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 받지 않는 교육권력 '사학']비리 해임 후에도 '이사장 왕국'.. 매일 출근해 학교업무 지시

송현숙 기자 2014. 9. 2.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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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 사학법인 족벌운영 실태

서울 은평구 충암학원 이홍식 전 이사장은 2012년 이사 자격이 박탈(임원승인취소)됐다. 서울시교육청 특별감사에서 거액의 횡령과 회의록 폐기 등 34건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월 충암고 졸업 앨범 맨 앞면에는 그의 사진과 이사장 직책이 소개돼 있다. 거의 매일 출근하는 그는 학교에서도 이사장으로 불린다. 초·중·고 교장들을 수시로 불러 보고받고 중요한 결재를 직접 하며 작은 공사 하나하나까지 지시한다. 1999년에 이어 두 번째 이사장직을 박탈당한 이씨는 학교에 간여해선 안되지만, 충암학원은 여전히 그의 '왕국'이다. 충암고 행정실장을 맡고 있는 큰아들은 학교의 2인자다. 외부직책은 행정실장이지만, 안에선 '학원장'이라는 독특한 호칭을 만들었다. 졸업 앨범엔 이사장·학원장·학교장 순으로 소개됐다.

이사장직 해임에도 졸업앨범에 버젓이 지난 2월 서울 충암고의 졸업앨범 맨 앞에 실린 이홍식 충암학원 전 이사장. 이 전 이사장은 2011년 서울시교육청 특별감사 후 이사장 임원승인취소(해임) 처분을 받았는데도 올해 초 나온 졸업앨범에 '이사장'으로 소개돼 있다.

▲ 족벌 관여 법인 64%나 달해이사장의 배우자·자식 등 2~3대 거쳐 친·인척이 장악이사회 독단 막는 개방이사제, 친·인척으로 채워 역할 못해

서울 중랑구 송곡학원에는 유난히 왕씨 성의 교직원들이 많다. 송곡학원은 송곡대·송곡관광고·송곡고, 송곡여중·고 등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이다. 설립자는 송곡대 총장이고, 큰아들은 송곡관광고 교장, 둘째아들은 송곡고 교장, 둘째딸은 송곡여중 교장이다. 셋째딸은 송곡대 보직을 맡고 있으며 넷째딸은 송곡관광고 교사로 일하고 있다. 큰딸은 둘째아들에 앞서 송곡고 교장으로 있다가 금품 문제로 물러났다. 학원 전체로는 설립자의 사촌조카·손녀·며느리 등 다양한 친·인척이 20대 기간제 교사부터 교장·교직원까지 3대에 걸쳐 20여명이 일하고 있다. 송곡학원은 몇년 전 교회를 만들어 미션스쿨을 표방했다. 한 학교 관계자는 "교회가 학교의 비선라인처럼 운영되고, 교회에 감사헌금을 많이 내면 기간제 교사로 발령받는다는 소문까지 나돈다"며 "학교 곳곳에 '친·인척 라인'이 있다 보니 교직원들도 서로 입조심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2~3대에 거쳐 친·인척 족벌체제가 뿌리를 내린 사학들이 많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전국 861개 초·중등 사학법인의 족벌운영 현황을 살펴본 결과, 지난 3월 현재 설립자·이사장의 가족, 친·인척이 이사나 학교장으로 근무 중인 학교법인은 554개(64.3%)로 확인됐다. 59개교는 이사장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배우자 포함)이 학교장으로 근무 중이다. '바지 이사장'을 앉히거나, 행정실장 등 핵심보직까지 더 넓히면 학교 내 친·인척 보직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립학교법(54조 3항)은 교육과 재단운영을 분리해 학교운영을 독립적으로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가족, 친·인척의 이사·교장 보직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법 조항에 이사 정수의 3분의 2가 찬성하고 관할청 승인을 받으면 허용하는 예외조항을 둬 법 취지는 무력화된 지 오래다. 이사장 입김이 막강한 이사회에서 반기를 들 리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 영도의숙은 설립자의 아들 3형제가 3개교(영도중·강서고·영등포공고) 교장을 맡고 있다. 친·인척이 재단 내 2개 학교 이상의 학교장을 맡은 사학법인도 21곳에 이른다.

이사회의 독단적 운영을 막고자 둔 장치가 개방이사제다. 이사 정수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이사를 개방이사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인사로 두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개방이사의 추천·선임 방법·자격 요건과 기준의 구체적 사항은 정관으로 정하도록 해 이 역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정 의원의 분석 결과 이사장·설립자의 친·인척이 개방이사인 법인이 87개(10.1%)나 됐다. 사학법인의 전체 개방이사 2011명 중 54명(2.7%)은 이사장 본인이 겸직했고, 102명(5.1%)은 친·인척이었다. 친·인척이 아니더라도 전임 학교장, 교감, 동창회 관계자 등 '팔이 안으로 굽는' 인사들이 개방이사를 많이 차지하고 있다. 충남의 세신학원은 이사 9명 중 3명이 설립자의 직계비속이고, 2명은 재단 소속 대산중 교직원 출신이었다. 개방이사 3명 중 2명도 대산중 동창회장과 교직원 출신이었다. 한 사립학교 교사는 "친·인척들이 장악한 학교에선 학생보다 설립자나 이사장 집안을 위해 충성하려는 풍토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바른말 하는 교사들은 찍히기 마련"이라며 "학교나 학생들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한 만큼, 최소한 부정을 저질렀을 때는 학교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력한 규제책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송현숙 기자 s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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