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세월호 사고 5일 전 보고를 보니..

이승철 2014. 9. 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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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과적과 안전 불감증 등의 이유로 침몰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증거들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고,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들을 구조하지 못한 어처구니 없는 이유들도 열거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각도, 정부의 안일한 행정이 세월호 사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려고 합니다.

세월호는 지난 4월 16일에 침몰했습니다.

그런데 사고 5일전인 4월 11일, 정부에서는 안전행정부 장관이 주관하는 안전정책조정회의가 열립니다.

15개 부처가 참여한 회의로, 이번 정권이 출범한 이후, 안전을 강조하는 정책 방향에 걸맞게 관련 기관들이 모여, 안전에 관련된 내용을 보고하고 공유한 뒤 대책을 마련하는 회의입니다.

지난 4월 11일 회의의 주제는 '행락철 안전관리 분야별 대책'이었습니다.

행락철을 맞아 사람들의 이동이 많아지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사고를 방지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당시 보고서를 입수해 기관별로 대책을 살펴봤습니다.

해수부는 '행락철 해양.

연안사고 안전대책'을, 해경은 '행락철 해양.

연안사고 안전관리 대책'이라는 제목으로 보고를 했습니다.

세월호 사고 5일 전에 이뤄진 보고.

묘한 위화감이 몸을 휘감았습니다.

보고 내용에는 사고의 개연성과 함께, 사고를 막을 수 있는 대책이 정리돼 있습니다.

해수부는 사고 방지 대책으로 "(연안여객선) 행락철 연악 여객시설(여객선, 접안 시설 등)에 대한 일제 점검 실시(지자체 합동) 및 종사자 안전 교육을 지속 시행"을 보고했습니다.

해경청은 안전저해 요인으로 ◇운항시간, 운항횟수 증가에 따른 운항 종사자 피로누적 및 졸음운항 우려 ◇항법위반 및 기상악화시 무리한 운항 등 부주의를 꼽은 뒤 대책으로 연안해역 3중(V-PASS-연안VTS-함정)관제와 함께, 운항종사자 안전 교육 및 안전 점검 실시, 선박별 전담 경찰관 지정 안전 관리 강화를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회의는 각 부처의 보고 가운데, 중요 사항에 대해 결과 보고를 작성하는데, 취재진이 입수한 보고에는 이렇게 실천 사항이 정리돼 있었습니다.

"여객선 사고는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지는 만큼,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며, 지자체에 지침을 시달해, 현장을 지속적으로 체크해야 한다" 하지만 각 부처는 어떻게 했을까요.

안전행정부, 해수부, 해경청 등에 관련 후속 사항을 질의했습니다.

당시 회의 후 어떤 조처를 취했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부서도 회의 내용을 전달하거나 실천한 실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자체에 간단한 공문조차 한 건 보낸 부서가 없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회의는 회의일 뿐 실제 조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자료 검토를 모두 끝낸 후,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습니다.

정부의 안일함을 탓하기에는 그 결과가 너무 커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현장 점검까지는 실시되지 못하더라도, 한 사람의 공무원이 공문이라도 작성해 각 현장에 경고음만 날렸다면, 전화라도 한통 걸어 주의를 환기시켰다면 사태는 지금과 같았을까? 세월호는 수학 여행객을 가득 태우고, 안갯속에서 무리한 운항을 떠났고, 종사자들에 대한 교육은 이뤄지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모두 해수부나 해경의 대책 보고 대로만 사전 점검이 이뤄졌다면 시정이 되었어야 할, 진행되지 말았어야할 사항들이었습니다.

세월호는 누가 침몰시켰을까요? 1차 당사자인 선원들의 책임을 묻는 것과 함께, 문제점을 알고도 사실상 방치한 관련 기관의 책임도 물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강한 의문이 드는 것은, 아쉬움을 넘어서 안타까움이 너무도 강하게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이승철기자 (neos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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