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대학 졸업 작품도 '돈거래'

성용희 2014. 11. 25.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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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생들, 취업 준비하느라 논문도 사서 낸대"

취업난에 대해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듣게 된 말입니다. 전부터 졸업 논문 대행업체가 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정말 논문을 사서 내는 건 본 적도 없고 설사 있다고 해도 소수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과열되는 '스펙' 경쟁과 취업난 때문에 대학생 사이에는 이런 현상이 널리 퍼져있다는 겁니다. 명백한 학칙 위반인 데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중고 물품 거래사이트에서 쉽게 거래

곧장 인터넷에 '졸업 논문'으로 검색해봤습니다. 대행업체 광고가 쉽게 눈에 띄었습니다. 더 놀라웠던 것은 주로 공대나 미대에서 제출하는 졸업 작품이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었다는 겁니다.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에서 졸업 작품으로 검색하자 졸업 작품을 사고 판다는 글 수십 개가 나타났습니다. 적게는 25만 원에서 많게는 80만 원에 거래되고 있었고, 판매 글에는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사진, 동영상까지 달려 있었습니다.

실제 작품 구매도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판매 글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다음날 곧바로 판매자를 만났습니다.

■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취업 때문"

큼지막한 상자에 졸업 작품을 담아 온 판매자는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며 취재진을 화장실로 데려갔습니다. 화장실 콘센트에 전원을 연결하더니 열심히 기능을 설명합니다.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팀원 3명과 함께 3개월 동안 매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들여 만든 졸업 작품을 왜 남에게 팔려고 했을까요?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팔 결심을 했답니다. 3개월을 매달려 만들어낸 졸업 작품을 취업 자금 때문에 판다는 말을 듣자, 학생 개인의 도덕적인 문제라기보다 학생들에게 졸업 작품마저 팔도록 종용한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 생각이 더 짙어졌습니다. 판매자는 헤어지기 전, 취재진에게 심사를 통과하면 다른 사람에게 다시 팔라고 권유까지 했습니다.

■ 주문받아 제작해주는 전문업체까지 등장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아예 인터넷 사이트를 따로 차려 놓고 졸업 작품을 주문받아 제작하는 업체까지 등장했습니다. 온습도 센서, 인체감지 센서 등 십여 가지 제작 가능한 졸업 작품 종류와 함께 한 달 안에 제작할 수 있다며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가격도 30만 원에서 90만 원까지 다양했습니다.

구매 의사를 밝히면서 혹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물어보니, 업체 관계자는 자신들이 하드웨어까지만 만들어주고 보고서를 학생 본인이 작성하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며 안심시켰습니다. 이런 식의 상술이 졸업 작품을 만들 시간을 내기 어려운 대학생들의 현실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와 있었습니다.

■ 대학 졸업 작품의 의미를 되살리려면?

대학 졸업 작품은 대학에서 배운 지식의 산물로, 많은 정성을 들이기 마련입니다. KBS 보도 이후 해당 기사에는 '공들여 만든 사람만 바보 되는 것 아니냐.'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다'라는 댓글들이 달린 것을 보면서 취업 준비와 졸업 준비를 병행하며 고군분투중인 대학생들의 허탈감과 분노가 느껴졌습니다.

치열한 취업 경쟁 속에 졸업 작품을 단순한 통과의례로 여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대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과도한 조건들부터 하나씩 없애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짐을 덜어줘야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가기 [뉴스9] 대학 졸업 작품도 인터넷서 거래…주문 제작도

성용희기자 (heestor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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