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진의 SBS 전망대] 표창원 "식물인간 아내 죽인 70대, 안타깝지만 살인죄 해당"

2015. 1. 3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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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수진 / 사회자 :

70대 남편이 60대 아내를 살해한 뒤 자살을 기도했다가 아들에 의해 구조되었는데요, 이 할아버지는 병원 치료가 끝나자마자 경찰에 구속되었죠. 피해자인 할머니는 2013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계속 식물인간 상태였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할아버지, 일종의 '존엄사 내지 안락사'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오늘 '표창원의 사건과 사람들'에서 이 문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표창원 소장님, 어서오세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네, 안녕하세요?

▷ 한수진 / 사회자 :

일각에서는 할아버지를 구속한 것은 지나치다, 이런 의견도 있는데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우선 경찰은 피의자인 할아버지가 아내를 목 졸라 살해한 후에 미리 사 두었던 살충제와 제초제를 마시고 자살을 기도했기 때문에 구속하지 않으면 또 자살시도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생명보호 차원에서 구속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할아버지의 행동이 우발적인 행위라기보다는 계획된 고의적 살인이기 때문에 혐의가 무거워 구속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엄밀하게 따지자면, 이 사건은 존엄사나 안락사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존엄사나 안락사에 해당하지 않는다, 왜 그렇죠?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우선 존엄사는 말 그대로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죽을 권리'를 인정해준다는 의미입니다. 영어로 'Death with Dignity' 라고 하죠. 다른 말로는 '자발적 안락사, 즉 voluntary euthanasia' 라고 합니다. 형법적으로 따지자면 자살하고 싶은 사람을 도와서 죽게 해주는 '자살방조죄'에 해당하지만, 특별법 제정으로 면책해준다고 볼 수 있죠.

존엄사를 법으로 허용하는 네덜란드나 벨기에, 룩셈부르크 그리고 미국의 오레곤, 버몬트 및 워싱턴 3개 주의 법에 따르면 존엄사의 요건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정신능력이 있는 성인, 6개월 이하 시한부 불치병 환자, 스스로의 요청이 있는 경우 2명 이상의 의사의 진단을 거쳐 고통 없이 사망하는 약물을 처방하고 환자 본인이 투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비록 오랜 식물인간 상태이긴 하지만, 피해자인 할머니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적은 없습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그래서 존엄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럼 안락사는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우리가 흔히 안락사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비자발적 안락사' 즉, 존엄사처럼 불치병 환자 스스로 죽음을 택할 권리를 인정해 줘서, 자살하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미성년자 혹은 정신질환이나 식물인간 상태 등으로 인해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능력이 없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의사의 처방으로 고통 없이 죽는 약을 투약하거나, 인공호흡기 등 생명보조장치를 제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살을 돕는' 존엄사와 달리 '살인을 통해 고통을 덜어주는' 안락사는 대부분 나라에서 허용되지 않습니다. 살인죄로 처벌하죠.

이번 사건에서도 본다면, 의사의 처방도 아니고, 소극적인 생명연장장치 제거 방법도 아닌, 고통스럽고 참혹하게 사망하게 하는, 고의적인 살인의 방법이기 때문에 안락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그렇군요. 사정은 딱하지만, 존엄사나 안락사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처벌을 면할 수는 없다, 이런 말씀이시네요,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안락사는 물론, 존엄사도 허용되지 않고 있죠?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그렇습니다. 지난 1997년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사고로 머리를 다친 남편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겨우 목숨만 유지하고 있고, 의사가 회생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하자, 비싼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한 부인이 의사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퇴원을 요구했고, 병원은 이후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고 퇴원을 시켜준 사건이 있었죠. 환자는 집에 가서 호흡기를 뗀 지 5분 만에 사망했고 검찰은 살인죄로 부인과 의사를 기소했습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결국 부인과 의사가 유죄 판결을 받았었죠?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네, 부인은 살인죄, 의사는 살인방조죄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소위 '안락사 논쟁'이 의료계와 생명윤리학계, 법학계 등에서 활발히 전개되어 왔고요, 그 결과가 200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당시 인공호흡기 등 '연명치료'에 의존해 목숨만 부지하고 있던 76세의 식물인간 상태인 할머니에 대해 연명치료를 중단한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결정을 하게 됩니다.

당시 대법원은 법이 허용하는 연명치료 중단의 조건으로 △생명존중의 헌법이념에 따라 극히 신중해야 하고 △회복 불가능한 사망단계로 평가돼야 하며 △환자의 의사가 추정될 수 있어야 하는 등의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이 판결 이후 4년이 지난 2013년, 보건복지부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 초안을 마련했지만, 생명경시풍조를 조장한다는 종교계 등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 입법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말씀 듣고 보니까, 이번 식물인간 할머니 살인 사건의 경우에도, 이 연명의료결정법이 입법되었다면, 남편인 할아버지가 굳이 이런 끔찍한 살인이라는 방법을 택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분명히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통계를 보면요, 연명의료를 받다가 사망하는 사람만 한해 평균 3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의학의 발달로 인해서 과거 같으면 이미 사망했을 불치병 환자들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인공호흡기나 신장투석 등 의료장비들이 개발되었죠.

문제는, 의학적으로 치료나 회복의 가능성이 없는 가운데 참기 힘든 고통을 견디며 목숨만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환자들과, 엄청난 비용을 부담하며 가족의 고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자신들의 몸과 마음도 망가져 가는 가족들입니다.

그 중에 일부는 이번 사건처럼,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손으로 환자인 가족을 살해하고 그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채 스스로도 목숨을 끊으려 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죠.

▷ 한수진 / 사회자 :

참 안타깝습니다. 그렇지만, 생명의 소중함, 아무리 의학적으로 치료가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더라도,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법으로 허용할 수는 없다는 반대 측의 논리도 일리가 있잖아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물론 그렇죠. 그래서 우리 뿐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 존엄사 문제는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고, 입법화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미국의 경우 지난해 11월 공개적으로 존엄사를 선택한 29세의 여성 브리타니 메이나드로 인해서 존엄사 허용 여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네, 참 쉽지 않은 문제, 존엄사,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내가, 혹은 내 가족이 극심한 고통 속에 연명치료에 의존해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표창원 소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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