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도 외로운 '무명의 3.1운동 순국자' 300인

성재호 2015. 2. 28.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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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내일은 96주년 삼일절입니다.

이제 4년만 있으면 어느덧 100주년인데, 아직까지도 삼일절이 되면 더욱 아쉽고 서러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3.1 운동 당시 목숨을 잃었지만, 아직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지 못한 순국자와 그 후손들입니다.

성재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지난 1953년 이승만 정부가 조사해 만든 삼일운동 피살자 명부.

645명의 순국자 이름과 나이, 순국장소와 상황까지 자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60년 동안 일본 주재 한국대사관 창고에 묻혀 있던 이 명부는 2년 전에야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명부에 적힌 순국자를 찾아 보았습니다.

<녹취> 마을 주민 : "삼일운동 한 집안 여기서 이 양반 밖에 없어요."

명부 속에 적힌 송성호 선생의 손자.

취재팀을 보자마자 할아버지가 숨진 곳으로 발길을 이끕니다.

<녹취> 송학섭(송성호 손자) : "이 근방에서 총에 맞아 소나무를 안고 빙 돌다 쓰러지셨대... 누가 그걸 봤대..."

3.1 운동 당시 일본 헌병 주재소를 습격하다 체포된 이승면 선생은 옥고를 치르다 병을 얻어 이내 숨졌습니다.

<녹취> 이승면 선생 종부 : "감옥에서 병이 들어서 심하게 앓다가 돌아가신 거예요."

명부나 지역의 기념비에 다른 이름으로 올려진 경우도 있습니다.

용인에서 순국한 성낙중 선생이 그렇습니다.

<녹취> 성기홍(성낙중의 손자) : "우리 할아버지 맞아요. 여기 혹을 하나 떼면 '중'자가 되거든요."

정부는 명부 발견 이후 지금까지 서른 분을 유공자로 추가 서훈했습니다.

하지만 앞선 송성호, 이승면, 성낙중 선생은 모두 빠졌습니다.

사망 일자가 써진 제적부 같은 순국을 입증할 기록이 없어서 입니다.

<녹취> 김정아(국가 보훈처) : "순국하신 분은 별다른 기록이 없으니까 저희가 확인할 수 있는 건 제적부가 있어야..."

이처럼 삼일운동 피살자 명부에는 있지만 아직 유공자로 서훈되지 못한 분은 무려 320분이나 됩니다.

유관순 열사보다 어린 14살의 순국자부터, 20대 부부 순국자 등 대부분 평범한 민초들입니다.

<녹취> 이정은 박사 : "독립 국가로서 자존심의 문제고 마지막 한 사람까지 찾아서 이름 밝혀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 4년 뒤면 삼일운동 100년.

과연 우리가 삼일절 100년을 기념해도 되는지 자문해볼 때입니다.

KBS 뉴스 성재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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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호기자 (jhsu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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