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최악 집안싸움'..남은 건 '누더기 현실'

2014. 9. 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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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회장·행장 동반퇴진으로 끝난 KB사태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싼 집안싸움에서 촉발된 이른바 '케이비(KB) 사태'가 끝내 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동반 퇴진으로 일단락됐다.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지난 4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직후 사임한 데 이어 임영록 케이비금융지주 회장도 18일 이사회 해임 의결로 대표이사직을 상실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케이비금융의 고질적 병폐인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고 지주와 은행 간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무원칙한 제재로 책임론이 부상한 금융당국에 대한 개혁 요구도 커지고 있다.

주전산기 도화선…뿌리는 모피아-연피아 다툼

■ 낙하산 CEO

출신 배경이 '모피아'(재무부+마피아)와 '연피아'(연구원+마피아)로 달랐던 임 회장과 이 행장의 알력다툼은 이번 사태를 부른 도화선이 됐다. 그동안 은행 등 금융회사에선 낙하산 인사가 빈번했다. 감독기구의 통제를 받는 규제산업의 특성이 작용한 결과다. 과거 청와대에서는 금융을 정부 정책 실행의 주된 창구로 여기면서 관료 출신들을 은행장으로 내려보내곤 했다. 관료들도 많게는 20억~30억원대의 고액 연봉이 보장되는 금융회사 시이오(CEO) 자리를, 공직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를 받았던 데 대한 '이연된 보상'쯤으로 여겼다.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금융회사 시이오 자리는 '정권의 전리품'이라는 인식이 더 노골화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인 어윤대 전 케이비금융지주 회장이 전형적인 '낙하산 시이오'로 분류된다. 이들은 내부에서 축적된 리더십이 결여돼 있기 때문에 측근을 동원해 줄서기 문화를 만들거나 단기적 실적을 내는 데 치중하느라 경영에서도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케이비 사태의 본질이 회장과 행장 간의 주도권 경쟁에서 시작된 만큼, 차기 시이오를 뽑을 때 반드시 낙하산 인사는 배제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외부 출신 인사들이 초유의 조직갈등을 드러낸 만큼 이번에는 내부 출신에게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외부 인사가 오더라도 투명하고 공정한 선임절차를 갖추는 한편, 금융회사 3년 이상 종사 경력 등 자격요건을 엄격히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대통령이 낙하산 근절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는 게 중요하며, 주주들도 낙하산 인사가 반복되는 문제에 더 이상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회장-행장 옥상옥 구조…책임·권한 분명히 해야

■ 옥상옥 지배구조

지주사가 자회사(은행 등)에 대한 컨트롤타워 기능을 상실한 지배구조도 수뇌부 간 갈등을 키우는 데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케이비금융지주 자산의 90%는 은행이 차지한다. 그런데도 지주와 은행이 각각 이사회를 두는 '옥상옥'식 의사결정구조를 갖추고 있는데다 지주 회장과 은행장 간의 역할분담도 모호해 '줄'(배경)이 다른 낙하산 시이오들 간의 갈등을 증폭시켰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윤석헌 숭실대 교수(금융학부)는 "케이비의 경우는 지주 회장과 행장을 겸직하고 지주의 완전 자회사는 사외이사를 없애거나 1~2인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모색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겸직을 하지 않더라도 지주 회장이 실질적으로 행장을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지주사가 자회사에 부당한 경영간섭을 하지 않도록 하되, 감독 및 책임 권한을 분명하게 줘야 불필요한 내부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제안도 뒤따른다.

또다른 제왕적 권력집단이 된 사외이사들에 대한 책임론도 나온다. 특히 이번 주전산기 교체 갈등에서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은 감시자의 지위를 넘어서 경영판단을 주도하는 월권행위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감원·금융위 엇박자에 오락가락…기구개편 빌미■ 무능한 금융당국

지난 5월 이건호 행장이 금감원에 주전산기 교체 관련 특별검사를 의뢰한 이후 금융당국은 넉달여 동안 이번 사태를 끌어오면서 화를 키웠다. 이사회 해임으로 강제 퇴출되기까지 임 회장이 사퇴를 거부하며 '버티기'를 고수한 것도 금융당국의 무능함이 빌미를 줬다. 주전산기 교체 관련 동일한 제재 안건을 두고 금융당국 안에서 경징계와 중징계를 오락가락하는 세 가지 판정이 나온데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엇박자도 극심했다. 특히 사태 초기에 "중징계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며 한발 빼던 금융위는 이달 들어 직무정지라는 중징계로 입장을 갑작스레 바꿨다.

오락가락 제재가 계속되는 동안 임 회장이 전방위 로비에 나섰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금융당국이 독립적 판단을 상실한 채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팽배했다. 그 결과로 금융회사 제재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이 한층 높아졌고 금융당국의 권위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금융감독 담당자의 눈치보기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재량권과 책임 추궁을 동시에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원님 재판'식 제재를 개선하기 위해 아예 금융당국에서 독립된 제재기구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전 교수는 제안했다. 더 근본적으로는 금융위가 금융산업 진흥과 금융감독을 동시에 다루고 있는 모순을 바로잡기 위해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감독기구 개편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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