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대행 '공룡' 페이팔, 한국 '호시탐탐'

홍재원 기자 2014. 10. 6.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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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포기 '천송이 대책' 파장
회원 1억5천만 미국 '페이팔' 카드정보 저장 허용 정책 이후
FTA 규정 앞세워 진출 채비.. 전자결제 시장 통째 내줄 수도

정부가 결제대행업체(PG사)에 카드정보 저장을 허용하자 미국 PG사인 페이팔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앞세워 국내 진출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본격화할 경우 국내 시장의 잠식 위험이 클 것으로 분석됐다.

FTA 협정에 따르면 이를 막거나 해당 규제를 되살릴 수도 없어, 정부의 '천송이 대책' 탓에 오히려 국내 전자결제 시장을 해외에 통째로 내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5일 "최근 미국 페이팔이 5~6명의 인력을 (한국에) 보내 국내 시장진출을 준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며 "페이팔의 카드정보 저장 방식의 간편결제 서비스가 국내에서도 허용돼 금융당국도 더 이상 페이팔의 한국 진출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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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공룡'에 국내 업계 초토화

페이팔은 1억5000만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고 세계 198개국에서 28개 화폐로 간편결제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페이팔은 PG사의 카드정보 저장을 금지한 국내 규정에 따라 한국에서 영업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천송이 코트' 질책에 따라 지난 8월 금융위원회가 페이팔 방식의 영업을 전격 허용키로 하면서 국내에서 사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미국 구글도 국내에서 PG 등록을 한 뒤 모바일 쇼핑몰 등과 연계해 전자결제 분야에서 본격 영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팔 등이 국내에 진출하면 토종 PG사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효찬 여신금융협회 조사연구센터장은 "국내 소비자 상당수가 해외 직구(직접구매) 과정에서 미국 페이팔에 회원으로 가입돼 있고 페이팔 계열 오픈마켓인 이베이코리아가 이미 국내에서 영업 중인 점 등을 감안하면 페이팔의 국내 진출은 생각보다 수월할 것"이라며 "반면 국내 PG사들은 규모가 영세하고 보안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등 경쟁력이 떨어져, 전자결제 시장은 해외 업체에 급속도로 잠식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여신협회는 페이팔이 국내에 진출하면 가맹점 수수료를 2.36~3.97%로 책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국내 PG사들은 3.4~4%에 달해 시장 주도권을 넘겨줄 것으로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한·중 FTA가 체결되면 중국 알리페이도 국내 시장에 본격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 "한국 정부 스스로 규제 포기"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규제부터 풀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든 꼴이 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중국인이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천송이 코트'를 살 수 없다"고 질책한 데 이어 7월엔 "전자결제 시장을 중국에 빼앗길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금융위는 대통령이 이 같은 언급을 한 지 나흘 만에 카드정보 PG사 이관을 골자로 한 '천송이 대책'을 내놓았고, 이후 한달 만에 관련 규정을 고치는 등 '속도전'에 치중하고 있다.

통상 전문가들은 국내 업계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 공룡 업체에 길을 터준 것은 치명적 실수라고 우려했다. 송기호 변호사는 "카드정보 저장 방식의 페이팔 서비스는 '신(新)금융서비스'에 해당한다"며 "이번 금융위 조치로 페이팔의 서비스를 국내 업체와 차별할 수 없게 됐다. 정부에 보장된 고유의 규제 재량권을 포기한 꼴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개방된 시장은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역진방지)는 한·미 FTA의 원칙을 감안하면 해당 규제를 되살리기도 어렵다"며 "정부가 이 같은 상황을 신중하게 검토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언급에 쫓긴 정부가 오히려 멀쩡하게 성장하던 국내 간편결제 시장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전요섭 금융위 전자금융과장은 "이번 조치에 따라 카드정보 저장형 간편결제 시장이 개방되는 것은 맞다"면서도 "국내와 해외 업체 모두에 공평하게 적용되는 제도 변화이므로 특정 국가나 업체의 유불리에 관한 내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 과장은 "한·미 FTA나 통상 문제는 언급하지 않겠다"며 "그런 문제들은 보도자료 등을 통해 기존에 발표한 내용을 보고 판단해달라"고 했다.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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