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의 연금 그 뜨거운 감자

이종태 기자 2014. 10. 20. 08: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18일 한국연금학회는 <재정 안정화를 위한 공무원연금 개혁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새누리당이 발주했다. 핵심적 내용은, 공무원들이 지금보다 '43%(보험료) 더 내고, 34%(급여) 덜 받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낸 만큼 받는' 시스템이다. 이자율을 고려하면 적금과 다를 바 없다. 지금까지 공적연금(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에서는 '낸 돈보다 더' 받았다. 연금학회 방안은, 공무원연금에서 이 원리를 폐기하자는 것이다.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등 공무원 사회가 발칵 뒤집힌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과격한 개혁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뒤 정부(안전행정부)로 바통을 넘겼다. 안전행정부는 이번 달 내로 '정부안'을 발표한다. 세부 내용은 다소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연금학회 방안과 비슷하리라 보인다.

'싸움'의 직접적 주체는 정부·여당 대 공무원이겠지만, 결국 전체 공적연금 시스템의 환부를 드러내는 쪽으로 확산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칫 '용돈 연금'을 받고 있는 국민연금 가입자의 상황이 더욱 나빠질 수도 있다.

ⓒ연합뉴스 : 9월27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공적연금 복원을 위한 공노총 총력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번 달 안에 안전행정부가 공무원연금과 관련한 정부안을 내놓는다.

'재정 안정화' 강조하다 보면 국민연금도…

그 이유는, 정부 개혁의 목표가 '재정 안정화'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목표 앞에서 '보편적 노후소득 보장' '사회적 형평성 개선' 등 사회보험 자체의 취지는 왜소해져버린다. 정도는 다르지만 국민연금 역시 공무원연금과 비슷한 문제에 처해 있다. 언젠가 기금이 고갈될 운명이고, 낸 돈보다 더 받고 있다. 재정 안정화가 유일한 목표라면 국민연금 역시, 더 내고 덜 받게 해야 한다. 정부 판단에 따라 '용돈 연금'이 '거스름돈 연금'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국민연금 출범 당시(1988년), '3%(가입자 소득의 1.5%, 정부 1.5%) 보험료-소득대체율(가입자의 소득 대비 연금급여) 70% 급여'가 2014년 현재 '9%(가입자 4.5%, 정부 4.5%) 보험료-소득대체율 46% 급여'로 전락한 것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다.

더욱이 2000만명 이상인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공무원들과 달리 연금제도 개악에 크게 저항하지도 않는다. 가입자 수가 많아서 오히려 단결하기가 어렵다. '연금의 맛'을 본 노령자가 국민 대다수는 아닌 데다 그 액수 역시 적어서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 탓도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으로 칼끝이 옮아가리라는 걸 알더라도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지금 공무원들을 편들기란 힘들다. 무엇보다 공무원연금을 약속대로 지급하려면 막대한 정부 재정이 투입된다. 이 재정은 세금으로 조달된다. 정부 예산이 국민 전반에 대한 복지에서 공무원연금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공무원연금은 1993년 최초로 적자를 냈다. 2000년에는 '기금'이 고갈됐다. 2014년 현재 공무원들은 월 과세소득이 100만원인 경우 7%인 7만원을 보험료로 납부한다. 정부도 7만원을 낸다. 이 14만원이 '기금'이다. 그런데 공적연금은 낸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돌려준다. 그 비율이 수익비다. 공무원연금의 수익비를 2.3으로 가정하면, 앞에서 조성된 14만원이 퇴직 이후 32만원으로 돌아간다. 공무원 본인 처지에서는 낸 돈보다 4.6배(32만원/7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는 셈이다. 낸 돈보다 많이 받으니, '낸 돈으로 조성된 기금'은 언젠가 고갈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그 시점에 일하는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퇴직 공무원들의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 이른바 정부 보전금이다. 이런 구조는 국민연금도 마찬가지다. 늦고 빠른 차이가 있지만 수익비가 1보다 큰 이상 축적된 기금은 고갈된다. 군인연금은 공무원연금보다 27년 빠른 1973년에 바닥났다. 사학연금은 2033년, 국민연금 역시 2060년쯤에 고갈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공무원 연금에 대한 보전금 규모는 2001년 599억원에서 2008년에는 1조4000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도 2조5000억원대, 2022년에는 7조8000억원(국회 예산정책처)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014년 현재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소득은 198만원이다. 이에 비해 공무원연금 가입자의 평균소득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단 전체로 볼 때는 소득이 세금을 통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고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간의 형평성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공무원의 보수 문제다. 공무원들은 후한 연금이 재직 기간의 낮은 보수를 보충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연금은 '후불임금'이다. 연금 개혁을 반대하는 가장 강력한 명분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보수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는 객관적 자료가 없다. 안행부가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은 공무원 전체의 평균 월 소득액이 2014년 현재 447만원이라는 것이다. 또한 2013년 현재 공무원 보수는 '100인 이상 사업장 사무직 노동자' 평균임금의 84.5%(2013년 현재)라고 한다. 그러나 공무원 평균 월 소득이 447만원이라는 기사가 나가면,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받는다는 공무원들의 댓글이 줄을 잇는다. 통계수치와 '실제'의 차이에 당황한 언론이나 연구자들은 안행부에 자료를 요청하지만 받기는 힘들다.

최근 보수 언론에서 나오는 국민연금 대 공무원연금의 급여액 대비(84만원 대 219만원)에는 선동적 성격이 짙다. 공무원연금은 1960년에 시작된 만큼 최대 가입 기간인 33년을 채운 사람이 아주 많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발족한 1988년에 가입했어도 이제 26년째다. 평균 급여가 낮게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공무원연금은 어느 나라나 국민연금보다 어느 정도 높은 편이다. 공무원은 국가의 공복이라는 측면에서 사익 추구도 제한된다. 이에 대한 보상은 필요하다. 퇴직연금 외에 일시금으로 받는 퇴직수당은 민간기업 퇴직금의 4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 안정성은 공무원만의 장점이다.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불평 역시 당연한 측면이 있다.

2010년을 기점으로 크게 변하는 공무원연금

공무원은 20년 동안 보험료를 내야 연금 수급자격이 발생한다. 보험료를 내는 기간은 최장 33년이다. 2009년까지 공무원들은 과세소득 기준으로 5.5%의 보험료를 납부했다(정부도 같은 금액을 부담). 예컨대 1976년에 입직해서 2009년에 퇴직한(33년 근무) 공무원은, '퇴직 전 3년 동안 보수월액(기본급+정근수당)'의 평균이 300만원인 경우, 그 76%인 228만원을 매달 연금급여로 받았다. 228만원은 '보수월액 평균'에 76%를 곱한 것이다. 76%는 어디서 나왔을까? 공무원연금에는 '급여율'이란 것이 있다. 재직 기간 1년마다 2.3% (계산식은 더 복잡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숫자로 표현)씩 늘어난다. 예컨대 재직 기간이 1년이면 2.3%, 2년이면 4.6%, 30년이면 69%, 33년이면 76%다. 최대 가입 기간인 33년에 가능한 지급률 76%가 바로 '소득대체율'인 것이다. 이처럼 공무원연금 급여는 오래 근무해서 보수가 높을수록 많아진다. 소득비례다. 또한 2009년까지 임용된 공무원들은 60세부터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공무원 107만여 명 중 94만명(87.8%) 정도가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제도는 2010년을 기점으로 크게 변한다. 보험료가 과세 소득의 5.5%에서 7%로 늘었다. 연금급여 산정의 기준도 소득이 가장 높은 '최종 3개월의 보수월액 평균'이 아니라 '전 근무기간의 과세소득 평균'으로 수정되었다. 급여율 역시 1.9%로 떨어졌다. 따라서 33년 근무하는 경우의 소득대체율 역시 76%에서 62.7%(33년×1.9%)로 낮아졌다. 2010년 이전부터 계속 근무해온 공무원들의 급여 산정은, 2010년을 기점으로 다른 기준을 적용받는다. '2010년 이후 임용자'에게 가장 불리한 개혁안은 급여 수령 시기를 65세로 늦춘 것이다. 이전 공무원들(60세부터 수령)보다 5년 정도 연금을 못 받는다. 2014년 현재 평균 급여(219만원)로 계산하면 1억3000만원 정도의 손해를 보는 셈이다. 2010년 이후 임용자는 모두 13만명(12.2%)이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2014년 현재 46%에 불과하다. 40년 동안 계속해서 보험료를 냈을 때 가능한 수치다. 그나마 매년 0.5%씩 낮아져서 2028년부터는 40%로 고정된다. 급여 수령 시기도 계속 늦춰진다. 1969년생 이후는 65세가 되어야 지급받을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서는 연금을 받기 전까지 직장 생활을 40년 하기 힘들다. 즉, 국민연금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40%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20~30%대가 고작이다.

다만 국민연금에는 강력한 소득 재분배 기능이 있다. 공무원들은 본인의 보수에 비례해서 연금을 받는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급여 산정 기준에는 '본인의 소득'과 '전체 가입자의 소득'이 함께 고려된다. 소득대체율이 40%라면, 그중 20%는 본인의 '평균소득'에, 나머지 20%는 전체 가입자의 평균소득에 적용해서 급여를 계산한다. 전체 가입자의 월평균 소득이 200만원일 때, 100만원밖에 못 버는 국민연금 가입자는 매월 60만원의 급여를 받을 수 있다. 전체 평균소득의 20%인 40만원과 본인 소득의 20%인 20만원을 합산한 결과다. 공무원연금처럼 '소득비례'였다면, 이 가입자는 본인 소득의 40%인 40만원만 받게 된다. 반대로 전체 소득보다 많이 버는 400만원 소득자의 월평균 급여는 120만원으로 계산된다. 본인 소득의 20%인 80만원에 전체 소득의 20%(40만원)를 합산한 결과다. '소득비례' 원리가 적용된다면 그의 월 급여는 160만원에 달했을 것이다. 즉, 국민연금 체계에서는, 부유층은 낸 돈보다 적게 받고, 빈곤층은 많이 받는다. 소득대체율도 부유할수록 낮고, 가난할수록 높다. 그 평균이 40%다.

공무원 보수 체계의 불투명성도 문제

이처럼 공적연금 체계는 복잡하다. 공무원연금 등 이른바 특수직역 연금과 국민연금 사이뿐 아니라 각 연금 내에서도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그러나 연금 개혁의 주도권은 단연 '재정 안정화'론에 있다. 그래서 급여의 크기를 결정하는 보험료 규모, 보험료 납부 기간, 연금수급 개시 연령 등에 논의가 집중된다. 이런 재정안정화론을 비판하는 쪽에서도 그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이런 가운데 제3의 견해들도 나오고 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2010년 이전과 이후 임용자로 구별해서 하후상박(下厚上薄)적인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0년 이전 임용자들은 이후 임용자보다 연금 수급 기간이 5년이나 길다. 60~65세 이후 20년 정도 더 산다고 가정하면 25%나 더 받는 셈이다.' 그래서 오 위원장은, 한국연금학회의 방안(급여율 1.9%를 상하위직을 막론하고 일률적으로 1.25%로 인하)에 비판적이다. '직급과 재직 기간을 고려해서, 저소득자의 급여율은 그대로 두거나 작게 줄이는 대신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급여율을 낮추는 방안이 적합하다.' 다만 공무원의 보험료를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대신 퇴직수당 역시 민간의 퇴직금 규모에 맞추는 것이 공평하다고 오 위원장은 주장했다.

이번 공무원 연금 관련 논란을 지켜보면서 오 위원장이 우려하는 것은 공무원 보수 체계의 불투명성이다. 대표적 연금 전문가로 통하는 그 역시 공무원 보수 체계를 세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구하지 못한 상태다. 지난 9월 말 안행부에 기본급, 직급별, 과세소득 기준의 호봉표 등을 요청했으나 10월11일 현재까지 받지 못했다.

좀 더 급진적인 주장도 있다. 노동당의 연금 개혁 방안 마련에 참여하고 있는 연구자 김형모씨는 '국민연금 하나로'를 제안한다. 전체 국민을 포괄하는 국민연금이 있는 상황에서 '3개나 되는 특수직역 연금이 국민연금과 '병립적'으로 유지되는 건 단순히 조직 유지를 통한 기득권 외에는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입자 106만명인 공무원연금, 17만명인 군인연금, 31만명인 사학연금을, 가입자 2074만명인 '국민연금 하나로' 통합하자'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가입자 4.5%, 정부 4.5%)에서 현재의 공무원연금 수준(가입자 7%, 정부 7%)으로 높여야 한다. 그러면 소득대체율 역시 2007년 이전의 60%로 복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민연금 구조를 '조금 내고 조금 받는' 시스템에서 '더 내고 적절하게 받는' 구조로 바꾸는 일종의 '보편적 증세론'이다.

사실 '보험료 인상'은, 상당수의 진보 성향 연구자들도 남몰래 꺼내놓곤 하는 주장이다. 수익비가 높은 공적연금의 경우 후세대의 부담 문제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현세대와 후세대 내에서, 그리고 현세대 내의 계층별로 부담을 나누는 문제는 좀 더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제안될 필요가 있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Live - [ 시사IN 구독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