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이태석 병원은 어디로..남수단의 기약없는 기다림

조을선 기자 2015. 1. 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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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째 호텔에 묵고 있던 이들의 손에는 얇고 하얀 봉투가 들려있었다. 봉투 위엔 받는 이의 이름이 간결하게 적혀있었다. 'Park Geun-Hye President'. 아프리카 남수단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려는 친서였다.

최근 남수단의 한 장관과 부장관, 차관이 한국을 찾았다. 고 이태석 신부의 봉사 정신에 감사하다는 내용이 담긴 남수단 대통령 친서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가지고 온 친서 옆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놓여있었다. 사진은 고 이태석 신부와 관련된 3년 전 행사를 담은 것들이었다.

지난 2012년 1월, 한국에서 남수단 정부 대표단과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수출입은행 그리고 한 언론사는 공동으로 '울지마 톤즈 사업 출범식'을 열었다. 의료 환경이 열악한 남수단에 병원을 짓는 데 한국 정부가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던 것이다. 병원 이름은 고인이 된 이태석 신부의 이름을 따, '이태석 기념 의과대학병원'이라 지었다.

'울지마 톤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고 이태석 신부의 숭고한 이야기는 이미 알려진 터라, 이태석 병원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고 이태석 신부는 의료환경이 열악한 남수단에서 10년 동안 의료 봉사와 교육 활동을 하다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수단 정부는 그의 봉사정신을 기려 그의 이름을 딴 병원을 짓고자 했고, 한국 정부에 차관을 요청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 또한 이에 흔쾌히 응했다. MOD 체결과 함께 수차례 실무 협상도 이뤄졌다.

시간이 흘러 2015년 현재,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3년이 넘었지만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이것이 남수단 장차관들이 한국을 찾은 이유였다. 이들은 고 이태석 신부 5주기를 맞아 남수단 대통령 친서를 전하며 다시 한 번 한국 정부에 병원 건립에 필요한 차관을 요청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외교적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는 남수단에서 온 장차관들을 만나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들은 수차례 외교부와 국회를 통해 정부에 친서라도 전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의 소식은 결국 기자에게 전달됐다.

호텔 로비에서 만난 이들은 'Father John Lee'라는 이름을 몇차례고 반복했다.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눈은 빛났고, 목소리는 떨렸다. 남수단에서 불리던 고 이태석 신부의 이름이다.

릴리 아콜 농림부 부장관은 말을 이었다. "그는 단순히 성직자나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태석 신부에게서 삶의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이태석 신부를 만난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 남수단의 의료 환경을 개선하고, 가난과 싸워내고 싶어합니다. 전쟁과 가난을 겪었던 한국이 지금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그가 남수단에 남겨놓은 위대한 유산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이태석 병원을 건립해 그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1899년부터 시작된 영국과 이집트의 통치 하에서 남북으로 분리된 뒤 내전을 치렀던 수단. 결국 2011년 남수단이 수단에서 분리되며 독립국가가 됐지만 수단 정부의 차별 정책으로 남수단은 개발이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내전으로 황폐화돼 가난과 질병으로 신음하는 남수단은 UN이 정한 최우선 지원국이기도 하다.

희망이란 말을 입에 올리기도 힘든 나라에서 고 이태석 신부는 이들에게 삶의 이유를 전했다. 이 신부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났지만 남수단은 여전히 그를 잊지 못했고, 그가 남긴 희망의 불씨를 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외교부가 이태석 병원 건립 유보 결정을 내리며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내전이 다시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만약 내전이 일어나면 차관을 돌려 받기 어렵다고 보았다. 또한, 병원에 전기와 물의 안정적인 공급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남수단 장차관들은 병원이 건립될 남수단의 수도 주바는 안전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국 군인들로 구성된 한빛 부대도 남수단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외신에 의존하기보다 직접 와서 두 눈으로 본다면 안심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병원이 부족해 지금도 말라리아와 콜레라같은 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많은데 병원 건립을 마냥 늦출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한국을 찾은 지 사흘만에 외교부 관계자들을 만났다. 외교부의 국장과 과장급 선에서, 협의가 아닌 친서를 전하는 자리라는 전제로 만남이 성사됐다. 이들은 친서를 전하며 남수단이 안전하다고 강조했지만, 외교부는 "권한이 없다, 현지 대사와 상의해보겠다"는 말만 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남수단 대표단은 빈손으로 고국으로 돌아갔다.

외교부의 말처럼 내전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병원 건립에 차관을 대주는 것은 부담일 수 있다. 하지만, 1950년 동족 상잔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이 준전시 상황에서도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원조와 차관을 받고 일어날 수 있었던 지난 날을 떠올린다면, 남수단에 대한 예우가 적절했던 걸까.

이명박 정부는 국제사회에 대한 원조 수준을 2015년까지 국민총소득 대비 0.25%로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박근혜 정부도 같은 약속을 했지만, 0.16%에 그치고 있다. OECD 최하위 수준이다. 심지어 한국은 빈곤국에 대한 대외원조에서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27개국 가운데 지난해까지 '7년 연속 꼴찌'라는 오명도 받고 있다. 남수단 사례가 아니더라도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대외 원조에 대해 소극적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 남수단의 경우 약속한 병원 건립이 당장 어렵다면, 의료 체계 개선을 위해 다른 대안이라도 제시했어야 하지 않을까. 혹은 최소한, 한국을 찾은 남수단 대표단에 대한 예우는 좀 더 갖췄어야 하지 않았을까. 기약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남수단의 아이들과 난민들에게 부끄러워지는 건 기자 뿐일까.조을선 기자 sunshine5@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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