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좋아지는 인터뷰]제주 할망 할방만 찾아다니는 유랑작가..정신지 '걸으멍, 보면, 들으멍..제주를 알다'

2013. 1. 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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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생활 십수년, 귀국 즉시 제주로 들어와, 일년도 채 되지 않아 거의 외국어라 할 수 있는 제주 언어로 제주 할망 할방만 인터뷰하며 사는 그녀의 힘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타고난 친화력, 뛰어난 언어 구사력에 있다. 그동안 해외에서 만나 친구가 된 독특한 캐릭터의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들은 누가 보아도 오직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있다. 정신지 또한 그렇다. 그녀 정신지가 세계인이 되어 만난 창의적이고 독특한 인생을 소개하기로 했다. 첫번째 인물로 정신지 그녀를 인터뷰했다. 다음부터는 정신지가 인터뷰어가 되어 여러분께 기분이 좋아지는 인물을 소개할 예정이다.

해외 이력이 독특하다는 말을 들었다. 당신은 언제, 왜 한국을 떠났는가? 그리고 목적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을 떠났다. 질풍노도 시기를 참고 버텨온 내 10대의 끝에 바늘로 점 하나를 찍고, 튀어 나갔다. 변하고 싶었고, 떠나야 변할 것 같았다. 그것은 수능시험장 정문 앞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도피로 보인 도박이었으나, 한편으로 긴 여행의 시작이었다. 수능? 보지 않았다." 당신의 해외 이력을 일일이 물어보기에 내가 아는 게 너무 없다. 연대별로 지역(국가와 도시), 목적, 무슨 일을 했는지 등등을 간략히 서술해 줄 수 있겠나?"2001년에 일본(나고야)으로 건너갔다. 시각디자인을 배우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다. 미술은 평생 취미로 하기로 마음을 먹고 장학금을 많이 준다는 국공립대학에 들어갔다. '국제문화학부'라는 곳에서 인문학을 짬뽕으로 배웠다. 선생님들이 젊고 국제적이라 자극도 많이 받았다. 공부를 제대로 하면 학비가 면제되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즐겁게 공부하고 국가대표로 놀았다.

그러다가 2004년에 첫 배낭여행으로 간 인도네시아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섬들을 돌아다니다가 만난 발리의 '비치보이(로컬서퍼 & 이주노동자)'들과 친해지면서, 관광지의 속사정에 눈을 떴다. 제주에서 자란 나인지라 공통점도 많았다. 그들의 사회에 관해 알아가며 인도네시아에서 살다시피 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다 보니 지식의 끈도 저절로 길어졌다. 그렇게 지역 문화에 빠져들다 결국 일본 최북단의 북해도에 있는 '북해도대학원'에서 박사과정까지 밟게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인류학자라 부르기 시작했으나, 나는 그저 연구비로 세상을 떠도는 유랑인이었다. 그러나 목적이 연구였으니만큼 맥 놓고 놀기만 한 건 아니다. 여행하며 돈을 '쓰는' 젊은이들과 여행지에서 돈을 '버는' 젊은이들이 공존하는 세상에 관한 논문을 썼다. 아르바이트로 학부생들에게 필드워크(현장실습)에 관한 지도를 하고, 재즈클럽에서 노래도 했다. 장애인 유치원, 유스호스텔 등에서도 틈틈이 일했다.

2009년에는 박사과정을 휴학하고 이탈리아에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학교에 시험을 쳤는데 운이 좋아 붙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한 뉴욕커와 눈 먼 사랑에 빠져, 다 때려치우고 뉴욕으로 건너가 2년간 살았다. 내 인생 최대의 성공이자 실패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사랑은 처절하게 끝이 났지만, 뉴욕이라는 엄청난 에너지가 내 여행의 끝자락에 결정적인 힘을 불어넣어 주었기 때문이다. '타인과 공존하되, 너 자신이 빛나는 타인이 되어라'는 교훈을 얻고 12년간의 타향생활을 일단 접었다. 가는 곳이 고향이다 말하며 살아왔지만, 나는 지금 제주를 새롭게 여행중이다."

해외 여정 가운데 특별히 당신의 삶에 영향을 끼친 곳, 사람, 활동이 있나? 그것이 오늘의 당신 삶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나.

"나의 후원자이자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일본의 '그녀'. 그녀의 말대로 나는 미술을 취미로 돌리고 문학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고, 그것이 내 삶의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그녀와 함께 살았던 시간 속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웠다. 이야기를 하고 듣는 것에 관한 본질적인 부분은 그녀가 가르쳐준 것들이다. 그리고 발리의 비치보이들로부터는 '기다리는 법'을, 뉴욕의 노숙자들에게는 '뭘 해도 당당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

학부에서 인문학을 하고 대학원에서 지역사회학을 하고, 또 다시 박사과정을 문학으로 했다. 지역사회와 문학의 연관성이 얼핏 보이는 것 같은데, 구체적인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당신에게 문학과 지역사회 전공은 어떤 의미로 연결되는가.

"문학 대학원을 다녔지만, 그곳은 조금 특별했다. 인문계와 자연계의 찌꺼기들이 다 모인 곳이었다. 어떤 이는 역사를 연구하고, 그 옆방에서는 곰에 관한 연구를 한다. 쿨한 곳이다. 사람 사는 세상(지역사회)이 늘 키워드다. 사람이 숲을 망가뜨려서 먹이가 없는 곰들이 사람 세상으로 내려와 해를 끼친다. 그러니 사람이 해결해야 하고, 그러려면 '글'이 필요하다.

가족과 떨어져 산다는 것은, 그것도 어린 나이에 그렇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부모가 세상 어른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는 좋은 기회다. 하숙을 하며 남의 부모와 살았고, 기숙사에서 남이 기른 자식들과 살았다. 그러면서 조금이나마 나를 보는 눈이 생겼다. 내가 어떤 자식이고 내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장점을 배우고 단점을 인정하니 살기 편해졌다. 하지만 많이 울었다." 때때로 공허했을 것 같다. 그럴 땐 어떻게 했나? 그냥 내까려 주었나? 아니면 나름 돌파 노하우를 만들었나."공허함은 어딜 가도 지긋지긋하게 나를 따라다닌다. 우울증에 걸려 한 삼 개월 집안에만 쳐박혀 있기도 했다. 하지만 운이 좋아 좋은 스승을 만났는데, 스승은 내게 '낮잠을 자더라도 나가서 자라'하셨다. 책을 버리고 밖으로 나가니 별별 사람들이 오만가지 방법으로 살고 있었다. 나라고 못 살겠느냐." 한국에 왜, 언제, 무슨 일로 돌아왔나."인과응보다. 남들보다 조금 어린 나이에 집 밖으로 나가 보고 들은 건 많은데, 늘 배가 고팠다. 아마 깊이에 관한 허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 배고픔이 '김치 먹고 힘내'라며 나를 집으로 불러들였을 것이다." 제주로 들어간 이유는?"내가 여섯 살 때 가족이 서울에서 제주로 이민 왔다. 삼다수에 목욕을 하고 매일 한라산을 보며 자란 나다. 물론 늘 '육짓것(이방인)'이라 불리웠지만, 제주가 고향이고 고향에 숙제가 있는 것 같아 제주로 왔다.

제주의 소리에 '정신지의 걸으멍 보멍 들으멍'을 연재 중이시다. 어떤 동기로 그 일을 하게 되었는가.

"걷고 보고 듣는 일이 지난 십여 년 내가 해 온 일이라, 작년에 제주에 돌아와서도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사람을 만났다. 그러는 와중에 노인분들 이야기가 혼자 듣기 아까워 공유할 방법을 찾다가 지인의 소개로 연재가 결정되었다.

당신은 제주를 잘 아는가? 이제 얼마나 되었다고 제주말로 할망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단 말인가.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4개국어를 한다. 일본어를 생존을 위해 했고, 영어는 재미로 했다. 인도네시아어는 하다 보니 늘었고 나머지 하나가 한국어인데, 좀 멋지게 '제주어'로 하기로 작정했다. 표준어, 그거 재미없지 않나? 하지만 제주어는 듣는 거야 익숙하지만 하는 것은 쉽지않다. 하지만 할망이 부르는 노래라 생각하고 따라 부르다 보면 는다. 그 노랫 가락 속에 제주의 속 살이 있다.

그 일이 당신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한마디로 보물찾기다. 70, 80년을 살아오신 할망 하르방들과 이야기를 해 봐라. 여행을 해서 세계관이 넓어질 수도 있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 세계관에 깊이가 생긴다. 경험하지 못한 '곳'을 찾아 여태껏 달려왔다면, 지금 나는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여행중이다." 당신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잘 거는 성격인 모양이다. 친화력은 어디에서 나왔나?"중학생 때 혼자 전국 일주를 한 적이 있다. 가겠다 했을 때 아버지가 '둘이 갈 거면 치워라' 하셨다. 제주에서 배 타고 부산을 거쳐 서울, 문산, 강릉 등을 떠돌고 부산을 거쳐 되돌아 간 30일 간의 국토대장정이었다. 꼬마 혼자 걸으니 세상이 나를 많이 도왔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 말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법을 학습한 귀중한 여행이었다. 친화력은 꼬마의 생존전략이다." 당신은 문화 예술을 다방면으로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신이 즐기는 삶의 콘텐츠를 말해달라."누군가와 같이할 수 있는 것을 잘 즐기기 위해서, 혼자 있는 것에도 익숙해져야 한다. 혼자 있으며 하기 쉬운 일이 예술이고, 그것을 같이 하면 문화가 된다. 홀로 파되 같이 마시는 우물이 내 삶의 콘텐츠다." 당신의 궁극의 꿈은 무엇인가?"할망이 될 때 즈음, 작은 스쿨 버스를 장만해서 멋진 공간으로 개조, 그 안에서 살면서 여행하고 싶다. 정착과 이동,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들, 만나 온 사람들과 만나 갈 사람들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균형 있게 살아가는 것이 내 꿈이다. 꿈도 참 크다." < 시티라이프 > 에 '기분이 좋아지는 인터뷰'에는 어떤 사람들을 등장시킬 예정이신가?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독자의 기분을 좋아지게 만들 수 있는가?"15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 왔지만, 또 많은 사람을 스쳐 오기도 했다. 인터뷰에는 그렇게 만나 오고 스쳐온 인연들을 등장시키고 싶다. 별 곳에서 별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 독자들을 달리는 나의 스쿨버스에 태우고, '기분좋게 살짝!' 그들 곁을 같이 스쳐 지나고 싶은 바람이다." [글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정신지(인터뷰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63호(13.01.29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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