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예탁자 명부에 '김씨, 이씨, 박씨'.. 조선인 확실

권기석 기자 2014. 12. 19.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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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징용 조선인 예탁금 日 세관서 발견 안팎

일제에 의해 태평양전쟁에 강제 징병·징용됐던 조선인들이 종전 후 일본 세관 8곳에 맡긴 돈이 반세기 넘게 잠자고 있다는 사실은 각 세관의 자발적인 홍보가 단초가 돼 드러났다. 이 돈의 주인들은 일본 본토에 상륙한 이후 곧바로 한국으로 되돌아와 돈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명단을 확보한다고 해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탓에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은 낮다.

◇누가 왜 일본 세관에 돈을 맡겼나=일본 세관에 돈을 맡긴 사람은 일본군에 소속돼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군인, 군속, 노무자다. 이들은 일본이 전쟁에서 진 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등지에서 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이들 가운데는 조선인도 섞여 있었다. 일제의 공식적 강제 징병자는 약 21만명이며 여기에 군속과 노무자까지 합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학계에서는 남태평양 군도 등 동남아시아 전쟁터로 끌려간 조선인이 일본이 집계한 5만2000여명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귀국하는 항구의 세관에서 수중에 갖고 있던 돈을 위탁해야 했다. 해외에서 갑자기 돈이 유입될 경우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지시였다. 지침은 민간인 1000엔, 장교 500엔, 하사관 200엔까지만 반입을 허용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100엔 이상의 통화와 증권을 모두 위탁하도록 했다. 화폐는 옛 일본은행권뿐 아니라 조선은행권, 만주중앙은행권, 옛 소련권도 위탁 대상이었다. 일본군 군표도 위탁해야 했다. 중일전쟁할인국고 채권, 대동아전쟁할인국고 채권, 생명보험 증서 등도 맡겨졌다. 돈을 맡긴 사람은 보관증을 받았고 여기엔 위탁자의 인적사항이 기재됐다. 각 세관도 이를 기록했으며 이후 명단 전산화 작업을 진행했다.

◇반환되지 않은 돈 더 많아=마이니치신문의 지난 8월 12일 인터넷 기사에 따르면 종전 후 나고야항으로 귀국한 사람은 약 26만명이다. 이 가운데 약 9000명(1만5000여건)이 돈을 위탁했다. 그런데 나고야세관이 1953년 9월 반환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돈을 찾아간 사람은 3000여명에 불과하다. 약 6000명(1만1000여건)의 돈이 70년 가까이 세관에 보관돼 있는 것이다. 일본 전체로는 약 87만건이 반환되지 않았다는 한 지역신문 보도가 있다.

오래된 화폐에 대한 관리가 어려워지자 각 세관은 수년 전부터 적극적으로 홍보를 시작했다. 홈페이지뿐 아니라 지역·전국 단위 신문에 위탁금을 찾아가라는 공고를 내고 홍보동영상도 찍었다. 1년에 한 차례씩 보관된 돈을 꺼내 바람에 말리는 작업을 해서 화폐·증권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각 세관의 홍보에도 반환율이 높지 않은 이유는 조선인이 상당수 포함돼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당시 동남아 등지에서 참전한 조선인은 대부분 일본 항구를 경유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 뒤 일본 세관에 맡긴 돈을 찾으러 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 세관은 '김씨, 이씨, 박씨 등 조선인으로 보이는 이름이 있다'고 확인했다.

◇위탁한 돈 돌려받을 수 있나=정부가 외교적 노력으로 세관에 돈을 맡긴 조선인의 명단을 확보한다 해도 돈을 돌려받기는 쉽지 않다. 일본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식민지 시대 모든 채권·채무가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단 돈을 맡겨 채권·채무 관계가 발생한 시점이 종전 이후이므로 법적으로 다퉈볼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에 하나 돈을 돌려받을 경우에도 실익이 크지는 않다. 일본 세관은 그 사이의 가치 하락과 무관하게 화폐·증권을 보관한 그대로 돌려주고 있다.

다만 화폐와 증권의 주인들이 채권·채무 기록을 근거로 우리 정부에 대신 돈을 지급해줄 것을 요청해볼 수는 있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일본 전범기업의 미지급 임금 기록 등을 토대로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가치를 반영해 1엔당 2000원을 지급한다. 학계는 "강제 징병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이므로 정부가 꼭 명단을 건네받을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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