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로 몸통" 구체적 수치까지 빼내.. 원전 수출에도 악재

임소형 남상욱 2014. 12. 22.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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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도면 유출 파장

21일 새벽에도 글·문서 올려 3차례 걸쳐 10건 가까이 유출

월성 감속재계통 도면에는 배관 길이·밸브 형태 상세히

모두 외국 설계도로 지어져 자칫 국제소송으로 비화할 수도

월성 원자력발전소

국내 원자력발전소의 도면과 매뉴얼 등 한국수력원자력 내부 문서가 추가로 인터넷에 공개됐다. 문서 유출 원전이 모두 외국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자칫 국제소송으로 이어지거나 향후 원전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원전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공개된 문서만으로는 외부에서 원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시도를 하지는 못할 것"이라면서도 "문서 내용의 경중을 떠나 국가보안시설에 구멍이 뚫렸다는 사실이 심각한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번 한수원 문서유출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21일 새벽 트위터에 한수원을 조롱하는 글과 함께 문서들을 공개했다. 스스로 '원전반대그룹 회장'이라고 지칭한 이 트위터 사용자는 25일부터 고리1,3호기, 월성 2호기를 가동 중단하라고 거듭 요구한 뒤 "자료 넘겨주는 문제는 가동 중단 후에 뉴욕이나 서울에서 면담해도 되죠, 돈은 어느 정도 부담하셔야 할 거예요"라고 밝혔다.

이날 공개된 문서는 ▦고리 2호기의 공기조화계통 도면 ▦월성 4호기 안전성분석보고서 ▦MCNP5 프로그램 ▦BURN4 매뉴얼 4개 파일이다. 지난 15일부터 3차례에 걸쳐 공개한 ▦월성 1ㆍ2호기 제어프로그램 해설서 ▦월성 1호기 감속재계통 도면 ▦고리 1ㆍ2호기 배관계측 도면 ▦고리 1호기 냉각시스템 밸브 도면 ▦한수원 전ㆍ현직 직원 개인정보 등 지금까지 유출된 문서는 10건 가까이 된다. 직원 개인정보를 제외하면 모두 원전 현장과 관련 있는 자료다.

유출된 문서 중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자료는 감속재계통과 배관계측 도면이다. 감속재계통은 지름이 10m가 넘는 커다란 원통으로 원자핵반응을 촉진시키는 물질(감속재, 월성 원전에선 중수)이 공급되는 통로다. 원자로의 '몸통'인 셈이다. 배관계측 도면은 감속재 계통에 연결돼 있는 배관의 구조를 나타낸 그림이다.

감속재계통과 주변 배관 구조는 대학 강의에도 쓰일 만큼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문제는 이 도면들이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감속재계통에서 나오는 배관의 길이와 두께, 지름은 물론 밸브가 어디에 어떤 형태로 붙어 있는지도 표시돼 있다"며 "원전 설계 전문가라면 문서를 보고 원전 일부의 구조를 넘겨짚을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상세한 원전 내부 데이터가 유출됨에 따라 국제 소송으로 번지거나 원전 수출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월성과 고리 원전은 각각 캐나다와 미국 기술을 바탕으로 지어졌다. 서 교수는 "도면 원 제작사인 캐나다원자력공사와 미국 웨스팅하우스(일본 도시바가 인수)가 자사 관련 자료의 유출 책임을 물어 소송을 제기할 경우 한수원으로선 어떤 형태로든 합의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국제 원전시장에서 한국산 원전의 신뢰도 추락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가 간 신규 원전 건설 수주에서 경쟁국이 우리 원전을 평가절하하기 위한 좋은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됐다"고 원자력 전문가들은 개탄했다.

21일 추가 유출된 한수원 문서 중 공기조화계통 도면은 원전의 냉각시스템 구조를 뜻하고, MCNP5는 노심(원자로 중심부)에서 일어나는 중성자나 방사선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프로그램으로 전문가들 사이엔 이미 공개돼 있다. BURN4는 핵분열반응 생성물이 원자로 안 어디에 얼마나 남아 있을까를 실시간으로 계산하는 프로그램인데, 현재 한수원이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한수원은 이전 문서들과 마찬가지로 "일반 기술자료라 원전 안전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원자력계 내부에서조차 "안전하다는 설명만 반복하지 말고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고 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자연재해뿐 아니라 사이버공격을 비롯한 각종 테러 위협에 대해 철저히 대비하고 안전을 보강해야 한다고 원자력계 안팎에서 계속 강조해왔는데도 이번 같은 사고가 생긴 건 분명 관리 소홀이며 책임이 엄중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개인정보범죄 정부합동수사단(단장 이정수 부장검사)은 이날 유출 경로를 추적하며 범인 추적에 나섰다. 합수단은 범인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IP의 위치가 지방 모처로 파악됨에 따라 이날 현장에 수사관을 급파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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