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을' 감정노동자.."속은 부글부글, 겉으론 웃는다"

김유경 기자 입력 2014. 8. 30. 07:01 수정 2014. 8. 3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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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딩블루스 시즌2 "들어라 ⊙⊙들아"]감정노동자 호텔리어의 애환

[머니투데이 김유경기자][편집자주] '⊙⊙'에 들어갈 말은, '상사'일수도 있고 '회사'일수도 있습니다. 물론, 선배 후배 동료 들도 됩니다. 언젠가는 한번 소리높여 외치고 싶었던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독백형식을 빌어 소개합니다. 듣는 사람들의 두 눈이 ⊙⊙ 똥그래지도록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봅니다.

[[직딩블루스 시즌2 "들어라 ⊙⊙들아"]감정노동자 호텔리어의 애환]

삽화=임종철

나는 감정노동자다. 출근해서 유니폼을 갈아입는 순간부터 나는 하회탈을 쓰고 속마음과 정반대로 행동해야 한다. 전 남편의 결혼식 예약이 들어와도 웃으면서 상냥하게 준비해야하는 호텔리어이기 때문이다.

요즘 한 케이블TV에서 방송하고 있는 '마이 시크릿 호텔'의 내용은 내가 보기에는 과장된 측면이 거의 없어 보인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프로그램처럼 '감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도 나는 고객의 불만에 전적으로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호텔리어 5년차지만 나는 아직도 이게 가장 힘들다. 특히 블랙 컨슈머, 호텔에도 블랙 컨슈머가 있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할 때면 스트레스 폭발 직전까지 내몰린다.

로비 라운지에서 우리가 제공한 테이크아웃 커피를 무료로 받아간 투숙객이 있었다. 3시간 후 그 고객은 다시 호텔로 돌아와 다짜고짜 목소리를 높였다. 호텔에서 받아간 커피의 뚜껑에 이물질이 묻어있었다는 것이다. 그 고객은 이물질이 묻어있다는 문제의 커피 뚜껑조차 갖고 오지 않았다. 아무도 눈으로 보지 못한 일방적 주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번 따지지도 못한다. 정중하게 70도로 머리를 숙여 사과하고 공짜로 받아간 커피인데도 되레 두잔 값을 물어줬다. 이 고객은 한 술 더 떴다. 왕복 택시비까지 달라고 한다. 순간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내 지갑을 열어 택시비 2만원을 줬다.

예약실에서 근무하는 내 동료는 성희롱을 당하는 일이 다반사다. 예약 문의를 받다보면 목소리가 예쁘다거나, 만나고 싶다고 희롱하는 'X'들이 의외로 많다. 내 동료는 전화를 확 끊고 싶지만 수화기를 들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면서 "회사 규정상 그럴 수 없다"고 답한다고 했다.

무조건 화부터 내는 고객도 부지기수다. 호텔리어 7년차로 내 상관인 매니저는 "3년 전부터 이유 없이 화부터 내는 고객들이 유난히 많다"고 토로했다. 물질 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사회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고객들이 정황도 알아보지 않은 채 화부터 낸다는 것이다.

남들이 모두 고향으로 향하는 추석연휴에도 나는 정상 근무를 한다. 호텔은 공휴일이나 주말 근무가 당연하지만 추석 같은 명절에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것은 고통스럽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것은 우리 같은 호텔리어의 숙명이다.

체크인·아웃이 몰리는 경우나 주말 점심·저녁식사 시간에는 고객들이 몰려 3~4시간씩 계속 서서 일해야 한다.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뻐근해도 나는 계속 미소를 짓고 서 있어야 한다.

호텔에서 근무하면 호텔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식사를 하고 화려한 호텔에 어울리는 명품을 선호할 것이라는 오해를 받을 때도 많다. 속이 뒤집힌다. 나 같은 호텔리어들은 거의 대부분 매 식사 때마다 호텔 지하의 직원 식당을 이용한다. 겉보기에만 화려하지 호텔리어는 연봉도 생각보다 높지 않다. 명품은 그냥 바라보는 것으로만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작은 보람도 있다. 때때로 고객이 평생친구가 돼 주기도 한다. 실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근무한 식음료 지배인은 한 고객의 맞선 자리부터, 데이트, 상견례까지 지켜봤고, 결혼 후 성장한 자녀들과 함께 방문하는 고객 부부와 지금까지도 아주 가깝게 지낸다.

가끔씩 40~80% 저렴한 가격으로 가족들을 호텔로 초대해 서비스 받을 수 있는 것도 호텔리어가 되길 잘했다고 느낄 때다. 나는 올해도 추석 연휴가 끝나고 비번이 올 때 부모님을 모시고 호텔에서 1박을 지내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 생각이다. 커피 값에 택시비까지 요구하는 막무가내 손님도 가끔 등장하지만 그래도 나는 더 웃을 자신이 있다. 호텔리어는 나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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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유경기자 yu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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