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 논란'..물가상승률이 절대적 잣대 아니다

2014. 9. 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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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물가상승률 마이너스 아니더라도

상승률이 전보다 낮아지면

매출증가세 둔화·실제금리 상승

자영업자 체감경기도 악화

물가변동, 그 원인뿐 아니라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주목을

지난 8월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초기 단계에 있다"고 언급해 관련 논란에 다시 불씨를 지폈으며, 지난 9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 디플레이션의 사전적 정의가 물가수준의 하락이라는 점에서, 현재 1%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두고 디플레이션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 부총리의 문제 제기가 엄밀한 용어법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디플레이션 논란에 대한 이주열 총재의 대응방식이다.

이 총재는 현재의 낮은 물가상승률이 수요측 압력의 부진보다는 농산물과 국제원자재 가격의 하락 등 공급측 요인에 주로 기인한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이를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2%대 초반으로 낮지 않은 수준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는 현재의 저물가가 공급측 요인에 기인한 일시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향후 수요측 물가압력이 확대되면서 물가상승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한은의 이러한 대응은 디플레이션 논란에 대해 경기전망을 제시하면서 핵심을 비껴가는 것에 가깝다. 현재의 물가상승률이 낮기는 하지만 근원물가의 상승세로 미루어볼 때 수요는 회복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향후 물가상승률도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한 셈이다. 여기서 물가의 움직임은 실물경제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으로만 이해될 뿐인데, 디플레이션 우려는 애당초 이러한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어긋난 대응방식이기도 하다.

물가의 움직임이 일차적으로 실물경제의 수요와 공급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새삼스레 디플레이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논란을 벌일 이유가 없다. 그냥 현재의 경기상황에 대한 판단과 향후의 경기흐름에 대한 전망으로 충분하다. 경기가 안좋아서 수요가 위축되면 물가가 낮아지거나 심하면 아예 하락할 것이고, 반대로 경기가 좋아져 수요가 늘어나면 물가는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물가의 움직임은 실물경제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일 뿐이다. 그러나 물가는 실물경제의 움직임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물가의 움직임이 실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디플레이션 논란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디플레이션 아래서는 익숙한 인플레이션 상황과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물가의 절대수준이 하락하면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또는 기대 인플레이션)을 차감한 실질금리가 상승하게 되고, 이는 소비와 투자 등 수요의 부진을 야기한다. 그리고 실질금리의 상승과 더불어 화폐의 실질가치가 높아지면서 부채의 실질적 부담도 증가한다. 이러한 가운데 각종 명목지표들의 증가세가 둔화되고 심지어는 감소하면서 경제주체들의 체감경기도 악화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극단적으로 전개될 경우 부채부담의 완화를 위한 경제주체들의 부채 감축이 자산가격의 하락을 야기하고, 이러한 가격 하락이 다시 실질 부채부담을 더욱 증가시키는 악순환이 바로 부채 디플레이션이다.

물론 우리경제의 현 상황은 물가상승률이 플러스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디플레이션이 아니며, 부채도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채 디플레이션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전술한 디플레이션의 여러 가지 부정적 영향들은 물가의 절대수준이 하락할 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굳이 마이너스가 아니더라도, 물가상승률이 예전보다 낮아지게 되면 명목금리는 제자리에 있어도 실질금리는 상승한다. 또한 저물가의 영향으로 매출증가세가 둔화되면 자영업자의 체감경기도 악화되며, 명목성장률의 하락은 정부의 세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국고채 등 주요 시장금리가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명목금리를 기준으로 한 것일 뿐, 물가상승률을 차감한 실질금리 기준으로 보면 절대적으로 낮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경기회복세가 미약하긴 해도 성장률 전망치가 3%대 중반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금융위기 당시에 버금가는 기준금리 수준이 적절한가라는 반론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는 실질성장률과 명목금리의 비교일 뿐 동일하게 실질 또는 명목 기준으로 비교하면 그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디플레이션 또는 저물가의 해악을 논하는 데 있어서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인가 플러스인가를 절대적 잣대로 삼을 이유는 없다. 굳이 마이너스가 아니더라도 '매우 낮은' 물가상승률은 실물경제에 여러 가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물가의 변동요인을 논하는 것도 부차적인 문제다. 저물가의 원인이 공급측 요인에 있든 수요측 요인에 있든 간에, 어쨌든 저물가가 되면 실질금리는 올라가며 저물가의 부정적 영향들은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요인들의 지속가능성이다.

최근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과 대내외 환경의 변화에 따라 물가의 추세적 움직임도 과거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물가결정구조의 변화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과 대응이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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