 감당해야 할 힘든 대목들이 있는데, 그 일이 자기 입으로 자기 머릿속에서 나오면 덜 힘들다. 그래서 이것은 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각자 스스로 결론을 얻을 때까지 기다린다. 리더는 구성원들의 자발적 동기가 충만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대전시립미술관과 함께 '뇌 과학과 예술'이라는 심포지엄을 기획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분야를 융합하려는 욕망은 별로 없다. 다만 인간이 뇌를 가지고 하는 제일 중요한 문제들을 신경과학적 측면에서 파악하고픈 게 뇌 과학자인지라 예술행위는 당연히 관심 대상일 수밖에 없다. 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살피다 인류학자나 미학자, 사회학자가 간 길과 겹치는 경우가 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이런 벽을 만나면 내 분야가 아니니까 하면서 돌아가거나 물러서곤 하는데, 나는 벽을 만났을 때 오히려 이번 기회에 이것을 좀 공부해서 이 분야도 알고 가자 하고 덤비는 타입이다. 물리학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학문을 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 장벽을 넘어서려는 용기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나중에 이 연구에는 인류학적·미학적·사회학적 고찰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해준다.

'백인천 프로젝트'라는 야구 프로젝트도 했다. '왜 4할 타자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라는 과제 설정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이 일을 하면서 리더가 그 일을 함께하는 사람을 정확히 이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10월의 하늘'만 생각하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고 협동하고 서로 소통하며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구 덕후'들을 만나는 순간 그 착각이 깨졌다. 끊임없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증명하려고만 하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너무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사람들과 작업을 할 때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내고 보니 그들 역시 진국이다. '백인천 프로젝트'의 인연으로 야구학회도 만들었다. 그렇게 무뚝뚝하던 사람들이 그 일만 하면 조용히 와서 도와준다.

'10월의 하늘'은 사람들이 사람을 만나려고 온다. 그래서 인간 중심이다. '백인천 프로젝트'는 참여자들이 과제 중심적으로 사고한다. 일을 재미있어하고 일에서 얻는 정보를 즐거워하며 거기에 기여하는 것으로 기뻐한다. 어떤 일을 관계 중심적으로 할 것이냐, 과제 중심적으로 할 것이냐의 정답은 없다. 목표를 함께할 사람의 성격을 고려해서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르완다에 IT 기술을 지원하는 사업, '미래세대 행복위원회' 활동, 건축가들과 '마인드 브릭 디자인랩'이라는 회사를 차린 것 등 일이 많은데,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 궁금하다.

미움받을 각오를 하고 대부분의 회식에 가지 않는다. 술·담배·골프도 안 한다. 혼자 빈둥거리면서 노는 시간이 많다. 여럿이 보내는 시간은 계획을 하고 보낸다. 월·화·수·목요일에는 대전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연구에 집중한다. 그중 하루는 아무 스케줄 없이 혼자 논문을 읽고 논문을 쓴다. 그리고 금·토·일요일 사흘에 세상살이를 한다. 그 시간의 상당 부분은 사실 가족들과 보낸다. 딸아이 셋의 귀여움이 최고에 달해 있어 그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한없이 좋기 때문이다.

바쁘게 살면서도 참 많은 일을 해낸다.

티가 날 만한 일을 해서 그렇지 실제로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칼럼도 한 달에 한 편만 기고한다. 책도 혼자 쓴 책은 <과학 콘서트> 이후로는 없다. 여럿이 같이 작업한 것을 기록처럼 책으로 남긴 것이다. 협업의 즐거움을 남기는 쪽으로 저작의 성격을 바꿨다. 관여한 모임들도 자발적 동기로 충만해 있어서 내가 하는 역할이 최소화되어 있다. 촘촘히 시간을 쓰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일을 하려고 특별히 시간을 더 내지는 않는다.

하루 일과를 구체적으로 알려줄 수 있나?

아침잠이 엄청 많았다. 그래서 생활 패턴을 바꾸었다. 5년 전부터 저녁 10시에 자기 시작했는데 그러면 새벽 4시쯤 일어난다. 이때부터 아침 9시까지 집중해서 한 가지 일을 한다. 이 시간이 있어서 낮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가지 일을 해도 채워지는 부분이 있다. 이런 시간이 진짜 중요하다.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한 가지 생각만 하는 것도 좋다. 그러면 아이디어가 잘 나온다. 밤늦게 대전에서 서울로 올 때 운전하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는데 그런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신경과학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 뇌는 체중의 2%를 차지하지만 에너지의 23%를 쓴다. 뇌를 쓴다는 것은 에너지를 많이 쓴다는 얘기다. 따라서 뇌를 쓰는 일은 에너지가 있을 때 해야 한다. 스티븐 코비가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나눠서 하라고 했는데 뇌를 많이 쓰는 일은 뇌에 에너지가 충만할 때 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은 회사에 가서 신문도 보고 커피도 마시며 아침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 퍼져 있을 때 진짜 해야 할 일을 시작한다. 능률이 오를 수 없다. 하루 중에 뇌의 인지적 에너지가 충만할 때를 판단해서 가장 창조적인 일을 그때 해야 한다.

여러 일을 벌이는데 마무리는 책으로 묶어내는 것이다. 매듭짓기의 좋은 방식인 것 같다.

기록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모든 일의 핵심은 경험이고, 경험은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에도 축적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책을 낸다.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라는 책을 냈을 때가 스물여섯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뭘 알고 썼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일찍 벗어난 것 같다.

인맥이 놀랍다. 가수·영화감독·코디네이터 등 이질적인 사람들과 자주 어울린다.

심지어 내성적이기까지 하다.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이 힘들다. 얘기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을 만나면 그게 좋고 힘도 받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쉬는 시간이 생기면 혼자 있고 싶다. 그런데 나와 다른 분야의 사람을 만나서 얻는 즐거움을 생각한다. 특히 의외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 뭔가 창조의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모임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건 인맥이라는 결과물 때문이기도 한데, 인맥에 별다른 집착이 없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인맥 관리를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맥 관리의 핵심은 도움이 되는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다. 도움의 목적은 사회적 성공 같은 것인데, 이런 것에 도움되는 사람을 만나서 발판으로 삼는 것, 이런 걸 못한다. 나는 필요한 사람을 만나기보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 도움을 받기보다 도움을 주면서 존재감을 확인하고 만족하는 타입이다.

연구 대상인 뇌 중에 본인의 뇌도 있지 않나?

나는 쾌락주의자인 것 같다. 시간을 재미있고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로만 채우려고 한다. 생산적이지 않은 순간을 못 견디는 편이다. 병역특례를 받고 훈련소에서 한 달 동안 훈련을 받는데 돌아버리겠더라. 여럿이 앉아서 아무 일도 안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을 못 견디겠더라. 존재가 아무런 의미를 발생시키지 못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 같다.

'리더십의 재해석' 연재에서는 바로 전에 인터뷰한 인물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의 리더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대담도 하고 강연도 하고 따로 만난 적도 있는데 내가 본 정태영 사장은 큰 회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CEO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리더다. 우리나라의 대체적인 회사원들은 위계와 시스템에 끼어서 일을 한다. 회사의 핵심 가치는 이런 건가 보다 하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을 보면 맨 위에 리더의 철학이 있고 이에 맞춰 회사의 제도가 갖춰지고 이를 신입사원까지 공유해서 의사 결정을 한다. 정태영 사장은 위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영향을 받아서 일을 하게 만드는 리더 같다. 직원들에게 정신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리더라는 면에서 인상적이었다.

고재열 기자 /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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