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유연해지는 중국의 대일 외교, 우리는?

우상욱 기자 입력 2015. 4. 25. 09:57 수정 2015. 4. 2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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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옌쉐퉁 칭화대 국제연구소 소장의 외신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 외교 정책의 핵심 싱크탱크답게 설명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 중동 분쟁, 전 세계적인 테러 격화 등 거의 모든 외교 주제를 넘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설명에 공을 들인 문제는 중일 관계였고 기자들의 질문도 여기에 집중됐습니다. 그만큼 두 강대국의 갈등은 세계적 관심사였습니다.

옌 교수의 대답은 명쾌했습니다. "이제 양자의 갈등은 관리 국면으로 들어갔습니다. 올해 갈등은 계속 완화되고 관계는 개선될 것입니다." 영토와 역사인식 문제에 있어 양측 모두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데 어째서 그렇게 단언하시죠? "양측의 속내가 일치합니다. 일본은 정냉경열(비록 정치적 문제에서 관계가 냉각되더라도 경제적 관계는 활발하게 가져가겠다)는 방침을 고수해왔습니다. 중국도 경제 문제는 따로 분리해 관계를 개선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계 악화를 더 이상 깊게, 길게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경제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 적절하게 관리할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반둥회의 60주년 기념 정상회담을 보면서 옌 교수의 식견이 정확했음을 확인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두 정상은 많은 갈등을 그대로 남겨둔 채 전격적으로 두 번째 만남을 성사시켰습니다. 심지어 시진핑 중국 주석은 아베 일본 총리와 악수를 나누며 미소를 머금기까지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만났을 때 반갑게 인사말을 건네는 아베 총리를 마주 보지도 않고 부적절한 물질을 씹은 표정을 지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바로 직전 아베 총리는 기조연설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탈에 대한 사죄는 쏙 빼버렸습니다. 보수의 선배격인 고이즈미 전 총리가 10년 전 반둥 회의 50주년 기념식에서 관련 언급을 했던 것과 비교해도 한참 후퇴한 모습입니다. 일본의 국회의원들은 그날 단체로 2차 대전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습니다. 한국과 중국의 우려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날선 비판을 내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일 정상회담은 이뤄졌습니다. 중국의 태도가 변할 것일까요?

이에 대해 중국 외교 전문가들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라고 말합니다. 변곡점은 지금이 아니라 이미 지난해 11월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보국장이 만나 영토와 역사인식 문제에 대한 4개항 합의를 도출했을 때라고 설명합니다. 해당 합의는 문구에 애매한 부분이 많아 중국과 일본이 각자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되는 문제를 일치감치 노정했습니다. 하지만 상관이 없었습니다. 두 나라는 문제의 종국적 해결을 꾀하지 않았습니다. 방향 전환의 계기, 간판만 필요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중일 정상의 첫 번째 정상회담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면 의문이 듭니다. 당시 만남에서 시진핑 주석은 왜 외교적 결례에 해당할 만큼 아베 총리에 망신을 줬을까요? 전문가들은 시 주석의 개인적 감정이 드러난 것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라 분석합니다. 당시 첫 만남은 베이징에서 이뤄졌습니다. 시 주석의 홈그라운드입니다. 속설에 '홈그라운드에서는 XX도 50%는 먹고 들어간다'고 하죠. 거꾸로 많은 중국인이 지켜보고 있는 장소입니다. 기선을 제압한다는 측면에서, 중국인들의 심사를 대변한다는 차원에서 그런 행동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두 번째 만남에서는 좀 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행동을 해야 적절합니다. 이미 첫 만남에서의 행동은 충분한 효과를 거뒀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에 시 주석이 보여준 의례적인 미소에도 감동하지 않습니까? 마주보고 악수했다고 환호합니다.

요컨데 중국은 이미 큰 방향을 서서히 전환하고 있습니다. 이번 정상회담은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모습입니다. 치밀한 계산속에 자신들의 자존심을 세우면서도 실리를 챙기는 쪽으로 밀고 나가고 있습니다. 필요한 만큼 발걸음을 옮겨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대일 태도에 있어 냉온탕을 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일본에 댜오위다오 분쟁이나 역사 왜곡 시도에 대해서는 일만 있으면 당장 눈 꼬리를 치켜세우고 날카로운 어조로 비판할 것입니다. 동시에 경제적 실리를 논의하기 위해서 두 정상이 또 아무렇지 않은 듯 악수를 할 것입니다. 다음에는 필요하다면 활짝 웃고 서로 어깨라도 두드릴지 모릅니다. 그만큼 유연하다는 것입니다. 능동적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 일본과 양자회담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일 외교 전문가의 말입니다.

"만나지 않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 무슨 이득인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만나고 그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비난을 하는 것이 더 건설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따지고 챙겨야 할 실리는 사이드로 의견을 나누고요. 솔직히 일본과의 관계 악화로 인해 우리가 아쉬운 것이 더 많습니다. 물론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역사 왜곡 문제를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방법론적으로도 만나지 않는 것으로는 얻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좀 더 유연하고 적극적인 자세가 아쉽습니다."

그나마 중국이 함께 일본을 거부할 때는 '왕따' 시킨다는 효과라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중국도 실리를 얻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지 이미 오래입니다. 미국은 갈수록 일본 편을 드는 모습입니다. 자칫 우리가 '셀프 왕따'로 전락할 가능성마저 높아지고 있습니다.

15, 16세기 도시국가인 베네치아 공화국은 주변 강대국들 사이에서 냉정한 실리외교를 펼쳐 무시 못 할 실력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17세기 해군력에 대한 자만에 빠져 강대국들과 수차례 분쟁을 겪은 끝에 쇠락하고 맙니다. 그나마 베네치아는 당시 유럽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강력한 해군을 보유했었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무엇을 믿고 실리 외교를 외면할 수 있을까요?

우상욱 기자 woos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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