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구글·애플은 '날고', 국내 기업은 '기고'

김희용 2014. 10. 2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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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업들을 아시나요?

럭스뷰(LuxVue), 북램프(Booklamp), 스내피랩스(SnappyLabs), 프라임센스(PrimeSense)... 이름 조차 생소한 해외 기업들입니다.

이 업체들의 공통점은 애플이 M&A, 즉 인수합병을 통해 사들인 회사입니다.

애플은 최근 1년간 디스플레이(LuxVue)와 전자책(Booklamp), 카메라 앱(SnappyLabs), 3D 기술(PrimeSense) 등 다양한 분야에서 18개 업체를 인수했거나 인수를 추진 중입니다.

구글의 영토 확장은 기세가 더 무섭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음성인식기술(Slick Login)부터 인공지능(Deepmind), 인공위성(Skybox imaging) 분야까지 무려 49개 업체를 사들였거나 인수가 임박했습니다.

특히, '스마트 홈' 관련 기술에 대한 인수합병이 활발한데, 이는 우리 기업들도 차세대 먹거리로 주목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올해 초 자동 온도 조절 장치를 만드는 '네스트랩'(Nest Labs)이라는 회사엔 32억 달러, 우리 돈 3조 원 이상을 쏟아부었습니다.

■ M&A로 미래 먹거리 선점

세계 IT 시장을 주도하는 두 공룡이 1년 간 인수했거나 인수 예정인 기업이 모두 67개, 1년 동안 매주 1개 이상의 기업을 사들인 셈입니다. 비공개된 인수합병을 합치면 그 수는 더 늘어납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인수합병에 나서는 건 자고 나면 신제품이 나올 정도로 변화가 빠른 IT 시장에서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여기에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IT 시장의 성장세가 주춤한 사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회사를 통째로 가져와서 최단 시간에 시장 지배력을 키우겠다는 전략도 깔려 있습니다.

구글과 애플은 현재 200조 원 넘는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두 회사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이 돈의 상당 부분을 앞으로도 '기업 사들이기'에 쓸 태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IT 기업들은 어떨까요?

■ 3년 실적 합쳐봐야 애플·구글 1년치도 안 돼

삼성전자는 지난달 초 어느 모바일 기기에서든 쉽고 간편하게 문서를 출력하는 기술을 가진 프린터온(PrinterOn)이라는 캐나다 업체를 사들였습니다.

이것까지 포함해 삼성전자가 인수한 기업은 최근 3년을 합쳐도 17개에 불과합니다. 애플이나 구글이 지난 1년간 사들인 규모에도 못 미치는 겁니다.

최근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넘겠다며 연이어 출사표를 던지고 있는 LG전자는 실적이 훨씬 더 적어서 3년간 3건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우리 기업들이 인수합병에 소극적인 이유는 뭘까요?

재계에서는 '규제'가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취재 중에 만난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우면 키울수록 규제가 제곱으로 늘어난다"고 푸념했습니다.

또, "벤처기업을 인수하면 정부가 어느 정도 규제 유예 기간을 주는데, 그 시간이 턱없이 짧아 실적이 나올 때까지 기업을 키우기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유환익 전경련 산업본부장도 "M&A에 대한 부정적 인식, 평가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 미흡, 나아가서는 각종 규제 등을 큰 요인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결국, 인수합병을 하고 싶어도 '여건'이 안된다는 주장입니다.

■ 인수합병 의지는 있나?

하지만, 기업들의 적극성이 부족한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우리 기업들이 내부 기술투자를 통해 하드웨어 중심의 고속 성장을 해오다 보니, IT시대의 혁신 방식인 인수합병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 삼성전자의 올 1분기 연구개발 투자액은 37억 달러를 넘어, 애플 14억 달러, 구글 21억 달러를 합친 것보다 더 많습니다.

연구개발을 통해 내실을 다지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문제는 충분한 성과를 얻기까지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걸리고, '우리 길만이 옳은 길'이라는 아집에 빠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때 휴대전화 시장을 주름잡던 노키아도 애플에 비해 대여섯 배나 많은 연구개발비를 쏟아부었지만 스마트폰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고, 결국 몰락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내부 혁신만으로는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미적거리면 뒤처진다

최근 거대 시장을 바탕으로 빠르게 자본력을 확보한 중국 기업들은 그 돈을 무기로 공격적인 인수합병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에 힘입어 우리 업체들과의 기술 격차도 하루가 다르게 좁혀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IT 기업들이 인수합병을 통한 혁신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면, 미래 먹거리를 뺏기는 것은 물론 신성장 동력의 부재로 글로벌 경쟁 시장에서도 퇴출되기 쉽습니다.

정부가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물리는 방안까지 내놓을 정도로 우리 기업들의 투자 여력, 쌓아놓은 돈은 충분하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미리미리 외양간을 고쳐야 소도 잃지 않고, 더 많은 소를 키울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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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용기자 (emaninn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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