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Watch] 연말 세일 기다리는 해외직구족

이지성기자 입력 2014. 10. 31. 18:35 수정 2014. 11. 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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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만원짜리 TV가 100만원.. 해외서 '횡재 쇼핑' 해볼까

美 사이버먼데이·크리스마스… 가전·의류·건강식품 등 파격 할인직구 대상 국가 美서 中·獨으로 다양… 관세 면제품목 확대·통관 간소화도단기 성장에 불량 상품 피해 늘어 소비자 보호 제도적 장치 마련해야

10년 전 혼수로 TV를 장만했던 회사원 최제현(42)씨는 올해 11월을 맞이하는 각오가 남다르다. 오는 11월28일부터 시작되는 '블랙프라이데이' 세일행사 기간에 맞춰 TV를 바꾸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최씨는 "해외직구는 처음이지만 국내 가격이 160만원대인 최신 TV를 관세와 배송비까지 합쳐도 100만원이면 살 수 있다길래 인터넷 카페에서 주문 사례와 배송 주의점 등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이 연말세일에 들어가는 11월을 맞아 국내 '해외직구(해외 직접 구입)족'들이 들썩이고 있다.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 연중 소비의 20%가 몰릴 정도로 많은 상품들이 연중 최저가가 적힌 가격표를 달고 쏟아진다. 그간 직구를 통해 미국 세일 기간의 수혜를 톡톡히 맞본 소비자들이 화장품·의류·패션잡화 위주에서 가전, 정보기술(IT) 기기, 주방용품, 희귀 수집품으로까지 쇼핑 대상을 늘리고 여성에 비해 직구 전선에 나서지 않았던 남성들까지 미국 온라인몰을 기웃거리면서 올해 해외직구 시장은 사상 처음으로 2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직구족들의 씀씀이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직구를 이용한 국내 고객은 평균 87만4,000원을 썼다. 여행이나 출장을 통해 현지 오프라인 매장에서 상품을 구입한 평균 금액이 96만5,0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만간 1인당 평균 구매액에서도 해외직구가 오프라인 이용금액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연말세일 행사가 집중된 11월과 12월에만 직구족들이 8,000억원어치를 쓸어담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내 유통업계도 부랴부랴 대규모 할인전을 마련하고 고객 잡기에 나섰지만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직구 시장의 급성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직구족들은 연중 최대 쇼핑 성수기인 연말을 맞아 계산기를 두드리기 바쁘다. 이미 미국 유통업체들은 10월 '콜럼버스데이'와 '핼러윈데이'를 통해 '몸풀기'를 시작했다. 블랙프라이데이에 할인행사의 정점을 찍고 12월1일 '사이버먼데이'에 또 한번 파격할인에 나선다. 이어 '크리스마스'와 '애프터크리스마스' 할인을 통해 최대한 재고물량을 털어낸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직구족들의 '손품'을 덜어주는 소위 '체리 피킹' 직구 정보가 배송대행업체·블로그·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쏟아지면서 직구가 한결 쉬워졌다. 전업주부 강주연(38)씨는 "매일 아침 카카오스토리를 통해 3~4개의 해외 할인 정보와 직구 정보를 간단하게 정리해주는 곳도 있고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할인 정보를 십시일반으로 올리는 직구 정보 카페도 많다"고 말했다.

해외직구의 급격한 증가는 국내 유통가격보다 현지 가격이 더 저렴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이지만 국내에 없는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희소성도 무시할 수 없다. 관세청에 따르면 해외직구에서 의류·신발·건강식품·화장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9년까지만 해도 60%를 웃돌았지만 지난해 48%로 줄었다. 반면 가방·지갑·시계 등 액세서리를 사는 비중이 28%로 증가했고 식품과 전자제품도 각각 14%, 11%에 달한다. 최근에는 커피·초콜릿 등 가공식품의 비중도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 일변도였던 해외직구 대상 국가도 다양해지고 있다. 2010년까지만 해도 미국은 해외직구 시장의 81.6%를 차지했지만 2012년 73.9%로 줄었다. 대신 같은 기간 중국과 독일은 1% 안팎에서 각각 9.7%, 5.2%로 늘었다. 알리바바 자회사인 타오바오를 통해 중국에서 직접 상품을 구입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유럽 최대 오픈마켓으로 자리잡은 독일 아마존의 인기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의 해외직구 활성화 정책도 열풍을 부채질하고 있다. 관세청은 6월 미국에서 구입하는 해외직구상품에 대해 관세면제항목을 크게 늘렸다. 개정안에 따르면 배송비를 포함해 200달러 미만인 상품 구입시 기존에는 의류와 신발 등 6개 품목만 관세를 면제했지만 개정 후에는 식품과 의약품을 제외한 전체 소비재로 면제 대상이 늘어났다. 수입과 통관 역시 간소화됐고 제품 불량으로 반품했을 때도 지불한 관세를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직구 리스크' 중 일부분을 정부가 직접 덜어준 셈이다.

해외직구 열풍에 상품을 대신 배송해주는 전문업체들도 성장세다. 국내 해외배송 전문업체인 몰테일은 올 상반기 배송대행 건수가 72만건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배 늘었다. 연말 특수를 감안하면 지난해 100만건보다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기록 몰테일 대표는 "해외직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해외직구 이용 국가나 고객층도 다변화되고 있다"며 "아직까지 여성 고객의 비중이 66%에 달하지만 최근 30~40대 남성 고객이 새로운 고객층으로 부상하면서 가전제품과 통신기기의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외직구 열풍에 유통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롯데백화점은 9월 해외직구상품을 매장에서 바로 구입할 수 있는 '비트윈'을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본점 2층에 마련된 이 매장에서는 의류와 가방·신발·생활용품 등 인기 해외직구상품을 바로 살 수 있다. 가격은 해외직구를 통해 구입하는 것보다 30% 정도 비싸지만 배송을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고 반품이나 환불도 가능하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유독 해외직구가 인기를 모으는 이유로 국내 소비시장의 개방도가 낮다는 점을 꼽는다. 한국의 수입 의존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1위이지만 해외직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소비개방도는 29번째에 불과하다. 수입의 대부분이 원자재 위주여서 소비자가 체감하는 소비재 수입이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해외직구의 매력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과거에는 대기업 계열의 상사나 병행수입업체 등이 국내에 판매되지 않는 상품을 소개하는 주요 창구였지만 이제는 소비자가 직접 해외 인터넷쇼핑몰을 통해 상품을 구입하는 주체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강중구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해외직구를 통한 소비시장이 활성화되면 상품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가격 하락으로 소비자 후생이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며 "하지만 단기간에 해외직구가 급성장하면서 배송 지연과 상품 불량으로 피해를 보는 고객이 늘고 있어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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