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도발 4년] 사격훈련 砲聲(포성) 들리는데 대피소는 '썰렁'.. "4년前 그날 잊은건지"

김강한 기자 2014. 11. 2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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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부대에서 알려 드립니다. 오늘 오후 3시부터 해상 사격 훈련이 있을 예정이니 주민 여러분께서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연평도 포격 도발 4주기를 이틀 앞둔 21일 오전 연평도 곳곳에 설치된 확성기에선 해병대 연평부대 사격 훈련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날 백령도·연평도 주둔 해병대는 스파이크 미사일 등 보유 화기를 총동원한 해상 사격 훈련을 벌였다. 훈련 구역은 백령도 서쪽 해상 NLL 이남 지역, 연평도 동·서쪽 해상 NLL 이남 지역이었다. 사격이 시작된 오후 4시쯤부터 하늘이 깨지는 듯한 포성이 들렸고 땅이 흔들리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연평도 포격 도발 전에도 우리 군과 북한은 수시로 포 사격 훈련을 했지만 주민들은 개의치 않았다. 훈련 안내 방송이나 대피 방송도 없었고 대피소로 달려가는 사람도 없었다.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우리 군 포 사격 훈련을 빌미로 연평도를 향해 한 시간 넘게 장사정포, 해안포 등 170발을 쏴댄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남과 북 어느 한 쪽이라도 사격 훈련을 하면 주민들 대부분이 대피소로 모였다. 화장실·비상진료소·취사실·비상식량·방독면 등이 구비된 신형 대피소들도 새로 생겼다. 1400여명의 주민 전원이 사흘간 생활할 수 있는 규모다.

이번 훈련을 앞두고 군은 전날부터 10여 차례나 사격 안내 방송을 했다. 주부 문모(58)씨는 연평초등학교 서쪽 1호 대피소에서 오후 2시부터 두꺼운 점퍼를 입고 훈련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문씨는 "연평도 포격 이후 훈련을 한다고 하면 항상 한 시간 먼저 대피한다"고 말했다. 문씨는 "포 소리를 들으면 무서워 뒷골이 당기는데 그나마 여기 있으면 작게 들린다"고 말했다. 연평초등학교 5학년 김모(12)군도 "훈련 안내 방송 듣고 무서워서 왔다"고 했다. 김군은 "4년 전 학교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소리가 들리고 지진처럼 땅이 움직였다. 보건소가 부서진 것도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전체 7개 대피소로 달려간 사람들은 모두 합쳐 100여명에 불과했다. 참여율이 채 10%가 안 됐다. 대피소로 뛰어온 이들은 거의 노인과 주부, 어린이들이었다. 옹진군 관계자는 "우리 군 훈련에 맞서 북한이 포문을 여는 등의 움직임이 없어 면사무소가 대피 방송을 하지 않은 영향도 있었지만 4년이 지나면서 주민들도 느슨해진 것 아니겠느냐"고 걱정했다. "시간이 지나고 주기적으로 훈련이 반복되다 보니 일상적인 일로 여겨 점점 대피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포격 이듬해인 2011년에는 한쪽이 사격 훈련만 하면 주민의 70~80%, 약 1000명이 훈련 때마다 대피에 참여했다고 한다.

식당을 하는 김모(48)씨는 그러나 "무섭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까 대피하지 않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실제로 적잖은 주민들이 이날 "생업에 방해가 된다"며 대피에 참여하지 않았다. 주민 이모(51)씨는 "한창 일해야 하는 낮시간에 대피소에 쪼그려 앉아 1~2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하루를 공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주민들은 연평도가 '위험 지역'으로 인식된 후 관광산업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고 했다. 2010년 연평도를 찾은 관광객은 2만2700여명이었지만 올해는 10월까지 1만6000여명에 그쳤다. 관광과 연계된 숙박업·식당·수퍼마켓 등도 불황이다. 일부 주민들은 아예 면사무소를 상대로 "대피 안내 방송을 하지 말라"는 민원까지 제기한다고 한다. 한 주민은 "연평도 포격 당시 정부는 연평도에 다시 돌아와서 살면 보상·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피부에 와 닿는 지원은 없었다"며 "이런 상태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겠냐"고 말했다.

주민들은 불만을 터뜨렸지만 마음속 공포와 노이로제는 여전했다. 주민 김모(51)씨는 "지난 4년을 5분 대기 상태로 지내왔다"며 "연평도 포격 이후 어디서 '쾅'하는 소리만 들려도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한다"고 말했다. 정모(52)씨는 "연평 포격 사건 전에는 항상 있는 훈련이니까 귀에 거슬리지도 않았고 두려워할 이유도 없었다"고 말했다. 공항 옆에 사는 주민들이 비행기 소음 때문에 신경 쓰이는 정도였다는 것이다. 김씨는 "지금은 포 소리만 들리면 '쉭' 소리를 내며 하늘에서 우박처럼 떨어지던 포탄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포 사격 훈련 때 잠시 섬을 떠나는 주민들까지 있다. 김영식(53)씨는 올해 우리 군의 포 사격 훈련 때 4년 전 악몽이 떠올라 두 차례 인천으로 피신했었다. 그는 포격 당시 굉음에 놀라 심근경색 증상을 일으켜 인천 병원에서 3개월간 치료를 받고 연평도로 돌아왔다. "연평도 사람들은 그날 이후 모두 '가슴앓이'를 하고 있어요. 언제 갑자기 포탄이 떨어질지 몰라 얼마나 무서운지…." 김씨처럼 훈련 때 배를 타고 인천으로 떠나는 주민이 10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날 훈련은 오후 5시쯤 종료됐다. 연평도에 산 지 20년째라는 김모(55)씨는 "남들은 우리더러 그렇게 힘들면 뭍으로 나오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수십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을 버리고 뭍으로 나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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