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혁신 한방에 해결 '트리즈 이론'

김종호 기자 tellme@chosun.com 2011. 5. 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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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는 지난 2005년 5월 '프렌치 디오스 냉장고'를 미국 시장에 출시한 후 현지 소비자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불평을 듣게 됐다. 냉장고 아랫부분에 위치한 냉동실의 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개발팀이 확인한 결과 냉장고 문에 붙어 있는 개스킷(도어·파이프 등의 접합부에 밀폐를 위해 들어가는 얇은 판 모양의 패킹)이 문제였다. 냉장고 문의 테두리에는 밀폐를 위한 개스킷이 붙어 있고, 개스킷 내부에는 문이 잘 닫히도록 고무자석이 들어 있는데, 고무자석이 너무 강해 냉장고 문을 열 때 힘이 많이 드는 것이었다.

약한 자석을 부착해 봤다. 이번에는 냉장고의 문이 꽉 닫히지 않아 '밀폐기능'이 약해지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개발팀은 2년이 넘도록 답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예상 밖의 간단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문제가 된 냉장고 문의 개스킷에는 고무자석의 전체 면이 붙어 있어 냉장고 문을 열때 고무자석 전체를 한꺼번에 떼어내도록 돼 있었다. 개발팀은 고무자석 전체 면의 30%만 개스킷에 붙이는 방식으로 문의 개스킷 구조를 바꿨다. 냉장고 문을 열 때 개스킷과 붙은 고무자석의 30%만 먼저 떨어지도록 한 후 나머지 부분이 순차적으로 분리되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냉장고 문을 여는 힘을 25% 정도 줄일 수 있었다. 또 고무자석의 세기를 약화시키지 않아 밀폐기능은 그대로 유지됐다. 개선된 제품은 2008년 미국에 출시돼 고급 냉장고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LG전자 개발팀이 막판에 냉장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는 러시아에서 개발된 발명원리인 '트리즈(TRIZ)'이론이 큰 역할을 했다. 트리즈 이론은 옛 소련 과학자 겐리히 알트슐러가 처음 만들었다. 그는 20만건 이상의 특허와 발명품을 분석해 그 안에 숨은 문제 해결의 원리를 40가지로 정리해냈다. 문제를 발생했을 때 한꺼번에 해결하지 말고 필요한 부분만 나누어서 생각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분할의 원리', 익숙한 대칭구조에서 탈피해 비대칭구조로 만들면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비대칭성', 연관된 기능을 수행하는 요소들을 통합하면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통합의 원리' 등 발상의 전환을 도와주는 내용들을 체계화했다.

삼성전자는 드럼세탁기 출시 초기 고객 불만이 제기됐던 소음문제를 트리즈 이론을 활용해 해결했다. 드럼세탁기 내부에는 탈수할 때 드럼을 받쳐주는 '터브(tub)'라는 이름의 플라스틱 부품이 있는데,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요철(凹凸) 모양'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요철 모양으로 인해 드럼이 고속 회전할 때 소음이 크게 발생했다. 소음을 없애려고 터브를 요철 없이 매끈하게 만들면 부품의 강도가 떨어졌다.

고민하던 개발팀은 트리즈의 원리 중 하나인 '분할'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했다. 기존 제품에서는 요철이 터브의 전체 면적에 퍼져 있었다. 하지만 개발팀은 신제품을 만들면서 터브의 중심부에만 요철을 만들었다. 요철이 있는 곳과 없는 곳으로 공간을 '분할'한 것이다. 이를 통해 터브 부품의 강도도 유지하면서 소음도 줄일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는 엔진에 들어가는 공기를 정화해주는 에어필터의 크기를 줄여 원가를 절감했다. 과거 에어필터는 부드러운 섬유로 된 필터 부분과 이를 감싸고 있는 딱딱한 플라스틱 프레임, 프레임 둘레의 부드러운 고무패킹 등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었다. 현대차는 플라스틱 프레임을 종이로 바꾸고 고무 패킹을 없앴다. 안쪽은 딱딱하고 바깥쪽은 부드럽게 제작된 종이 프레임이 기존의 플라스틱 프레임과 고무패킹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에어필터 전체의 크기를 줄일 수 있었다.

트리즈 이론에 대해 '알고 보면 너무 당연한 내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트리즈 전문 컨설팅업체인 '젠스리 코리아'의 정규진 이사는 "트리즈 이론은 개발자들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고 범위를 확장하도록 도와준다"면서 "결과만 보면 쉬워 보일 수 있지만 많은 기업들이 트리즈 사고방식을 도입해 제품 혁신에 들어가는 시간과 자금을 줄이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트리즈(TRIZ)

러시아 학자 겐리히 알트슐러가 만든 발명원리. '창의적 문제해결 기법'을 뜻하는 러시아어 'Teoriya Resheniya Izobretatelskikh Zadatch'의 앞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알트슐러는 20만건 이상의 특허를 분석, 발명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의 방식을 40가지로 정리했다. 문제를 해결할 때 필요한 부분만 나누고(분할), 비대칭성을 활용하고, 연관된 기능을 통합하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기업들이 제품 혁신에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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