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1월생' 많은 한국과 '레드셔팅' 유행인 미국

안서현 기자 2014. 9. 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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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은 12월생입니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돼 억울하게 한 살을 먹어 세 살이 된 경우입니다. 회사 어린이집에 3세 반부터 있어 신청이 가능하지만, 다른 동갑내기 친구들과 많게는 12개월 가까이 차이가 나니 선뜻 보내기가 겁이 납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다른 아이들에 비해 발육이나 학습이 뒤처지진 않을까' 등등 벌써부터 이런 걱정이 드는 게 부모 마음인가 봅니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1월이 되면 집에서 아기를 낳았다는 출생신고가 급증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아이를 낳고 한 달 안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출생신고 방법은 2가지인데, 아기를 출산한 병원에서 발행한 출생증명서를 첨부해 관공서에 내는 게 보편적입니다. 하지만 병원이 아닌 집에서 아기를 낳는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 이 경우 증인 2명을 내세워 출생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인우보증'이라고 합니다. 서울 가정법원에 신고된 인우보증 사례는 구청마다 월평균 약 4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해마다 1월만 되면 인우보증을 통한 출생신고 사례가 구청마다 30건으로 급증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12월생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 마음 때문입니다. 과태료를 물지 않는 선에서 학교 입학 등을 1년 늦추기 위해 1월생으로 '거짓' 신고하는 것이죠.

이런 사례들을 보고 '유난을 떤다'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미국에도 이런 '극성(?) 부모'들이 존재합니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잘 적응하게 하려고 유치원이나 학교 입학을 자발적으로 1년 정도 늦추는 겁니다. 미국에서는 이를 '레드셔팅(red-shirting)'이라고 부릅니다. 레드셔팅은 대학에서 선수들을 시합에 내보내기 전에 1년 동안 후보 선수로 훈련을 더시키는 관례를 뜻하는 용어입니다. 유망한 선수를 시합에 바로 내보내 '어떻게든 살아남게' 하기보다는 1년 동안 여유를 가지면서 연습을 시키고 장기적으로 더 '훌륭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미국 국가교육통계센터는 미국 유치원생 가운데 약 6%가 자발적으로 학교 입학을 늦춘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자발적 유급, '레드셔팅'의 비율이 지역별로 다르다고 보도했습니다. 일례로 코네티컷 주의 경우 가난한 학군에서는 레드셔팅을 하는 학생이 불과 2% 정도이고, 부유한 학군에서는 그 비율이 30%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1년 늦게 입학한 전형적인 아이들의 부모는 '고등교육을 받은 백인'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는 1년 치의 추가 육아 비용이나 유치원 비를 감당할 수 있는 가정에서만 '자발적 유급'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자발적 유급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토론토대 경제학자 엘리자베스 두이는 학급에서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을 경우 어느 정도 이점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여러 건 발표했는데, 같은 학년에서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학생들이 어린 학생들보다 시험 점수가 높고, 리더가 될 확률도 높다고 밝힙니다. 반면 우리에게 '똑똑한 뇌 사용설명서'의 저자로 잘 알려진 새뮤얼 왕은 나이 많은 친구들 사이에서 지내는 어린 아이들이 행동이나 학업 면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나이보다는 학교생활을 누구와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출산을 앞두고 '1월생으로 출생신고를 해야 하나?'라고 잠시 고민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생긴 대로 살자'라는 결론을 내리고 병원에서 준 증명서를 갖고 출생신고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인우보증을 통한 출생신고든, 레드셔팅이든 문제는 '돈'과 '부모의 교육관'입니다. 아이를 1년 더 돌볼 여유가 되고, 1년 치 사교육비를 더 낼 능력이 있고, 조기교육 또는 선행학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라면 '자발적 유급'은 말 그대로 그들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혹시나 자녀의 학업능력을 섣불리 과대평가, 혹은 과소평가해 부모가 알아서 취학연령을 재단하는 것은 아닌지, 또 자발적 유급에 따른 부작용은 없는 건지도 신중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안서현 기자 ash@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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