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퍼] 우리 어장 씨말리는 중국어선.."제발 도와주세요"

양성모 입력 2015. 3. 29. 06:58 수정 2015. 3. 29.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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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바닷물이 차 있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옵니다. 바다는 곧 백성들의 생계이며 육지만큼 중요한 이 나라 살림의 근간이옵니다. 바다에 기대어 사는 백성들은 어업을 호구지책으로 삼고 뭍에 사는 백성들 또한 그들이 생산한 소금이 없으면 살지를 못합니다."

지난 21일 KBS 1TV에서 방영된 대하드라마 <징비록>의 대사다. 국고가 바닥났으니 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편입시키자는 선조의 제안에 영의정 이산해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맞선다. 국고 부족을 이유로 수군을 폐지한다면 이는 바다를 팔아 국고를 채우는 매국이라는 논리다.

이산해의 말처럼 바다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다. 특히 서해5도 어민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서해5도 어민들이 지난해 말 해상 시위를 벌였다.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으로 인한 피해가 두고만 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 중국어선 불법 조업 "더는 견딜 수 없어"

중국 어선들은 주로 쌍끌이 조업을 한다. 큰 그물을 가운데 두고 배 두 척이 나란히 끌고가며 조업을 하는 것이다. 이른바 싹쓸이 조업인데, 이때 물고기 뿐 아니라 우리 어민들이 쳐 놓은 통발 등 어구까지 끌려간다. 지난해 서해5도 어장에서 중국어선의 불법 조업 피해는 모두 81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어구 피해는 14억 원이다.

"통발을 다 쓸고 가버렸으니까 어떻게 조업을 해요? 전부 다시 샀지...5천만 원 빚내서..."

대청도에서 태어나 평생 꽃게잡이를 해온 정대철 씨(61세)는 어장에 설치한 통발 천5백 개 가운데 천개를 잃어버렸다고 한다.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허선규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해양위원장은 아직도 정부 차원의 피해 규모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 조업에 따른 전국적인 피해액은 제대로 집계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피해 보상은 말할 것도 없지요. 지금 서해5도 어민의 절반 정도는 신용불량자입니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이대로 놔두면 10년쯤 뒤엔 우리 어장에 남아있는 수산물이 없을 겁니다."

허 위원장은 과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중국 어선들은 자국의 어장을 그렇게 만들었다. 남획으로 인한 어장 파괴의 결과 서해 어족자원이 씨가 말랐고, 때문에 중국 어선들은 비교적 잘 관리되어 온 우리나라 어장으로 몰려든다는 것이다.

■ 싹쓸이 조업에 어망, 어구 피해도 심각

문제는 우리 어장으로 몰려드는 중국 어선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한중어업협정에 따라 우리나라의 허가를 받고 합법적으로 조업할 수 있는 중국 어선은 연간 천6백 척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수역에서 조업하는 중국어선은 하루 2천 척, 연간 최대 2만 척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합법적인 중국어선도 어획량을 조작하거나 허가구역을 넘나들기 일쑤다. 서해와 남해뿐 아니라 최근엔 동해에서도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은 심각한 상황이다. 김현용 수산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의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어선이 5만 척에서 7만 척 정도 됩니다. 중국은 107만 척이고요. 어선 숫자만 따지면 중국이 17배가 많습니다. 하지만 어장은 17배 넓은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보다 2~3배 정도 넓을 뿐이에요."

[연관 기사] ☞ [GO! 현장] 이 곳이 중국 바다? 울릉도 둘러싼 중국어선들

■ 우리 해역에 '바글바글'…최대 2만 척 추정

"불법 조업을 하는 것은 분명한데 서라고 해도 서지 않고, 승선해서 나포할 수도 없고 그럴 때는 함포도 사용할 겁니다."

지난 24일, 윤병두 인천해양경비안전서 서장이 대청도 어민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실제로 함포를 사용할지는 미지수지만 그만큼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매년 중국어선 3백~5백 척이 우리 해경에 나포된다. 연간 2만여 척 정도가 불법조업을 한다고 가정했을 때 2.5% 정도만이 나포된 셈이다. 단속만으로는 불법조업을 막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 해역에 인공어초를 설치할 것을 주장한다. 주로 쌍끌이 조업을 하는 중국어선이 그물을 끌고 가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공어초 1개 가격이 수백만 원에 달해 예산 확보가 문제다.

벌금을 올리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우리나라는 불법 조업 선박에 대해 최대 2억 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지난 2012년, 1억 원에서 두 배 인상한 것이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벌금이 가장 무거운 나라는 브라질이다. 불법조업에 대해 최고 318억 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인도네시아는 26억 원, 캐나다는 5억5천만 원, 스페인은 4억6천만 원이다. 프랑스의 경우 1억 원 정도의 벌금을 부과하면서 어획물 100킬로그램 당 231만 원씩 별도로 벌금을 부과한다. 일본도 지난해부터 최고 3천만 엔, 우리 돈 2억7천만 원 정도를 부과하고 있다.

■ '함포 동원' 인공어초 설치…'벌금 인상' 해법은?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불법조업을 한 중국어선으로부터 거둬들인 벌금은 모두 1050억 원이다. 이 벌금은 모두 국고로 환수됐다. 최근 이 벌금을 피해 어민 지원에 써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집행된 벌금의 5%를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 사용하는 것처럼 수산발전기금에 편입시키거나 피해 지원에 직접 써야한다는 것이다.

해양수산부는 현행법상 벌금은 국고 귀속이 타당하다며 피해 지원에 이용하는 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류권홍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수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법상으로는 해수부의 주장이 맞아요. 하지만 불법조업 피해를 막아야 하는 책임이 해수부에 있다면 피해 지원을 위해서 재정이 필요하고 그 재정의 확보수단으로 벌금을 이용해야 한다고 기재부와 국회를 설득해야죠."

서해5도 어민들에게만 국한된 내용이지만, 어민 피해 지원 방안이 담긴 '서해5도 지원 특별법 개정안'이 2년 전 발의됐다. 어민들은 지난 2월 법안이 통과되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무산됐다. 4월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있지만 곧 시작될 꽃게 조업을 앞두고 어민들은 근심이 가시지 않는다.

"서해5도 어민들이 다 같이 어선 끌고 NLL도 가볼까 했고, 한강으로 들어가서 여의도 국회 앞에서 선상 시위를 할까도 고민했죠. 엄청 돌아다니면서 부탁했어요. 도와달라고. 그런데 다들 도와준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도와주지도 않고...이게 벌써 몇 달째입니까?"

■ "중국어선 벌금, 피해 어민 지원에 써야"

류 교수는 근본적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해양수산부가 정권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고, 내륙 개발에만 열을 올릴 뿐 바다는 언제나 뒷전이라는 지적이다.

"역사를 보면 바다를 지배한 국가가 세계를 지배합니다. 우리 지자체가 발전 계획을 내놓는 걸 보면 섬이나 바다에 대한 언급은 없고 내륙에 대한 말만 가득합니다. 가까이 있는 일본, 패권을 쥔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다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거죠."

선조와 이산해의 대화는 400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도 계속된다.

※ 이 기사는 3월 29일 <취재파일K> 에서 방송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디·퍼(디지털 퍼스트)는 KBS가 깊이있게 분석한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더 빨리 제공하기 위해 마련한 디지털 공간입니다.

양성모기자 (ysm8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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