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책방 살리기는 난망, 시장 더 죽일까 출판업자 전전긍긍

이상언 입력 2014. 11. 1. 20:23 수정 2014. 11. 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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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도서정가제 보약일까, 독약일까 21일 시행 앞두고 책 세일 광풍출판사들 재고 도서 90% 할인도서점조합 '무료배송' 불허 요구값 인상에 '단통법' 재연 우려도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 실험적으로 책 읽는 승객 수를 헤아려봤다. 한 시간 동안 6대(한 대가 전동차 10량으로 구성)의 끝에서 끝까지 걸으며 책을 들고 있는 이를 셌다. 한 칸에 한 명도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제일 많은 곳이 3명이었다. 6대에서 찾아낸 독서인은 총 48명으로 지하철 한 대당 평균은 8명이었다. 2호선을 택한 이유는 역 인접 지역에 이화여대·연세대ㆍ서강대ㆍ홍익대ㆍ서울대ㆍ서울교대ㆍ건국대ㆍ한양대 등 대학교가 많은 노선이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소개하면, '종이 신문' 보는 이는 훨씬 더 적었다. 60칸에 통틀어 5명이었다.) 독서 인구 감소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출판사ㆍ서점ㆍ작가 모두 아우성이다. 출판 시장에 대해 수년 전부터 '단군 이래 최악'이라고 표현하더니 요즘에는 '빅뱅 이후 최악'이라고 말한다. 이 와중에 도서정가제가 강화된다. 이달 21일부터 개정 정가제가 시행된다. 값을 크게 깎아줘도 책을 안 읽는 세상인데, 할인을 더욱 제한하게 된다. 출판사와 동네 서점은 대체로 이를 환영한다. 할인 경쟁으로 파괴된 '출판 생태계'의 복원으로 출판 문화, 나아가 독서 문화까지 진작시킨다는 기대가 깔려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개정 정가제 자체가 허술해서 본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처럼 상품 값만 올려 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같은 우려 속에서 개정 도서정가제의 허와 실을 진단해봤다. 동시에 출판과 도서 판매 시장의 현주소도 살펴봤다.

"인터넷 쇼핑몰과 온라인 서점을 통해 책 70여 권을 주문했는데, 30만원이 채 안들었다." 회사원 조모(39)씨가 횡재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더니 이내 "한편으론 '이렇게 책 값이 싸도 되나'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고 덧붙였다. 요즘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신이 났다. 출판계가 '건국 이래 최대 규모'라고 말하는 대대적인 도서 할인 덕이다. 온라인 쇼핑몰은 '최대 90% 폭탄 세일'이라는 광고 문구로 손님을 끌어 모으고, 대형 서점에는 50% 할인, 70% 할인 품목이 넘쳐난다. 출판사들이 운영하는 북카페들도 책 세일 경쟁에 뛰어들었다.

베스트셀러 3분의 2가 할인 도서

지난달 31일 기준으로 국내 최대의 온라인 서점 'Yes24'의 베스트셀러 상위 30위 안에 든 책 중에서 20종이 정가보다 10%(온라인 서점의 일반적 신간 할인율) 넘게 할인된 책이었다. 그 20종 중 14종이 40% 이상의 세일 품목에 속했다. 5위에 올라 있는 『자녀교육 불변의 법칙』은 90% 할인된 980원으로 값이 매겨졌다. 한 출판사 사장은 "30년 이상 출판계에서 일했지만 '떨이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도배하는 것은 처음 봤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지 않을까싶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권에 할인율 10%를 초과한 책이 오르는 일은 흔치 않다. 오래 전에 나온 책이 영화나 드라마로 화제가 돼 다시 주목받을 때 정도에 생기는 일이다.

2014년 가을이 책 폭탄 세일로 뒤덮이게 된 것은 이달 21일에 강화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새 정가제가 도입되면 구간(발행된지 18개월 이후의 책)도 정가의 10%(포인트 적립 5%까지 포함하면 총 15%)로 할인이 제한된다. 기존에는 대상에서 제외됐던 실용서도 적용 범위에 포함된다. 쉽게 말해 나온지 오래 됐거나 실용서로 분류돼 있어도 출판사나 서점이 책 값을 마음대로 낮출 수 없다는 얘기다. 새 제도 하에서 구간의 값을 낮추려면 정가를 새로 표지에 새겨 다시 서점에 내놓는, 쉽지 않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새 정가제 시행 뒤에는 '재고 정리'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출판사들이 헐 값에 책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할인 열풍의 배경이다. 정가제 강화를 앞두고 정가를 파괴하는 데 출판사들이 앞장서는 '역설적' 상황이다.

서점 주인 "온라인 판매 규제 더 해야"

도서정가제 강화의 목표는 '출판 생태계'의 복원이다. 현행 정가제로는 동네 서점의 몰락, 출판사의 경영 악화, 작가와 번역인의 수입 감소를 막을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기존 정가제는 최대 10%할인과 할인된 금액의 10%까지에 해당되는 포인트 적립만을 허락한다. 따라서 허용되는 최대 할인율 19%다. 그런데 출간 18개월 이상의 구간, 실용서나 학습서는 제외 대상이다. 이 때문에 전체 판매 도서 중에 약 13%에만 정가제가 효력을 미친다. 이같은 현실을 바꾸자는 것이 개정의 취지다.

그렇다면 정가제 강화를 주장해온 오프라인 서점들과 출판사들의 기대처럼 동네 서점이 살아나고(또는 폐업율이 줄어들고), 출판사의 수입이 좋아지고, 작가나 번역가의 벌이가 나아질까. 출판계 전문가들의 답은 "낙관할 수 없다" "꼭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없다"정도로 모아진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은 "좀 개선되리라는 기대는 있지만 출판 시장의 하향세를 반전시킬 정도의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판사 '여백미디어'의 김성봉 대표는 "솔직하게 말해 크게 출판업의 여건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판사와 서점들은 새 정가제를 신통치 않게 본다. 지난달 중순에 열린 '올바른 도서정가제 확립을 위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시행령 개정(안) 공청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오프라인 서점 측은 오라인 서점의 경품 행사, 카드사 제휴 추가할인, 무료배송을 그대로 허용한다는 점에 목소리를 높였다. 햇빛문고의 정덕진 대표는 "온라인 서점의 기득권을 고스란히 유지해주는 반쪽짜리 제도"라고 주장했다. 온라인 서점 측은 중고 도서 시장에 대한 규제가 명확치 않다는 점을 비판했다. 출판사 대표는 정부가 업계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시행령을 만들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업계 당사자 모두가 앙앙불락 상태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문체부가 오프라인 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요구 중간 지점에서 타협안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법이 됐다"고 지적했다. 문체부가 시행령을 만들 때 오프라인 서점은 현행 19%의 할인율 고수를, 오프라인 서점들은 10%로 축소를 요구했다. 문체부는 15%로 결정했다.

책 값 권당 220원 이상 오를 전망 정가제 강화의 핵심 목표는 '동네 책방 살리기'다. 교보문고와 같은 대형 체인 서점의 등장이라는 '원자폭탄'을 맞고, 온라인 서점의 약진이라는 '수소폭탄'까지 맞은 중소 서점을 보호한다는 명분이 실려있다. 하지만 새 정가제가 실시된다 해도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오프라인 서점은 '무료배송'이라는 강력한 유인책을 여전히 갖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서점들은 프랑스처럼 온라인 서점의 무료배송을 금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출판계는 새 정가제 시행 뒤에 도서 시장이 더욱 얼어붙을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스마트폰 할인폭 규제로 수요 자체가 줄어버린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사태가 재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출판사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는 "구간마저 할인 판매를 하지 않는 것을 독자들이 이해할지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새 정가제가 도입되면 책 1권당의 가격이 220원 오른다. 이는 평균적인 수치일 뿐 기존의 할인율이 컸던 출간 18개월이 지난 소설이나 실용서를 구입하는 독자에게는 더 큰 부담이 지워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구간의 값을 대폭 낮춰 가격을 재지정하는 방향으로 출판사들을 유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백 책임연구원은 "스마트폰과 달리 책은 가격이 값이 싸다고 해서 이 책 대신 저 책을 사지는 않기 때문에, 또 꼭 필요한 책은 비싸게 느껴도 사기 때문에 단통법의 경우와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한동안 책이 덜 팔리는 과도기적 현상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구매 심리 위축될까 걱정 산더미

최근의 대대적인 할인 판매도 '부메랑'이 돼 출판계를 강타할 수 있다. 책 값을 마구 깎아주다 갑자기 정가를 다 받겠다고 나서면 독자들이 심정적 저항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출판사 사장은 "우리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라는 생각에 할인 판매를 자제해왔는데, 덤핑 책들에 밀려 매출이 더 줄어드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최근에 동참했다. 과연 이것이 책과 출판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인지 모르겠다.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한국의 도서 시장의 규모는 나날이 줄고 있다. 전체 책 발행부수는 최근 5년 새 한 해 1억600만부에서 8600만부로 감소했다. 번역서는 1만3300종에서 9300종으로 급감했다. 10년 전까지 2200여 개가 있었던 서점은 1600여 개가 됐다. 새 도서정가제 시행이 19일 앞으로 다가왔다. 기진맥진해 하는 출판 시장에 영양제로 작용하길 바라는 이가 많지만 현실은 그리 여의치 않아 보인다.

이상언 기자, 송영오 인턴기자 joon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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