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오페라' 편향성 논란.. 설설 끓는 미국

2014. 10. 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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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 '클링호퍼의 죽음' 공연 놓고 논쟁

뉴욕의 유명 오페라단 무대에 오른 작품 한 편이 미국 사회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이 이날 '클링호퍼의 죽음'을 초연한 맨해튼 링컨센터 인근에 유대인 조직과 보수적 종교 단체 소속 수백명이 몰려 공연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 가운데 100여명은 휠체어를 타고 '나는 리언 클링호퍼다'라는 종이팻말을 목에 건 채 항의했고, 곳곳에서 "부끄럽다", "테러는 예술이 아니다"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정장과 이브닝 드레스 차림을 한 관객들은 경찰이 쳐 놓은 바리케이드 사이로 난 미로 같은 길을 뚫고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이같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것은 이 작품이 가진 민감성 때문. 작곡가 존 애덤스가 1991년 제작한 이 작품은 1985년 팔레스타인해방전선(PLF) 소속 테러리스트들이 이탈리아 여객선 '아킬레 라우로'호를 납치한 뒤 승객들을 인질로 삼고 동료 수감자들의 석방을 요구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당시 하반신 마비 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탄 채 부인과 함께 여행 중이던 유대계 미국인 리언 클링호퍼는 이들에게 살해된 뒤 바다에 내던져졌다.

이 작품은 잔혹한 살인을 드라마틱하게 그렸다는 점 말고도 '추방당한 팔레스타인인의 합창'의 가사가 이스라엘을 억압자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일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고충을 보여주며 납치 동기를 설명한 장면은 테러를 정당화하는 시도로 해석되기도 했다. 클링호퍼의 두 딸은 "우리 아버지를 죽인 것을 낭만적으로 묘사하면서 합리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최 측과 출연진은 그동안 각종 협박에 시달렸다. 경찰이 투입돼 보안을 강화하고 관객들의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했지만 공연 중에도 소란은 멈추지 않았다. 한 남성 관객은 막간에 수차례 "클링호퍼 살해범들은 절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외쳤다가 끌려나갔고, 한 여성은 클링호퍼 살해 장면에서 비명을 지른 뒤 객석을 떠났다. NYT는 "이 작품은 일부 평론가들에게는 걸작이라 평가받고 있지만 소재 자체는 격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며 "올여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태와 유럽에서 일어난 반유대주의 물결로 많은 유대인이 번민하는 시기에 공연이 시작돼 논란이 더 커졌다"고 전했다.

시위에 참가한 소아과 간호사 힐러리 바(55)는 "이 오페라를 맨해튼 한복판에 올린 것은 '나가서 누군가를 죽여라. 테러리스트가 돼라. 그러면 우리가 당신에 관한 극본을 써 주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퀸스대학에서 극장사를 가르치는 제임스 새슬로(66) 교수는 "예술작품이 어떤 주제를 다뤘다고 해서 모두 그걸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는 내용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맞불 시위를 벌였다.

논쟁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공화당 소속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 시장까지 이날 시위대에 가세해 "이 작품은 뒤틀린 역사관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는 달리 민주당 소속 빌 더블라지오 현 시장은 "미국적 태도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며 공연의 자유를 옹호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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