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친 노예처럼 산다 느껴져" '곰신'들의 절절한 호소

2014. 11. 2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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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역장병 여자친구들, 문재인 의원과 간담회

'곰신들' 구타·가혹행위 등 군 생활 문제점 증언

"3시간도 못 자고, 욕 먹는 시간 따로 있어"

'꽃신'이 되고 싶은 '곰신'들이, 40여년 전 애인에게 '꽃신'을 신겼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만났다.

'곰신'은 현역 장병의 여자 친구를 일컫고, '꽃신'은 전역한 남자 친구와 만남을 계속하는 여자 친구들을 말한다. 특전사에서 복무한 문 의원은, 입대 전부터 사귀었던 김정숙씨와 결혼했다.

"남친이 축구를 하다 무릎을 심하게 다쳐 못 일어나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데 상관이 '엄살 피우지 말라'고 말했다고 해요. 수도통합병원 가라 해서 갔는데, 사람이 많아서 오후 2시에 다시 오라 해서 갔더니 내일 다시오라고 했대요. (중략) 심하게 다쳐서 12월에 수술해야 할 거 같다고 하네요." ('곰신 카페' 한 회원)

"애인이 다른 남자들보다 군대를 늦게 갔어요. 애인은 '군 기강이 바로 서야 한다는 거 동의한다'고, 그건 필요하다고 본대요. 문제는 선임이나 간부들이 후임병을 군인으로서 기강을 통제할 뿐 아니라 후임병의 사생활과 사람의 성격, '너 왜 이렇게 남자답지 못해!' 라면서 이런 식으로 개인의 생각까지 통제하려고 드는 권위적인 태도가 상당히 문제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걸 들으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곰신카페 다른 회원)

23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 한 카페에 모인 곰신카페 회원들은 간담회가 시작되자 거침없이 남친들의 군 생활을 전했다. '수도통합병원', '그린캠프(병영생활 적응 프로그램)', '간부' 등 군 생활을 하지 않는 이상 입에 붙지 않는 '전문 용어'들도 자주 오르내렸다. 이날 간담회는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문재인 의원이 '사랑하는 군화가 못한 말, 곰신이 대신합니다'라는 이름을 걸고 마련한 자리였다. 문 의원이 국정감사를 준비하면서 회원 수 49만명으로 국내 최대 군 관련 사이트로 꼽히는 곰신카페에 간담회를 요청해 성사된 것이다. 문 의원은 이날 들은 의견들을 상임위 활동을 하면서 정책 대안을 만드는 데 반영할 계획이다.

남친에게 '감정이입'해 털어놓는 내용이지만, 14명의 곰신들이 털어놓는 '군대 이야기'는 현재 병영 생활의 문제점들과 이를 바라보는 '젊은 장병 '들의 시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한 곰신은 "남친이 군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동기 생활관'(입대 동기끼리 같이 내무 생활을 하는 생활관 제도)을 쓰는데 그게 완벽히 동기가 아니라 같은 일병이어도 (입대) 월에 따라 기수가 나뉜다. 위에 선임들이 장난을 심하게 치는데 장난인 걸 알면서도 기분 나쁘고 수치심 느낄 때가 많았다고 한다. 수치심을 느끼지만 선임들은 장난친 거라고 하니 그에 대해 '기분이 나쁘다'고 말할 상황도 아니고. 이런 게 고쳐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남친이 제대가 9일밖에 안 남았는데 자기도 선임 되니까 후임에게 그런 장난을 친단다. (웃음) 거울 보고 '가위바위보해라'는 식의 장난 말이다"라며 "육체적으로 때리는 폭행만이 아니고 심리적 압박도 충분히 있는데 이런 데 대한 교육이 필요한 거 같다"고 지적했다.

의무병을 남친으로 둔 곰신은 "제 애인을 국방 의무를 다하도록 보낸 게 아니라, 큰 병원에서 월급 10만원 받으면서 노예처럼 산다는 느낌을 받는다. 낮에는 내과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취사·청소 등의 일에 시달려야 한다. 큰 병원인데도 의무병 인력도 적고 시설은 열악하다. 안타깝게 목숨 잃는 일이 안 생긴다고 단언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열악한 군병원 시스템은 물론, 기본 업무외에도 잡무에 시달려야 하는 병사들의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는 "병원 청소를 다 의무병들이 한다. 취사병도 몇명 없어서 돌아가며 밥을 하고. 전문적 청소·수리 그런 것도 군인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구타·가혹행위의 심각성을 전하는 증언도 이어졌다. 연인이 조교라는 한 곰신은 " 잠을 3시간도 못자고, 막내라서 일 많이 한다. 그런데 일 끝나면 욕 먹는 시간이 따로 있다고 한다. 제 친구도 곰신인데 구타가 남아 있고, 육군 교도소도 흔히 갈 정도라고 한다. 정신병력이 있는 사람이 훈련을 받다가 많이 발현된다고 하더라"라고 군 부대의 현실을 전하기도 했다.

반면 구타·가혹행위의 근절을 강조하다 보니 "기본질서와 공동체 정신이 사라진다"는 '군인 정신'을 강조하는 곰신도 있었다. "사건·사고도 많지만 반대로 이등병을 '이등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고 남친의 생각을 전하는 곰신도 있었고, "군사력이 있으려면 어느 정도 강제성이 필요하다. 가혹행위나 인격적 모독은 없어야 하지만 장난도 다 가혹행위라고 한다고 하더라. 어느 정도 친밀감 있는 장난과 가혹행위는 구분돼야 한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곰신도 있었다.

제도적 대안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이도 있었다. 상담심리학을 전공하다고 자신의 소개한 곰신은 "그린캠프를 견학차 갔다왔다. 거기 군 상담을 하는 분이 말하길 그린캠프 내에 8000명이 있는데 자기가 다 혼자 관리한다더라. 인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군 상담은 일반 상담과 다르다. 군 상담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곰신은 "제 남친 부대는 멘티-멘토 제도가 있는데, 전문가 상담보다 군 생활 이해할 수 있는 선임과 일대일 관계 맺어주면 군 생활에 좋을 거 같다"고 덧붙였다.

곰신들과 질문을 주고 받으며 의견을 청취한 문 의원은 "우리 세대들은 학교 다닐 때부터 벌써 단체 기합이니 이런 걸 너무 겪어서 그런 일에 대해서 훨씬 담담하게 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위계질서와 권위주의를 싫어하고 개성이 강하다"며 "군대가 기강이 서지 않아서 전투를 할 수 있나 의문도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새로운 세대들의 성향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군대는 징병에 의존할 게 아니라, 제대로 처우해주면서 모병제로 발전해가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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