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시작순간 기습.. 리퍼트 넘어뜨리고 25cm 과도 휘둘러

2015. 3. 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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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당한 美대사/본보기자가 본 현장]

[동아일보]

5일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마련한 조찬강연은 특별한 게 없었다. 이날 오전 7시 33분까지는 그랬다. 민화협은 2004년부터 주한 미국대사가 바뀔 때마다 이 행사를 열었다. 장소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로 똑같았다. 그러나 이날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사상 초유의 '한미 동맹에 대한 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강연에 참석한 동아일보 기자가 이 현장을 지켜봤다.

○ 4분 만에 벌어진 공격

예정 시간(오전 7시 30분)을 약간 넘겨 행사장에 도착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는 주위 사람과 인사를 한 뒤 헤드테이블에 앉았고 곧 식사가 제공되기 시작했다. 리퍼트 대사는 "첫아들을 한국에서 출산했고 여러 가지로 배려해줘 고맙다"며 "둘째아이도 한국에서 낳고 싶다"는 내용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4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헤드테이블에서 "악" 하는 비명이 들렸다.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려가더니 비명은 더 커져갔다. 기자가 약 10m 떨어진 헤드테이블로 달려갔을 때 리퍼트 대사는 오른쪽 뺨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손으로 상처를 막았지만 역부족인 듯했다. 그의 셔츠와 왼쪽 팔목도 피로 흥건히 물든 상태였다.

주변 참석자들은 흉기를 휘두른 범인이 리퍼트 대사를 밀쳐 넘어뜨린 뒤 상체에 올라탔다고 했다. 그러곤 준비한 25cm 길이의 흉기로 리퍼트 대사의 얼굴과 팔을 수차례 공격했다. 주위 사람들의 제지가 없었다면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었던 긴박한 상황이었다. 헤드테이블에 있던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은 "범인이 '미군' '미군'이라는 소리를 질렀다"고 말했다.

리퍼트 대사는 사고 직후 침착하게 대사관 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현장을 빠져나갔다. 반면 주최 측과 수행원들은 당황했다. "112에 신고하라" "119 구급차를 부르라"고 말했지만 제대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 리퍼트 대사 전용차는 주차장에 있어 곧바로 도착할 수 없었다. 출근시간 광화문 일대에선 빈 택시를 찾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3∼4분이 흘렀다. 한국의 맹방인 미국의 현직 대사가, 미국대사관이 눈앞에 마주 보이는 곳에서 피를 흘리며 서 있는데도 도움의 손길은 미치지 않았다. 만약 생명이 위독할 정도의 공격을 받았다면, 다른 공모자가 추가 범행을 저질렀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아찔했다.

다행히 현장을 지나던 112 순찰차가 보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것은 아니었다. 동아일보 기자는 순찰차에 달려가 "미국 대사가 테러를 당했다. 빨리 병원으로 데려가야 한다"고 말했고 잠시 어리둥절해하던 경찰은 서둘러 대사와 수행원을 싣고 인근 강북삼성병원으로 떠났다. 일행이 떠난 자리에는 리퍼트 대사가 흘린 선혈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범인이 가져온 유인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김기종 씨가 뿌리려 했던 유인물.

○ 살인하려던 범인, 오히려 "다쳤다"며 아우성

같은 시간 조찬행사장 안. 범인은 헤드테이블 주변 사람들에게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생활한복 차림에 덥수룩한 턱수염을 기른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때까지 참석자들 누구도 그가 왜 칼을 휘둘렀는지 몰랐다.

기자가 "당신은 누구냐. 왜 이런 짓을 저질렀느냐"고 묻고서야 그는 "나는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이다. 전쟁연습 (한미) 훈련을 반대하기 위해 테러를 저질렀다"고 외쳤다. 이어 "오늘 테러했다. 유인물은 노정선 교수에게 있다. 2일 (한미) 훈련을 반대하며 만든 유인물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에 끌려 나가면서도 "미국 놈들에게 칼질했다. 왜 우리 땅에서 전쟁 훈련하느냐"라고 소리쳤다. 본인의 행동이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는 개의치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해치려 했던 그는 연행 중에 "내 다리가 꺾였다"며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이날 노정선 연세대 명예교수(YMCA전국연맹 통일위원장)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씨가 범행을 저지를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김 씨가 참석하는 줄도 몰랐고 일행도 아니었다"며 "범행 직전 불쑥 내 앞에 유인물을 놓고 대사를 향해 뛰쳐나가 말을 붙일 수도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김 씨가 신촌이라는 같은 공간에 있고 평소 안면이 있다 보니 나에게 유인물을 맡긴 것 같다"고 해명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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