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공주와 거울, 그리고 셀카 본능

김익현 기자 입력 2015. 1. 28. 15:11 수정 2015. 1. 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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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36년 8월 3일. 훗날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자리매김한 자크 라캉은 이날 중요한 논문을 한 편 세상에 공개했다. 국제정신분석학회에서 발표한 '거울단계'란 논문이 바로 그것이다. 이 논문은 철학자 라캉이 정신분석 운동에 발을 들여놓는 공식 출사표나 다름 없었다.

조금 현학적이긴 하지만 라캉의 거울단계 얘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보자. 라캉의 거울단계 이론은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 어린 아기를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한 논문이다.

이 단계의 어린이들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환호한다. 그 뿐 아니다. 아이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 하게 된다. 라캉은 바로 이 단계를 '거울단계'라고 불렀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단계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를 모르는 단계다. 다시 말해 아직 객관화되기 전 단계다.

라캉은 거울단계를 '상상계'라고도 불렀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단계인 셈이다. 이 단계를 지나면 사회적 자아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상징계'로 진입하게 된다. 이게 라캉이 거울단계란 논문을 통해 주장한 내용이다.

▲ 자크 라캉. <사진=위키피디아>

■ 자크 라캉의 거울과 백설공주의 거울

라캉을 흥분시켰던 거울은 전래 동화 백설공주에 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조금 익숙한 얘기이긴 하지만,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 길게 서술해보자.

전래동화 '백설공주'의 모티브는 거울이다. 더 정확하게는 거울 속에 비친 나. 조금 더 정확하게는 거울 속에 비친,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나. "당신이 제일 예쁘다"는 대답에 만족하던 왕비는 어느 날 거울로부터 청천벽력같은 대답을 듣는다. "당신보다 백설공주가 더 예쁘다."

왕비에겐 견고한 성처럼 유지돼 있는 자기 만의 세계가 근본부터 흔들리는 얘기. 그 대답으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잘 아는 것처럼 백설공주는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된다. 새로 들어온 왕비는 아름답긴 했지만 허영심이 많았다. 특히 이 왕비는 마법의 물건을 하나 갖고 있었다. 바로 거울이었다.

왕비는 늘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물었다. 그 때마다 거울은 늘 "왕비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십니다"라고 대답한다. 왕비로선 일종의 자기 존재 확인이었던 셈. 라캉식 표현으로 하자면, 왕비는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환호했다. 또 "왕비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십니다"란 대답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다.

▲ 백설공주. <사진=위키피디아>

하지만 백설공주가 일곱살이 되던 해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거울이 왕비 대신 백설공주가 가장 아름답다는 대답을 내놓기 시작한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 일곱 난장이와 키스 한 번으로 공주를 깨우는 왕자 같은 존재들이 등장한다.

(참고로 백설공주 이야기는 북유럽 설화에서 따온 것이다. 원래 설화는 계모가 아니라 친모가 딸을 학대하는 것으로 나온다. 또 아버지와의 근친상간 얘기를 비롯해 난장이들과의 성관계, 시체를 좋아하는 왕자 같은 잔혹한 모티브가 들어있다. 동화로 개작되는 과정에서 이런 내용들은 상당 부분 순화됐다고 한다.)

백설공주 속 '거울'은 왕비의 자기 확인 욕구를 표출하는 곳이었다. 바깥 세상에 비교적 단절된 삶을 살았음직한 왕비에게 거울은 세상의 모든 것이자, 자기 존재의 전부였다.

사실 거울 욕구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통상적으로 여성이 조금 심하긴 하지만, 남성이라고 해서 그다지 덜할 것도 없다.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픈 욕구는 끊을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 거울, 21세기 들어서 셀카 본능으로 진화?

자, 이제 눈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으로 한번 돌려보자. 여전히 거울은 '존재 확인 플랫폼'이란 역할을 나름대로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 역할을 독점하지는 못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 '셀카 본능'에 역할 중 많은 부분을 넘겨줬다. 게다가 21세기의 거울인 셀카 본능에는 한 가지 날개가 더 달려 있다. '공유'란 멋진 말로 포장된 인간의 자기 과시 욕구다. '거울 시대'엔 혼자만 볼 수 있었던 모습을, 이젠 모바일과 SNS란 멋진 플랫폼을 통해 순식간에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게 됐다.

그런 점에서 난, 모바일과 SNS 혁명은 라캉식 '거울단계'의 도달 범위를 전 지구적 범위로 확장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 사진 작가 로버트 코넬리우스가 1839년에 찍은 세계 첫 셀카. <사진=씨넷>

이쯤 되면 당연히 제기됨직한 질문이 있다. 21세기 들어 겨우 등장한 '셀카 본능'을 인류 고유의 '거울 본능'과 연결시키는 건 과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바로 그것. 하지만 역사를 따지고 들어가면 꼭 그렇게 얘기할 것만도 아니다.

'확대된 거울'인 셀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됐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183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 사진사인 로버트 코넬리우스가 자기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면서 찍은 사진이 '셀카 혁명의 원조'로 꼽힌다.

잘 아는 것처럼 19세기 초반이면 다게레오타입 카메라가 유행하던 시절. 요즘처럼 눈깜짝할 사이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로버트 코넬리우스 역시 셀카를 찍기 위해 꼬박 15분 동안 꼼짝도 않고 포즈를 취해야만 했다. 실제로 남아 있는 코넬리우스의 셀카 사진을 보면 어딘지 찡그린 인상을 하고 있다.

씨넷은 최근 세계인의 시선을 끈 기이하고 멋진 셀카 사진들을 소개했다. 이 기사에는 로버트 코넬리우스의 유서 깊은 셀카부터 볼케이노 화산구 앞에서 포즈를 취한 배우의 셀카, 화성탐사 로봇의 셀카에다 랍비 2천 여 명이 포즈를 취한 셀카까지 다양한 사진들이 소개됐다.

셀카 본능과 관련해서 재미 있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연구팀은 연구 조사 결과 셀카에 중독 된 남성들의 반사회적 기질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반사회적 성향은 공감능력 부족과 충동적인 행동 경향 등을 포함한다. 물론 셀카를 많이 찍는 남성은 모두 정상 범위 행동 수준을 보이긴 했다. 하지만 반사회적 성향을 나타내는 부분에서 평균보다 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번 연구 핵심이 "셀카 많이 찍는 남성들이 나르시스트나 정신병자"라는 얘긴 아니다. 다만 잠재 의식 속에 그런 성향이 조금 더 있을 순 있다는 정도 의미다.

■ 백설공주 거울에서 셀카 본능의 교훈을 찾는다?

자, 이제 글을 맺자. 백설공주에서 거울은 '나만의 세계와 의식'을 간직하는 창이었다. 그 창은 개인적인 만족을 줄 때도 있지만, 과할 땐 조급증과 공격 성향으로 표출됐다. 라캉의 '거울 단계' 속에 만족하던 자아가 냉정한 현실 앞에서 좌절했다고나 할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또 다른 거울인 '셀카'가 있다. 셀카는 '거울단계'의 모바일 버전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되는 주장은 아닐 것 같다. 자기 만족을 주는 셀카를 즐기면서도 조금은 조심할 필요가 있는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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