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15년 이어온 '지하철 공부방'..폐쇄 위기

장훈경 기자 2015. 3. 30.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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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에 있는 은정 초등학교는 인공 대지 위에 있습니다. 바로 아래는 신정 차량기지 부지가 있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차량기지 위에 학교가 떠 있는 듯 보입니다. 특이한 것은 이 학교에 저소득층 아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전교생 300여 명 중 3분의 1이 새터민이나 다문화가정 등 형편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이지요.

차량기지 직원들은 외환위기가 몰아닥친 지난 1999년부터 이런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1년 내내 운영되는 기지 내 구내식당에 아이들을 불러 밥을 먹이기 시작했습니다. 2001년부터는 아예 초등학교에 공부방을 차리게 됐습니다. 밥만 먹일 게 아니라 공부도 시키자는 뜻이었지요. 처음엔 학교 주차장 옆에 있는 조그만 건물을 빌려 아이들을 공부시키다가 당시 교장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교실을 제공받아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됐습니다.

공부방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방과 후부터 저녁 7시까지 운영되는데 합창과 서예, 연극놀이 등을 합니다. 은정 초등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한 두 분의 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며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방학이나 주말에는 차량기지 직원들이 아이들과 해수욕장이나 스키장 등을 가기도 합니다. 어쩌면 가정 형편 때문에 이런 야외 활동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을 아이들이 이 공부방을 통해 학창시절의 즐거운 기억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공부방의 정식 명칭은 은정 지역아동센터입니다. 근처의 다른 지역아동센터와 함께 구청의 지원을 받고 있지요. 프로그램이 워낙 다양한데다 아동센터의 센터장과 직원의 월급, 또 저녁 식사까지 아이들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지난해에는 6천만 원 정도의 운영비가 들었습니다. 절반 정도는 차량기지 직원들이 매달 5천~1만 원 정도 내는 후원금으로 충당했고 나머지는 구청이나 기업들의 지원으로 운영했지요.

무려 15년 동안이나 운영돼 온 이 '지하철 공부방'이 지난 해부터 폐쇄 위기를 맞았습니다. 초등학교에 새로운 교장 선생님이 부임하고 나서 부터였지요. 교장은 이 시설이 미허가 시설이고 미허가 시설이 학교 공간을 무단 점유하고 있다고 폐쇄를 요구했습니다. 교육청이 공식적으로 예산을 대는 돌봄 교실로 아이들을 옮기고 꼭 후원을 하고 싶다면 발전기금 형태로 계속 할 것을 제안했지요. 지난 해 세월호 사고 이후 아이들에게 안전 문제가 생겼을 때 학교에서 책임질 수 없다는 것도 폐쇄 결정의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공부방을 후원하는 차량기지 측에서는 당연히 반발했습니다. 지역아동센터 차원에서 종합보험을 가입하고 있고 1박 2일 캠프 등을 갈 때는 여행자 보험도 든다며 아이들 안전은 공부방 차원에서 담보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15년 동안 운영하면서 방과후 학교 모범 사례로 선정될 정도로 운영이 우수하다면서 폐쇄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이들 역시도 공부를 위주로 하는 돌봄 교실보다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 '지하철 공부방'에 있고 싶다고 말했지요.

학교 측과 공부방 측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결국 서울시교육청과 구청까지 나섰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첫 회의를 했는데 서울시교육청은 공부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존의 돌봄 교실까지 지역아동센터가 관리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돌봄 교실 운영 예산까지 주면서 확대 운영하는 안을 내놓은 것입니다.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학교 측이 이 안을 받아들일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내일 학교 측과 공부방 측이 모임을 갖는다고 하는데 아무쪼록 서로가 받아들일만한 합리적인 접점을 찾길 바랍니다.

▶15년 동안 이어온 '지하철 공부방' 폐쇄 위기 장훈경 기자 roc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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