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상담심리사 꿈 짓밟는 '공공기관 열정페이'

이지수 입력 2015. 3. 1. 19:24 수정 2015. 3. 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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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립복지센터 17곳중 15곳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사례' 미끼, 자원 형식 취해 100시간 잡무만대학원생 "무급 알바" 불만 잇따라.. 취업난속 절박한 처지 악용 비난

상담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원생 A씨는 상담심리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서울의 한 구립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일했다. 센터 측은 '자원 상담원'으로 100시간 일해주면 청소년 상담을 주선, 상담사례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상담 사례'를 확보하도록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A씨가 복지센터에서 한 일은 상담이 아니라 '잡무'나 다름없는 행정보조 업무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센터로 출근한 A씨는 4시간 동안 공문을 정리하거나 센터 상담실적을 전산에 입력해 정부기관에 보고하는 일, 홍보물품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 상담 관련 일이라고는 전화로 상담사례를 접수하거나 온라인에 올라온 상담 건에 답글을 달아 센터 쪽으로 재문의하라는 글을 남기는 일이 전부였다.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결국 A씨는 상담 사례 획득을 포기하고 5개월 만에 센터를 그만뒀다.

A씨는 "정규직 직원들이 '상담 사례를 받고 싶으면 직원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말로 대학원생들을 통제했다"며 "상담 사례를 미끼로 상담심리사가 꿈인 대학원생들을 사실상 '무급알바'로 부려먹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가 '학점인정 인턴제'라는 미명 아래 대학생을 부당하게 부려먹고 있는 실태가 세계일보 보도(2월16·17일자)로 확인된 데 이어 공공기관인 서울시내 구청들도 대학원생을 '열정 페이'의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민간기업, 공공 기관 가릴 것 없이 취업 절벽에 선 학생들의 절박한 처지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일 서울시청에 따르면 청소년상담복지센터 25곳 가운데 자원상담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17곳이다. 이 중 마포구와 구로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만이 '인턴 상담원'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원생을 뽑아 소정의 임금을 주고 있다.

임금을 주지 않는 15개 복지센터가 100시간을 일한 대학원생에게 주는 것은 상담사례뿐이다. 대학원생들은 상담과 무관한 행정업무 등 잡무를 하며 시간을 채워야 한다. 센터가 잡무에 필요한 인력을 별도로 채용하지 않고 상담사례를 미끼로 자원상담원을 활용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B씨는 "대부분 정규직 직원들의 업무를 보조해 주는 일을 한다"며 "돈을 받지는 못하지만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일한다"고 말했다. 통상 한 센터마다 5명 안팎의 자원상담원이 상시로 일하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에서만 약 100명의 상담심리사 희망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열정 페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센터 측은 잡무를 시킨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대학원생이 하는 일이 상담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 센터 관계자는 "정직원이 소화할 수 없을 만큼 센터의 일이 많아 자원상담원을 뽑고 있다"며 "무급으로 업무 보조를 하더라도 상담관련 전문성이나 지식이 커지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상담심리사 자격증 시험을 총괄하는 한국상담심리학회는 시험 준비생들이 민원을 제기하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은경 상담심리학회 이사(명지대 청소년지도학과 교수)는 "실습을 명목으로 자원상담원이라는 이름을 달고 학생들을 뽑아 행정업무를 시키는 것은 부당하다"며 "회원 보호를 위해 조만간 학회 내 의견을 정리해 센터 측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지수 기자 v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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