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 뒤의 정파별 계산 따져보니..

김태은 기자 2014. 10. 21.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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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대한민국 개헌 기로에⑤]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the300-대한민국 개헌 기로에⑤]]

새누리당 한 재선 의원의 의원실에는 용 형상을 수놓은 자수 그림이 걸려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대통령을 꿈꾸며 정치인의 길에 들어선 자신에게 지인이 대권을 얻길 기원하며 선물한 그림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은 대통령을 시켜준다고 해도 안 한다"면서 "누가 그 자리에 가더라도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현재 대통령 제도에 주어진 권력과 실제로 대통령이 발휘할 수 있는 권력의 '미스매치'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의외로 많은 수의 국회의원들이 이와 비슷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정치권에 직접 들어오고 난 후 현 권력구조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재오 "분권형 개헌이 대세"…권력 놓겠다는데

여권의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제에 대해 "(권력이) 너무 많이 주어져 오히려 아무 것도 못하는 자리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의 실세로 대통령 권력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누렸던 그의 눈에 대통령의 권력은 나누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양날의 검이 됐다.

그는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 업적을 세워도 국내에 들어오면 정쟁에 묻혀 그 성과가 다 날아가 버린다. 또 다른 국가와 협의해 실행에 옮기려 하면 대통령이 바뀌는 경우도 왕왕 있다"면서 "지난 정부 국정에 참여하면서 분권형 대통령제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친이(친 이명박)계 좌장인 그의 개헌 행보를 다른 시각에서 해석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친이계 세력이 사라지게 되자, 개헌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 한다는 해석이다. 개헌에 대한 그의 진정성을 믿는 이들 중에서도 일부는 개헌 논의가 권력 다툼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개헌이 정계 개편과 정국 쇄신용으로 '반짝' 논의되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반복돼 왔던 만큼 이번에도 의심의 눈초리가 쉽게 거둬지기는 어려울 듯 보인다.

◇김무성, 미묘한 시기에 미묘한 대립각..'잠룡들'도 분권형 개헌 찬성

여권 비주류 세력으로 당권을 장악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최근 개헌론에 불을 붙이며 청와대와 묘한 대립각을 만든 것 역시 이 같은 '권력투쟁론'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김 대표는 수 차례 개헌 논의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개헌론의 폭발력이 높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을 '블랙홀'에 비유하면서까지 개헌 논의에 제동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다.

개헌 방향에 대해서도 미묘한 변화를 보였다. 당초 정부통령제를 바탕으로 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지지했으나 최근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언급해 분권형 모델로 선회했음을 시사했다. 이재오 의원 등 국회의 개헌 논의 주도 세력을 우군으로 확보한 셈이다.

김 대표 이외에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 여권 잠룡들 역시 분권형 개헌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차기 주자들을 중심으로 쏟아지는 분권형 개헌론에 대해 "대통령이 못될 바에야 당내 기반을 바탕으로 내각제 총리를 노리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통일과 외교를 담당할 분권형 대통령으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참신한 대외 이미지를 지닌 인물과 '러닝메이트'를 이뤄 분권형 개헌을 관철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친박계, 수면 아래 반격움직임...여권 갈등 심각해질수도

새누리당 친박 주류는 김 대표를 포함해 비주류의 개헌 주장 속에 정권 힘빼기 의도가 숨어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친박계로선 다음 총선을 앞두고 공천권을 둘러싼 힘겨루기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청와대의 권력이 보다 지속될 필요가 있다. 아직은 수면 아래지만 반격을 준비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여권 내 갈등이 의외로 심각한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당이 쪼개질 경우를 상정하고 있는 야당과의 이해관계에 따라 개헌이 정계개편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여권 내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여야 이해관계에 따라 개헌 논의가 불붙을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이 경우 오히려 개헌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는데다가 국민들 역시 개헌을 권력다툼의 수단으로만 볼 것"이라고 우려했다.

◇야당, 개헌론은 분당의 불씨?

야당은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개헌 논의를 적극 반기고 있다.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정권 교체를 확신하기 어려운 데다가 당내 계파 갈등으로 분당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있는 상황에서 연정을 통해 내각 권력을 분점할 수 있는 분권형 개헌이 결국 야당의 생존법이 될 수 있다고 정치권은 내다보고 있다.

지난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개헌 논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박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며 개헌 논의에 뛰어들었다. 더욱이 "유신헌법 개헌 논의를 금지한 1970년대 긴급조치를 떠올리게 한다"며 개헌의 필요성보다는 박근혜 정부의 반민주적 행태를 부각하고 있다.

그동안 야당은 개헌 논의를 둘러싼 여권의 분열을 방관자적 입장에서 어부지리를 취하고자 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 최대 세력인 친노(친 노무현) 그룹의 좌장인 문 의원이 개헌을 빌미로 박근혜 정부와 각을 세운다면 개헌론은 판도가 달라질수도 있다.

또다른 야권 유력 주자인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는 개헌 논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최근 경제 문제 등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개헌이 필요하더라도 정치 개혁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논의해야지, 당장 개헌부터 앞장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 비상대책위원회를 비롯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참여를 거부하고 독자 행보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안 전 대표 측이 새정치민주연합과 더욱 멀어지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초 전당대회를 앞두고 계파 갈등이 심화되면서 분당까지 언급되는 가운데 개헌이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 야당 관계자는 "내각제가 결합된 개헌에 야당이 찬성한다는 것은 유력 대선 주자들을 여럿 갖고도 집권을 포기하고 제1야당으로 만족하며 살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taien@mt.co.k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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