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주노동자 인신매매국"

2014. 10. 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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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표지이야기]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를 착취해 차린 '눈물의 밥상' 두 번째…

한국 근로기준법·고용허가제 속에서 자행되는 '노동착취·인신매매·강제노동' 메커니즘

<한겨레21> 제1025호 표지이야기는 '눈물의 밥상'이었다.고용허가제 도입(2004년 8월17일) 10년을 맞아 10년 전과 다를 것 없는 환경에서 우리의 밥상을 차려온 농·축산·어업 이주노동자들의 눈물을 찾아나섰다.'안전한 밥상'이 우리의 관심을 붙들고 있을 때 <한겨레21>은 그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환기해볼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물었다.우리의 안전한 밥상은 인간다운가.질문에 화답하고 반응하는 목소리가 예상 밖으로 많았다. '밥상의 근원, 그 눈물의 뿌리'(기사 마지막 문장)를 고민해보겠다는 다짐도 있었고, 우리의 신토불이 밥상을 외국인들이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에 뒤늦게 놀라워하는 독자도 있었다. 전국의 논밭이 우리의 밥상 위로 올라오기까지 땀보다 많이 흘린 '눈물의 과정'에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도 많았다. '일부' 고용주들의 문제를 '전부'처럼 보이게 했다는 비판과, 이주노동자와 고용주를 선과 악으로 이분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다시 두 달이 지났다. 그 사이 유엔 인종차별특별보고관(무투마 루티에레)이 방한해 국내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 우려를 표했다.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의 농·축산 이주노동 보고서('고통을 수확하다: 한국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착취와 강제노동')를 발간(10월20일)하며 국제사회에 공론화를 시작한다.<한겨레21>은 인권(국제앰네스티), 이주노동(이주공동행동·이주인권연대·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먹거리정의(한살림·아이쿱·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국제식품연맹(IUF)) 분야 8개 단체와 '인권밥상'(37쪽 상자 기사 참조) 캠페인을 내딛는다.'우리의 밥상은 인간다운가'란 질문을 넘어 '인간다운 밥상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모색하는 시도다. 한국 농·축산 이주노동 현장이 인신매매적 상황에 놓여 있다는 논쟁적 해석(국제앰네스티 보고서)으로 시작을 연다.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옥죄는 구조에 대한 해부도 계속된다. 우리 일상의 밥상과 연계된 왜곡된 유통 구조가 농·축산 종사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몰아가는지도 살필 계획이다. '눈물의 밥상'이 '행복한 밥상'이 되도록 마음 모아 연대하는 이들의 현장을 찾고 농·축산업 종사자들의 고민과 이주노동자들의 고민이 만날 수 있는 지점도 탐구한다. 독자·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 정부의 책임 있는 태도와 제도 개선도 촉구할 것이다. 캠페인은 12월18일 '세계 이주민의 날'까지 계속된다.

이것은 '인신매매'에 관한 보고서다.

ㄱ(21·여·캄보디아)은 계약서를 읽을 수 없었다. 캄보디아가 목적지인 계약서가 한국과 영·미의 언어로 왔다. 캄보디아 노동센터 직원이 말했다. "사인하세요. 안 하면 한국 못 가요." ㄱ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사인 전에 내용을 알았다 해도 그의 한국 생활(2012년 6월 입국)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전라도의 한 농장에서 딸기·토마토와 채소 농사를 지었다. 계약과 실제는 만나는 대목이 없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8시간)까지 일한다고 했으나, 아침 6시부터 밤 10시(15시간30분)까지 일했다. 계약서는 1시간 쉰다고 했다. 15~30분밖에 쉬지 못했다. 격주 토요일 휴무라고 알고 왔다. 쉬는 날마다 사장 집 청소와 설거지를 했다. 첫해엔 월 105만원을 받았고, 다음해엔 115만원을 받았다.

"언제라도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 대기해"

계약서는 '숙식 제공'을 약속했다. 컨테이너 숙소는 여름엔 뜨겁고 겨울엔 추웠다. 화장실엔 샤워시설이 없었고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사장은 겨울에도 따뜻할 만큼 충분한 난방을 하지 못하게 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별도의 난방비를 내야 했다. 쌀 외의 반찬은 주지 않았다. 만들어 먹고 싶어도 숙소엔 조리 도구가 없었다. 사장은 술에 취할 때면 컵이나 접시를 집어 그에게 던졌다.

사장은 1년 동안 ㄱ을 농장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 1년 뒤 쉬는 날 같은 마을의 친구를 만나고 온 그에게 사장은 크게 화를 냈다. "언제라도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 대기해."

계약서상 근무지는 계약서를 쓰기 위한 근무지일 뿐이었다. 사장은 지인들이 운영하는 농장으로 그를 여러 차례 불법파견 보냈다. 일은 ㄱ이 했고, 돈은 사장이 받았다.

계약과 현실의 괴리가 만들어내는 낙차의 폭을 그는 견디기 어려웠다. 고용센터에 도움을 청했다. 사장은 거짓말한다며 그를 비난했다. 캄보디아 평균 가옥과 비교하면 자신의 숙소가 훨씬 좋다고도 했다. 고용센터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사업장 변경 동의를 요청했지만 사장은 거부했다. 사장은 그를 사업장 이탈로 신고했다.

짐을 챙겨가란 사장의 전화를 받고 농장을 찾아갔다. 그가 부른 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수갑을 채워 광주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구금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농·축산 이주노동자 인신매매를 한국의 법과 제도와 행정이 어떻게 떠받치고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면담한 이주노동자 다수가 착취를 목적으로 인신매매되었고 강제노동 상태에서 일한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계약서는 '숙식 제공'을 약속했다. 컨테이너 숙소는 여름엔 뜨겁고 겨울엔 추웠다. 화장실엔 샤워시설이 없었고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사장은 겨울에도 따뜻할 만큼 충분한 난방을 하지 못하게 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별도의 난방비를 내야 했다. 쌀 외의 반찬은 주지 않았다. 만들어 먹고 싶어도 숙소엔 조리 도구가 없었다.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강제노동(forced labor), 노동착취(labor exploitation). 국제앰네스티가 10월20일 발표(국회 기자회견)하는 '고통을 수확하다: 한국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착취와 강제노동' 보고서의 시작이자, 결론이며, 핵심 키워드다. 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 노마 강 무이코(34쪽 인터뷰 기사 참조)는 2013년 2월부터 2014년 4월까지 28명의 이주노동자를 만난 뒤 보고서를 썼다. 그리고 강렬한 용어를 사용해 한국 농·축산업 이주노동을 독해했다.

강제노동은 '처벌 협박'과 짝을 이뤄

인신매매를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로 좁혀 봐온 국내 시각에선 앰네스티의 진단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앰네스티 보고서는 국제적 기준으로 한국의 인신매매를 살폈다. '팔레르모의정서'(유엔 국제조직범죄방지협약의 부속의정서인 인신매매 방지 의정서·159개국 비준)는 피해자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했다면 피해자가 착취 혹은 계약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인신매매라고 본다. 미국 국무부도 '2014 대한민국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한국 이주노동의 강제노동을 우려했다. "일부 이주노동자는 임금체불, 여권압수, 채무노예, 성적 가혹행위, 열악한 생활환경 등 강제노동의 징후를 보이는 노동조건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농·축산 이주노동은 인권의 불모지로서 이미 지구적 도마 위에 올라 있다. 한국은 인신매매를 평가하는 국제기준에도 뒤처져 있다(팔레르모의정서에 2000년 서명했으나 아직 미비준). 인신매매 판단 기준이 협소하다는 사실은 인신매매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인신매매로 판단하지 않은 인신매매 피해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앰네스티 보고서는 국내 농·축산업 이주노동의 현실을 인신매매로 파악해 국제사회에서 이슈파이팅을 시작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노마 강 무이코가 풀어 설명하는 인신매매 메커니즘은 이렇다.

"흔히 관찰되는 예로 ①어떤 이주노동자가 가족을 부양하려 한국에 오는 과정에서 큰 빚을 진다. 2~3년은 꼬박 벌어야 하는 돈이다. ②와보니 계약 내용과 노동 환경이 다르다. 임금은 체불되고, 고용주에게 여권도 빼앗기고, 때론 폭행도 당한다. ③벗어나고 싶어도 고용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계속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면 '이탈' 신고를 하겠다고 위협한다. ④고용센터는 구제 수단이 되지 못한다. 노동자는 그저 견디거나 이탈해 미등록으로 전락한다."

강제노동과 인신매매에 끼얹는 휘발유는 근로기준법과 고용허가제다.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법과 제도가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의 인신매매에 기여하고 있다고 앰네스티는 분석했다. 보고서의 핵심 관점이다. 노마 강 무이코가 제시한 '흔한 사례들'과 '흔한 메커니즘'으로 다시 맞물린다.

①ㄴ(34·남·캄보디아)은 한국 입국을 위해 사채로 미화 1300달러를 빌렸다. 연이율 46%의 고리채였다. 부족한 돈을 마련하려 암소 2마리와 어머니의 보석을 팔았다. 돈을 갚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입국 전 부채는 입국 뒤 착취의 첫 올가미다. 제조업 취업을 희망하면서도 빚 때문에 대기 기간이 짧은 농업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②ㄷ(25·남·캄보디아)은 전남 해남을 근무지로 알고 왔다. 그는 해남과 진도를 오가며 70~80명 고용주가 운영하는 300여 곳의 밭에서 일했다. 불법파견이었다. 사장에게 항의한 날 눈이 많이 왔다. 사장은 일종의 벌로 그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그는 파견농장에서 밤을 새워야 했다. 계약 체결 당시부터 노동(계약보다 평균 월 50시간 초과)·휴게 시간과 급여, 근로 장소를 속여 허위 계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ㄹ(33·여·베트남)은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사업장 어디에서도 계약서를 받지 못했다. 계약서를 요구했을 때 고용센터가 대신 보관하고 있다며 고용주는 거부했다. "한국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의 상당수가 착취를 목적으로 한 속임수를 통해 채용됐다는 점에서 인신매매됐다"고 보고서는 기록했다.

③ㅁ(26·여·베트남)은 사장이 월급을 체불하자 고용센터에 진정했다. 사장은 그에게 "사업장 변경을 해주지 않을 것이며 3년 뒤엔 한국에서 재계약이 안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④). 강제노동(국제노동기구 협약 제29조 "처벌의 위협하에서 강요받는 노동")은 '처벌 협박'과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ㅂ(24·남·캄보디아)은 고용센터에 체불임금을 진정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농업 이주노동자 대다수는 동의하지 않는 조건에서 일을 하도록 강요받았으며 강압 수단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위협과 폭력이었다."]

'흔한 사례들'과 '흔한 메커니즘'

강제노동과 인신매매에 끼얹는 휘발유는 근로기준법과 고용허가제다.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법과 제도가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의 인신매매에 기여하고 있다고 앰네스티는 분석했다. 보고서의 핵심 관점이다. 노마 강 무이코가 제시한 '흔한 사례들'과 '흔한 메커니즘'으로 다시 맞물린다.

②앰네스티와 면담한 이주노동자들의 월 노동시간은 250~364시간이었다. 최저임금법을 위반해 작성된 계약서(④노동센터가 추인·양산)와도 차이가 크다. 휴일로 약속된 날에도 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계약 내용과 노동 현실의 불일치를 근로기준법 제63조(적용의 제외)가 키운다. 근로기준법 4장과 5장에서 정한 근로시간과 휴게·휴일 규정을 농·축산 노동자에겐 적용하지 않는다. 고용주들의 허위계약서 작성을 부채질(제1025호 표지이야기 '농·축산업에는 근로시간·휴일 적용 안 됨' 참조)하는 근거다. 한 달 내내 하루도 쉬지 못한 노동자도 3명 있었다.

③ㅅ(29·남·캄보디아)은 빚을 졌다. 브로커 알선료부터 각종 교육비까지 입국하는 데 1500달러가 들었다. 그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한다(①). ㅅ에겐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가 가장 고된 시간이다. 농장에 일이 줄면 사장은 월급을 깎았다. 겨울에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게 그의 잘못은 아닌데, 자신이 계절 대신 벌을 받고 있는 듯해 그는 괴로웠다. ㅅ이 사업장 변경에 동의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사장은 거부하며 말했다. "딴 데 가고 싶으면 가. 나는 사인 안 해줄 거고, 그럼 넌 '불법체류' 되는 거야." 계속 요구하면 사장은 정말 그렇게 할 것이다. 한국에서 돈을 벌려면 참을 수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ㅅ은 오랫동안 '등록'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싶다. 일자리를 잃는 것이 가장 두렵다.

고용주의 동의 없인 사업장을 옮길 수 없도록 한 고용허가제(제1025호 표지이야기 '그것이 어떤 지옥이라도' 참조)가 '족쇄'의 뿌리다. 어렵게 사업장 변경 동의를 얻어도 고용센터는 구인 중인 사업체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2012년 8월부터 중단) 구직이 쉽지 않다. 3개월 이내에 새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출국해야 한다. 4년10개월 뒤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싶어도 사업장 변경 기록이 없는 이주노동자만 가능하다.

④ㄷ(25·남·캄보디아)이 불법파견을 견디다 못해 고용센터에 알렸다. 고용센터 직원은 "이주노동자 파견은 불법이 맞다"며 말했다. "사장한테 가서 불법이라고 말하라." 그가 사장에게 "불법"이라고 하자 사장은 "합법"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ㅇ(남·캄보디아)의 사장은 한국인 노동자에겐 휴식을 주면서 이주노동자에겐 쉬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화장실이 없어 이주노동자들은 땅에 구멍을 파서 일을 봤고, 가득 차자 구멍을 하나 더 팠다. 사장은 월급을 2개월마다 줬다. 고용센터에 진정하자 직원이 사장과 통화했다. 사장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28명 중 23명의 이주노동자가 고용센터에 도움을 청했지만 누구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고용센터가 구제해주지 못하는 동안 노동자는 '진정했다'는 이유로 고용주로부터 '처벌 협박'을 받는다.

"'인신매매' 정의를 공식화해야 한다"

한국의 농촌은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은 땅이다. 이주노동자는 그 땅의 마지막을 지탱하는 산소호흡기와도 같다. 법과 제도와 행정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그 땅에 강제노동과 인신매매를 재배하고 있다.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한 고용허가제는 노동착취제도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할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형법을 개정해 인신매매죄를 신설했다. 팔레르모의정서의 이행입법 형태를 띠었다. '피해자가 착취에 동의했다 하더라도 그의 취약한 지위를 이용한 경우 인신매매에 해당한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팔레르모의정서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다. 인신매매 피해자 보호와 지원 조항도 빠져 있다. 미국 국무부는 "(한국이) 모든 형태의 인신매매를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형법상 '인신매매'의 정의를 공식화해야 한다"('2014 대한민국 인신매매보고서')고 권고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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