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친기업 정책'의 허상에 현혹되지 말라"

정유진 기자 2015. 3. 4. 23: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든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친기업 정책'의 실체는 무엇일까. 친기업 정책이 진짜로 일자리를 늘려줄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수많은 기업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친기업 정책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기고문을 통해 "친기업 정책과 친부자 정책을 혼동하지 말라"며 친기업 정책의 허상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세금 탈루, 시장 조작, 보너스 잔치 등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업인들은 여전히 경외의 대상으로 남아있다"면서 "부자증세나 규제강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반기업적인 주장으로 여겨지고, 서민 복지를 앞세우는 정치인조차도 늘 '친기업' 이미지를 유지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친기업'

장하준 교수

이란 말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통상 우리는 '부자'와 '기업인'을 헷갈리곤 한다"면서 "모든 부자가 기업인은 아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재산을 물려받는 등 단순히 돈이 많은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인이 아닌 부자들도 소비를 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소비는 누구나 할 수 있다"면서 "사실 가난한 사람들일 수록 소득 대비 소비 비중이 더욱 높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냥 부자가 아닌 기업인은 어떨까. 이들에 대한 규제나 처벌을 완화해주면 일자리가 늘어나고 사회에 도움이 될까. 장 교수는 "기업의 세금을 완화해주면 결과적으로 사회의 다른 누군가(다른 기업 포함)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면서 "정부가 기업 세금이 줄어드는 만큼 공공서비스를 축소시킬 것이 아니라면 결과적으로 어디에선가 (그만큼의 세금을 더 걷어) 재원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보다 '기업의 이익'이란 용어가 허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산업은 농업, 제조업, 에너지, 건설업, 금융업, 부동산업 등 다양한 분야로 구성돼 있다. 다른 분야에 속한 기업간의 이익은 서로 상충하기 쉽다. 예를 들어 에너지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주면 결과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다른 기업이 피해를 보게 된다. 통화가치가 올라가면 금융업은 이득을 보지만, 수출업종은 손해를 본다.

장 교수는 "정부가 주장하는 '친기업 정책'의 모호함을 악용해 기업들은 '특별대우'를 요구하며 로비를 한다"며 "이 때문에 일반 서민들은 실업연금이나 장애인 수당을 타는게 힘들지만, 기업들은 이제까지 손쉽게 저리로 돈을 빌리거나 공적자금을 받는 혜택을 누려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충하는 기업간 이익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보다 명확하고 정교한 '친기업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정부"라고 강조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