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동네서점 사양길 속 자매의 독특한 '실험'.. 상암동 북바이북
동네서점은 도서 할인의 최대 피해자다. 온라인서점에서 정가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인 구매 패턴으로 자리 잡고 오프라인 서점도 몇몇 대형서점 체제로 재편되면서 많은 동네서점이 사라졌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통계를 보면, 2003년 2017개에 이르던 66㎡(20평) 이하 서점은 지난 10년 사이에 887개로 줄었다. 21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도서정가제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도 동네서점을 살리는 것이다. 그러나 새 정가제 시행이 동네서점에 어느 정도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서점조합연합회는 새 정가제 법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온라인 서점들의 배송료와 카드사 제휴할인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년 사이에 두 개의 매장을 연 서점이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동네서점 북바이북이다.
북바이북은 지난해 9월 문을 열었다. 자매인 김진아(38), 진양(34)씨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본래 사용하던 7평짜리 매장 근처에 20평짜리 매장을 하나 더 냈다. 7평짜리 매장은 소설과 에세이를 중심으로 하는 '소설점', 20평짜리 매장은 비소설을 중심으로 하는 '본점'이다.
(위부터) 서울 상암동의 동네서점 북바이북 본점 외부. 본점 내부. 소설점 내부. |
특이한 것은 두 사람 모두 포털업체 다음 출신이라는 점이다. 진아씨는 다음에서 11년 동안, 진양씨는 4년 동안 일했다. 대표적인 온라인 기업에서 직업 경력을 쌓은 두 사람이 온라인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서점을 선택한 이유는 흔히 떠올리는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와는 거리가 멀다. 진아씨는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콘텐츠 비즈니스인데 책은 오프라인의 대표적인 콘텐츠다. 책이 사양길에 있다고 하지만 우리는 책을 하나의 콘텐츠로 보고 시작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서점은 '오프라인 콘텐츠 사업'인 것이다.
북바이북이 판매하는 책들은 신간이나 베스트셀러 중심의 일반 서점과는 달리 두 사람의 취향과 고객들의 추천이라는 두 가지 조합으로 결정된다. 포털 사이트가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목적에 따라 분류하고 배포하는 것과 같은 '큐레이션' 개념이다. 진아씨가 추리소설, 대중과학, 가벼운 인문서를 좋아하는 반면 진양씨는 취미·여행·창업 관련 책들에 관심이 있다. "기본적으로는 저희 관심사가 우선이고 여기에 손님들이 추천해준 책을 가미하고 있어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손님들이 원해서 갖다 놓은 경우죠."
서가 분류도 독특하다. 소설점의 한 책장에는 미야베 미유키 장편 <솔로몬의 위증>, 김중혁 에세이 <뭐라도 되겠지>, 닉 페어웰 장편 <go>, 요네하라 마리 장편 <올가의 반어법> 등 책등이 흰색인 책들만 꽂혀 있다. 서가 아래에는 '깔끔한 책등만 모았지요'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자매는 이 꼬리표를 '책장꼬리'라고 부른다. '노란 책들만 모아봤어요'라는 책장꼬리도 있다. 요네하라 마리 에세이 <인간수컷은 필요없어>, 한승원 장편 <겨울잠, 봄꿈>, 히가시노 게이고 장편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처럼 책등이 노란색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책들이 꽂혀 있다. 책장꼬리 이외에 '책꼬리'도 있다. 책꼬리는 손님들이 책에 대한 짤막한 감상을 적어 책 사이에 책갈피처럼 꽂아놓은 것이다. 책꼬리는 무슨 책을 살지 결정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의 입소문으로 작용해 책 구매를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책꼬리를 적는 손님에게는 커피를 무료로 내준다.
북바이북은 매장 판매를 원칙으로 하지만 페이스북, 블로그, 카카오스토리, 이메일,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으로 주문받은 책을 택배로 배송도 한다. 물론 배송료는 유료다. 책값도 모두 정가로 계산한다. 대신 구매한 책을 다시 가져오면 정가의 80% 가격으로 매입한다. 현금을 지급하는 대신 포인트를 준다. 손님들은 그 포인트로 북바이북의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책 두 권을 사도 커피 한 잔을 무료로 준다.
독자들의 책 추천사인 '책꼬리'. |
미술 관련 책을 모아 놓은 뒤 "그림, 잘 몰라도 상관없어!!"라고 '책장꼬리'를 붙인 모습. |
동네서점은 접근성의 문제 때문에 해당 지역을 기반으로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상암동을 선택한 것은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 입주한 정보통신·미디어 업체와 인근 출판사 직원들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내 직업군 중에서 책과의 친화성이 가장 강한 편에 속한다. 블로그에서는 책방 소식만이 아니라 상암동 맛집 골목에 있는 가게들도 적극적으로 소개한다.
할인폭을 현행 19%에서 15%로 제한하는 새 정가제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진양씨는 "동네서점은 워낙 어렵다고 하니 창업을 잘 안한다. 그래서 오히려 경쟁상대가 없다"며 "경쟁을 한다면 온라인과의 경쟁인데 가격경쟁 면에서는 이전보다 다소 유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책 판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두 사람은 매장에 별도 직원을 두지 않고 소설점은 언니가, 본점은 동생이 운영한다. 지난 9월 직장을 그만둔 언니가 합류하기 전까지 서점을 혼자 운영해온 진양씨는 "단순히 책을 팔고 음료를 파는 것만으로는 답이 안 나온다. 장기적으로는 서점을 기반으로 콘텐츠 사업을 확장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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