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서 번성 중인 대리모 시술 (하)] "대리모가 낳은 아이는 법적으로 대리모의 자녀"

정리 입력 2014. 9. 17. 07:26 수정 2014. 9. 1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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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전문가 좌담회

대리모를 통한 대리 임신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린다. 불임(난임) 부부의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그 실현 방식에 대해서는 일치된 의견을 찾기 어렵다. 다른 나라들의 사정도 일정한 철학 없이 제각각이어서 한국식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정부가 명확한 실태 조사를 하고, 이에 따른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는 게 급선무라는 데는 모든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본사 회의실에서 '대리모의 실태와 대책'을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 김명희 연구부장, 연세대 보건대학원 이일학 교수,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최경석 교수 등 의학·윤리학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대리모의 실태와 법제화 방향부터 인간성의 본질까지 다양한 화두를 놓고 심도 있는 논의가 오갔다. 일부 쟁점에서는 격론도 있었지만 대리모 시술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는 입장이 같았다.

대리모의 실태

△최경석 교수=현재 법규는 대리모에 대해 금지도 허용도 하지 않고 있다. 명시적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시술 사실 자체를 남에게 알리길 꺼려 공공연하게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법의 맹점 속에서 대가성 있는 대리모 거래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현실적으로 비상업적 대리모를 구하기는 어려우니까.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

△김명희 연구부장=실태 파악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대리모뿐 아니라 불임시술 자체에 대한 관리가 미흡하다. 대부분 국가는 불임시술을 정부가 등록해 관리한다. 미국은 시술별로 질병관리본부에 보고해야 한다. 한국은 그런 제도가 없다. 대리모 시술을 원하는 사람은 불임 환자 중에서 나온다. 불임 환자 관리도 안 되는 마당에 대리모 추적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일학 교수=대리모 의뢰자 대부분이 합법적인 불임치료를 받은 뒤 시술을 고민할 것으로 본다. 통계 자료로 불임 부부 수를 파악한 뒤 조사에 나서면 된다. 생명윤리법에 따라 배아를 만들 경우 장부를 작성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장부 내용 자체는 신고가 되지 않는다.

△김 연구부장=1년에 한 번 보고만 하도록 돼 있다. 병원당 몇 개를 사용했는지만 보고한다. 누가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전혀 추적되지 않는다. 시험관 아기나 동결배아도 보험처리되지 않아 역시 파악이 불가능하다.

△최 교수=국내 의료기관의 개입 없이 상업적 대리모 시술은 불가능하다. 상업적 대리모에 대한 법규가 없더라도 시술 과정에서 불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국내법에서는 출산한 여성을 어머니로 인정한다. 대리모 시술을 받을 경우 법적으로는 해당 대리모가 어머니가 된다. 이걸 의뢰자의 자녀로 하려면 정상적 절차로는 매우 까다롭다. 결국 병원 묵인 하에 진료기록 조작이 행해지는 만큼 사실상 불법이 이뤄진다.

△이 교수=최근 논문들에 따르면 대리모 출산에 우리 국민 상당수가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의뢰자가 거부감을 갖고 있어도 의사가 "임신이 어려우니 다른 방법을 사용해 보자"고 길을 터준다면 불임 부부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힘들 것이다. 결국 대리모 시술 같은 변칙적 수단을 제공하는 의료진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김 연구부장=대리모는 단순히 불임, 난임의 문제만이 아니다. 외국에서는 경력 단절을 우려하는 여성이 금전적 기회비용을 잃지 않으려 '아기 공장'에 의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예를 들면 한 해 수억원을 버는 여성이 임신 때문에 일을 못하는 대신 1억∼2억원 정도 들여 대리모 시술을 하면 경력 단절도 없고 금전적 손실도 크지 않다. 선진국에서는 불임 자체보다 이런 문제에 더 관심이 집중된다.

△이 교수=어떻게 보면 대리모는 장기 기증과 비슷하다. 자궁의 기형이 심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 친척의 자궁을 빌려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궁 대리모에 대한 비난이나 도덕적 문제 제기는 장기 기증과 다른 차원이다. 결국 '출산과 양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더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담겨 있다.

△최 교수=마이클 샌델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지배욕을 지적하고 반성을 촉구했다. 생식 문제까지 기술이 도입되면서 통제 불가능한 문제들이 나온다는 거다. 메시지는 매우 타당하다. 결혼을 통해 출산하고 난임이 있으면 적절한 치료를 받는 정도는 허용된다. 하지만 자연적 수정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해서 자궁에서 난자를 빼내면 그 순간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김 연구부장=최근 호주 부부가 대리모 의뢰를 했다가 기형아가 태어나자 아이를 데려가길 거부해 문제가 되고 있다. 대리모 시술 과정에서 이른바 '불량품'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기형아나 지진아, 질병이 있는 아이를 누가 책임지느냐가 문제다. 자연발생적 장애인에 대해서는 사회가 보살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원하는 부부의 욕망 때문에 생긴 이런 문제를 사회가 책임진다고 하면 거부감이 만만찮을 것이다.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이 교수=대리모 시스템의 피해자는 모두가 될 수밖에 없다. 브로커는 이익을 취하겠지만 당사자들에게 어떤 피해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우선 자궁 제공자인 제3세계 여성이 가장 큰 희생자가 될 것이다. 이들은 착취 대상일 뿐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한다. 아이 또한 마찬가지다. 이 아이는 대를 이으려는 부모의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형에게 골수를 이식해주려 태어난 시험관 아기에 대한 거부감과 다르지 않다. 버려질 우려도 있다. 출생 직후에만 유기 위험이 있는 건 아니다. '다섯 살이 돼도 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열두 살인데 국제중 진학을 못 한다'는 이유로 버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 연구부장=열 달을 배에 품고 낳은 아이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 데려온 아이는 다르다.

△이 교수=대리모 시술로 모성이 부성처럼 바뀌리라고 내다보는 시각도 있다. 자신이 품어 낳은 아이가 아니다 보니 모든 걸 품어주는 게 아니라 아버지처럼 아이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식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 교수=대리모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법을 통해 일정 부분 판가름을 해줄 수 있다. 특정 내용을 담은 계약은 금지하되, 허용된 시술은 허락하고 관리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판단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까지 관리해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겠느냐는 거다. 다만 성숙한 논의 없이 성급하게 법제화가 이뤄지면 국민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도 있다. 대리모에 대해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이런 방법도 있었네' 하며 시술을 고려할 수도 있다.

△김 연구부장=법 이전에 현황 파악이 중요하다. 대리모 시술이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그 실태 파악부터 시작해 인간 가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올바른지 돌이켜 봐야 한다. 왜 아이를 가지려는 건지, 인간을 마치 '바비인형'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한다. 맞벌이와 야근에 치여 온전한 양육 환경을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난임 비용 지원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거다.

합리적인 제도화 방안은

△이 교수=의외로 복잡한 문제가 있다. 상업적 대리모를 불법화한다 해도 대리모 자신이 '자의로 임신했다' '싱글맘으로 키우고 싶었다'는 식으로 둘러대면 처벌할 길이 없다. 각 당사자의 의도를 알고 계약서 등 금전이 오간 증거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런 증거가 없다면 직접 처벌은 어려울 것이다.

△최 교수=입법화한다면 '불임 부부에 한해 비상업적 대리모만 허용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상업 거래는 인권유린 가능성이 높다. 책임 소재도 명확해야 한다. 호주 부부의 경우처럼 아이 신분이 불분명해져서는 안 된다. 의뢰자가 책임지고 아이를 키우도록 해야 한다. 이 부분은 관리 입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교수=장기이식을 해도 금전 거래 가능성 등을 검토한다. 대리모 시술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현재 불임 치료는 비보험이라 사설 병원이 난립하고 있다. 이런 병원을 정리하고 일정 자격을 갖춘 기관에만 허가를 내줘야 한다. 이런 업무를 담당하는 위원회가 필요할 것이다. 이 정도가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본다.

△김 연구부장=여성성에 대한 여성 스스로의 입장은 꼭 짚어야 한다. 국가가 법률로 제한적 허용을 해도 여성계의 컨센서스가 없다면 결국 자궁의 도구화를 인정하는 셈이다. 여성의 자궁이 '배양기'와 다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애절하게 아이를 바라는 경우에 한해 이타적인 기증을 받는 경우에만 허용한다는 입장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그 고민을 유도하는 메시지가 법에 담겨 있어야 한다.

정리=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본보는 [음지서 번성 중인 대리모 시술] 시리즈를 연재했습니다. 앞서 보도한 기사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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