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그 후, 파리를 가다](2) 11년차 이주자 "차별은 일상.. 프랑스인이라 느낀 적 없다"

파리 | 남지원 기자 2015. 1. 30.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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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쇄 테러범들 살았던 파리 19구거리엔 흑인·헤자브 차림 여성들가난 드러나는 이민자 거주지

▲ "똑같이 프랑스에서 나고 자라도이민 2세대는 같은 기회 못 가져내 딸이 불만 갖는 건 당연한 일"

프랑스 파리 한복판, 명품 매장과 고풍스러운 건물이 즐비한 샹젤리제 거리에서 지하철을 타고 북동쪽으로 20분 정도만 이동하면 파리의 또 다른 얼굴을 볼 수 있다. 29일 파리 19구의 한 골목길에서는 북아프리카 음식을 파는 식당과 무슬림의 전통방식인 '할랄'로 도축된 고기를 파는 정육점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어와 아랍어가 병기된 간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타키야(챙 없는 모자)를 쓴 남성들과 헤자브(머리 수건) 차림의 여성들, 흑인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프랑스어 간판과 안내판이 없었더라면 이곳이 파리라는 것을 실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난의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골목에는 을씨년스러운 고층 임대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다. 보도블록이 흔들리는 곳도 있었고, 곧 무너질 듯 창틀이 심하게 뒤틀린 건물이 방치돼 있기도 했다. 식당 메뉴판의 음식값은 도심 관광지의 절반 수준이다. 이곳은 파리 연쇄테러를 저지른 사이드 쿠아치·셰리프 쿠아치 형제와 아메디 쿨리발리가 살았던 곳이다. 세 사람이 소속됐던 자생적 지하드 조직 '파리19구네트워크'가 싹튼 곳도 이 지역이다. 평범한 이민 2세대 청년이던 이들은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극단주의를 접했다.

무슬림이 많이 사는 프랑스 파리 생드니의 한 골목에 29일 행인들이 지나가고 있다. 주로 무슬림인 이주자들은 파리 북동부 생드니 등 '방리유'라 불리는 교외 지역에 밀집 주거 지역을 형성해 살아간다. 파리 |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파리는 이민자와 원주민의 거주지가 완전히 분리된 도시다. 부유한 사람들은 남서부에 모여 살고, 이민자들은 북동부인 18·19·20구의 빈민가와 그 바깥쪽 '방리유(교외)'에서 자기들만의 세계를 형성하고 산다. 방리유 중 한 곳인 생드니의 한 카페에서는 계속해서 아랍어 노래가 흘러나왔다. 프랑스어 대신 아랍어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통화를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프랑스어로 말을 걸자 "프랑스말은 못한다"고 손사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카운터를 지키던 직원은 자기도 모로코 출신 이민자라며 "이곳에선 프랑스어를 못해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마누엘 발스 총리는 올 신년 연설에서 "프랑스의 지리적·사회적·인종적 '아파르트헤이트(분리)' 문제가 이번 테러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민자들을 주류사회에 통합시키지 못하고 빈민가에 묶어둔 정책 실패가 끝내 테러를 낳았다는 자성이다.

실제로 이날 만난 이민자들과 이민 2세대들은 자신들이 프랑스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서아프리카 섬나라 카보베르데 출신으로 11년 전 파리에 와 건설인부로 일하고 있는 넬슨(31)은 "눈에 보이는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차별은 그냥 일상적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여기서 구할 수 있는 일자리 중에 좋은 일자리는 없기 때문에, 많은 이민자들이 나처럼 건축현장에서 인부로 일한다"며 "나는 여기 살지만 아직 내가 프랑스인이라고 느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10살 난 딸을 키우고 있다는 알제리 출신의 회계사 린다(36)는 "나는 프랑스 사회에 성공적으로 자리잡았지만, 이민 2세대인 내 딸은 결코 프랑스인 부부 사이에서 난 아이들과 같은 기회를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 딸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라며 "똑같이 프랑스에서 나고 자랐지만 프랑스인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2세대들에게 불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상적인 편견과 차별은 분노를 부채질하고 점점 더 이민자들을 주류사회에서 떨어뜨린다. 알제리계 이민 2세대 야니스(19)는 "생드니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도심에서는 늘 기분 나쁜 일이 생긴다. 사람들은 우리가 당연히 범죄를 저지를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쇼핑몰 보안요원이 다른 사람들은 그냥 보내면서 나만 불러 가방을 뒤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집트 이민 2세대 카네드(19)는 "지하철에서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은 가방을 단속하고 휴대전화를 챙긴다. 사람들이 우리에 대한 부당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이 제일 싫다"고 했다.

테러 후 무슬림 이민자를 향한 시선은 더욱 차가워졌다. 세네갈 이민 2세대 마마두 디에바라트(14)는 "아랍과 아프리카 사람에 대한 적대감이 더 심해졌다는 것을 매일 느낀다. 요즘은 마치 전쟁 같다"고 말했다. 이민자에 대한 차별이 극단주의가 싹틀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극단주의는 다시 편견을 낳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파리 |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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