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교도소·구치소 과포화] 주민은 '님비'.. 정부·지자체는 '무능'

유성열 정현수 기자 2014. 10. 24.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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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시설 부족 실태·해법

전국의 교도소와 구치소 등 교정시설이 수감자들로 넘치면서 곳곳에서 이전·신축 계획이 추진되고 있지만 번번이 지역사회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고 있다. 이를 지역이기주의를 의미하는 님비(NIMBY) 현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교정시설을 받아들여야 하는 주민들을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하기에 앞서 갈등 조정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정부·지자체·정치권의 무능과 무책임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구치소 옆 학교엔 애들 못 보낸다"=경남 거창군에서는 지난 6일부터 나흘간 초등학생들의 집단 등교 거부 사태가 벌어졌다. 구치소 건립을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학생들은 범군민대책위원회에서 마련한 대체 수업에 참여하거나 집에서 시간을 보냈고, 학부모들은 '군민을 우롱하지 마라' '거창군수는 주민소환 각오하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거창군은 거창구치소와 창원지법 거창지원, 창원지검 거창지청 등이 포함된 법조타운을 2017년까지 조성할 계획이다. 군은 법조타운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부지 인근 주민들은 "군이 구치소를 지으려는 곳은 반경 1㎞ 안에 11개 학교와 많은 아파트가 있어 학습권이 침해된다"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오락가락 법무부, 지자체와 소송전도=부산 사상구 부산구치소는 2004년부터 부산 강서구로 옮기는 계획이 추진됐다. 주민 갈등을 빚는 등 우여곡절 끝에 화전체육공원으로 이전키로 결정됐고 법무부는 부산시와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다. 그러나 강서구 명지신도시에 법조타운이 들어선다는 계획이 세워지자 2012년 법무부는 신도시에 구치소도 함께 이전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법무부는 기존 후보지였던 화전체육공원 인근에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등 구치소 여건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까지 내렸다. 하지만 신도시 주민들은 분양의 어려움을 우려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함께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법무부는 제3의 후보지를 찾는 등 부산구치소 이전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법무부는 1999년 안양교도소 이전 계획을 세웠다. 이전 후보지 주민들의 반대로 계획은 무산됐고 2006년 재건축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안양시는 "교도소 인근 주민들을 위해 교도소를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한다"며 재건축 불가를 통보했다. 이에 법무부는 2012년 안양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고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재건축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집회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교도소 이전 공약, 당선 뒤 없던 일로=전주교도소 이전은 이 지역에 출마한 국회의원·지자체장 후보들의 단골 공약이었다. 2012년 19대 총선 때 전북 전주시 완산구갑에서 경쟁했던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통합당) 김윤덕 의원과 무소속 신건 전 의원이 공통으로 교도소 이전을 약속했다. 송하진 전북지사도 2010년 지방선거에 전주시장 후보로 출마하면서 전주교도소를 이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잠재적 후보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송 지사도 재임 시절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김승수 전주시장은 전국에서 최초로 교도소 이전을 위한 공모를 시도했다. 1차에 두 곳이 응모했지만 입지 선정을 위한 필수요건인 주민동의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지난 6일 마감된 2차 공모에는 1차에서 탈락한 한 곳이 다시 뛰어들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6·4지방선거 때 청주교도소 이전을 약속했던 이승훈 청주시장은 지난달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약 백지화 입장을 밝혔다. 이 시장은 "새누리당 윤진식 전 충북지사 후보와 연대한 공약이었으나 윤 전 후보가 낙선하면서 추진이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교정시설은 안전시설, 도시계획 단계부터 설계돼야"=교정시설을 둘러싼 갈등의 컨트롤타워 격인 법무부 갈등관리심의위원회는 현안이 있을 때 비정기적으로 모여 회의를 열고 있다. 하지만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갈등이 빚어지고 지역별로 얽혀 있는 사정도 달라 일일이 타협점을 찾아내는 데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지자체와 연계해 지역에 부족한 인프라 구축, 고용증대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설득에 나서고 있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인센티브를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서는 교정시설 정책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남기범 교수는 23일 "정부가 뉴타운 등 도시를 계획하는 단계부터 교정시설이 포함되도록 기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교정시설은 기본적으로 안전을 지키기 위한 시설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며 "주민들의 이해와 당국의 적극적인 설득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유성열 정현수 기자 nukuv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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