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땅 가자지구에 희망 불어넣은 '얼굴없는 화가' 뱅크시
'얼굴없는' 세계적인 그래피티 화가인 뱅크시가 폐허로 변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곳곳을 그림으로 수놓았다. 그래피티는 건축물의 벽면이나 지하철역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가자지구를 방문한 뱅크시는 자신의 방문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26일(현지시간) 인터넷에 공개했다. 이 영상은 마치 한 편의 여행 광고처럼 "새로운 목적지를 발견하는 한해를 만들어라. 가자지구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문구로 시작한다.
그는 이집트 국경에 있는 땅굴을 통해 가자지구에 들어갔다. 이 땅굴은 이스라엘에 의해 출입은 물론 물품 반입을 제한 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이 몰래 생필품을 밀수해 오던 통로다. 그의 화면은 지난해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가자지구의 모습과 부서진 건물 잔해 옆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담았다.
그가 찍은 가자지구의 모습 속에는 마치 그곳 풍경의 일부가 된 것처럼 그가 그린 그래피티가 보인다. 감시 타워에 줄을 매달아 그네를 타는 아이들, 무너진 건물 문짝에서 고개를 떨군 채 울고 있는 그리스 여신 니오베, 그리고 털실처럼 구겨진 건물 철근뭉치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 그림 등이다. 한 팔레스타인 남성은 뱅크시에게 "그림속 고양이는 갖고 놀 것을 찾았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무너진 건물의 출입문에서 고개를 떨군 채 울고 있는 그리스 여신 니오베 |
감시 타워에 줄을 매달아 그네를 타는 아이들 |
털실처럼 구겨진 건물 철근뭉치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 |
뱅크시가 그림을 그리고 간 집 주인인 무함마드 알 신바리는 "다시 집을 새로 짓더라도 그가 그린 그림은 결코 치우거나 팔지 않고 영원히 간직하겠다"면서 "유명한 화가가 가자지구에 와서 우리를 지지해 준 것이 자랑스럽다"고 AFP통신에 말했다. 가자지구는 지난해 여름 이스라엘의 침공으로 10만여 가구가 파괴되고, 2200명이 목숨을 잃는 피해를 입었다. 사망한 사람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뱅크시는 영국 국적이라는 사실 외에는 모든 정체가 베일에 싸여있다. 그는 세계의 다양한 문제와 부조리 등을 그림으로 비판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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