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곡성, 李의 진심 통하고 野 자만에 등 돌렸다

이동현 2014. 8. 1.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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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정현 선택했나

"이번에 한 번만 손 잡아 달라" 간곡한 나 홀로 유세에 표심 변화

"野 25년간 지역발전 외면 신물, 비리전력 후보 사과조차 없어"

'順天報恩(순천보은), 하늘처럼 받들고 은혜를 갚겠습니다.'

31일 전남 순천 시내에는 7ㆍ30 재보선에서 승리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내건 당선사례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렸다. '하늘처럼 받들겠다'는 말은 이 의원이 선거운동 기간 내내 순천시민들과 곡성 군민들을 만나면서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다. 그런 진심이 통했는지 그는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1988년 이후 보수여당 후보로는 처음으로 광주ㆍ전남 지역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7대와 19대 총선 때도 광주 서을 지역구에 출마했지만 번번이 지역주의 벽 앞에서 좌절했던 이 의원이 선거혁명을 일궈낸 비밀은 무엇일까.

정쟁만 이어진 야당 텃밭 25년 신물

재보선 뒷날 순천과 곡성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선거운동 기간에 붉은색 등산조끼를 걸치고 비바람을 맞아 가며 자전거를 탄 채 '나홀로 유세'를 하던 이 의원을 떠올렸다.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 죽도록 부려먹다 못하면 다시 쓰레기통에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 제 손 한번 잡아달라"며 읍소하는 그에게 유권자들은 변화의 바람을 느꼈다고 했다. 순천 역전시장에서 만난 정순례(60)씨는 "한번만 손 잡아달라고 자꾸 그러는데, 그만 짠해서 엄마들이 다 넘어가버렸어"라고 말했다.

순천과 곡성 시ㆍ군민들은 야당 25년에 신물을 내고 있었다. 특히 서갑원 전 의원과 노관규 전 시장의 해묵은 갈등과 반목에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다. 최모(46)씨는 "서 전 의원은 비리 전력이 있고 그것 때문에 재보선이 실시됐는데도 사과 한 마디 없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당내 후보경선에서 탈락한 노 전 시장이 서 전 의원과 거리를 두면서 이 의원이 어부지리했다는 말도 들렸다. 자영업을 하는 이외섭(63)씨는 "서 전 의원은 두 번이나 당선시켜줬는데, 도대체 해 놓은 일이 뭐가 있냐"며 "새정치연합이 이번에 새로운 인물을 공천했다면 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보가 곧 당선'이라는 새정치연합의 선거공식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았다. 호남에서는 여당이나 마찬가지인 새정치연합이 지역발전은 외면하고 당선되면 유권자들을 우습게 본다는 것이다. 순천 장천동에서 식당을 하는 강중호(56)씨는 "야당 텃밭으로 25년 가까이 지내면서 지금은 보도블록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다"며 "정당이 정책이나 대안은 내놓지 않고 선거 때마다 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는 말만 떠드는 것도 이제는 신물이 난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40)씨는 "새누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새정치연합이 너무 못해서 진 것"이라며 "시급한 민생문제는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안 되면서 비리 전력자를 후보로 내세워 깃발이나 꽂고 보겠다는데 누가 표를 주겠냐"고 쓴 소리를 했다.

'박근혜의 입'이 건넨 '예산폭탄'

이 의원이 건넨 '예산 폭탄'에 거는 기대도 커 보였다. 이 의원이 집권 여당의 '힘 있는 정치인'인 만큼 '예산 폭탄' 공약이 지켜질 수 있다는 데 내심 기대를 거는 눈치였다. 청와대 정무ㆍ홍보수석을 거친 대통령의 최측근이 지역주의를 깼다는 감투를 쓰게 된 만큼, 박근혜 대통령이나 새누리당도 순천ㆍ곡성을 조금이라도 배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심리다. 직장인 박지호(40)씨는 "이 당선인이 이번에 약속한 공약을 지키지 못한다면 두 번 다시는 이곳에 발을 붙이기 힘들어 질 것이라고 새누리당도 생각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당장 이번 기회에 순천만정원이 국가정원으로 지정될 수 있다는 기대가 벌써부터 높다. 관련 예산도 늘어날 뿐 아니라, 최근 순천만정원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 수가 크게 늘 경우 지역상권도 덩달아 살아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순천 석현동에 사는 최춘화(47)씨는 "기업체도 새로 유치한다고 하고 순천대 의대 신설한다고 하니 앞으로 지역 경기가 살아날 수 있지 않겠냐"고 기대했다.

"한 번 만 손 잡아달라" 읍소전략 통해

이 의원의 정성과 진정성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유권자들도 의외로 많았다. 시민들은 암 투병 중인 이 의원의 아내 김민경씨까지 선거운동에 팔을 걷어붙인 모습에 "짠했다"고 했다. 매일 새벽 교대 근무에 나서는 택시기사들이 찾는 가스충전소를 시작으로 대중목욕탕, 전통시장 등을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 다니는 이 의원의 선거운동을 "애절하다 못해 처절했다"고 혀를 차는 시민들도 있었다.순천에서 만난 택시기사 김모(38)씨는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인데,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손 한번 잡아달라'고 하는데 마음이 쓰일 수 밖에 없지 않겠냐"며 "다른 택시기사들도 처음에는 반반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이 당선인 쪽으로 더 쏠렸다"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는 이모(43)씨는 "이 당선인이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 때도 정말 열심히 하지 않았냐"며 "그때만큼만 열심히 한다면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전한 4년 임기의 국회의원이 아닌 2년 임기의 재보선이라는 점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순천 조곡동에서 만난 최명수(70)씨는 "임기 4년짜리 국회의원 선거였다면 안 됐을 것"이라며 "순천을 발전시키겠다고 하니 1년 10개월짜리 국회의원 없는 셈 치고 기회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진보당 변수와 소지역주의

이 의원의 선거혁명 역사는 순천이라는 지역적 특수성도 한 몫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순천은 인근에 광양세풍ㆍ율촌 산업단지 등의 배후도시 성격이 강해 민주노동당과 통진당 등 진보정당 지지층이 강하다. 이번에도 통진당 이성수 후보가 5.96%를 득표하면서 새정치연합의 표를 잠식했다.

순천시의 경우 원주민이 40%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외지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는 인구구성의 요인도 이 의원에게 유리했다는 평가다. 순천시에서 만난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전통적인 호남 사람들과 달리 외지인들은 도시발전에 대한 기대에 맞춰 진보와 보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담양ㆍ구례와 한 선거구로 묶여 있던 곡성이 19대 총선부터 순천과 연결된 점도 이 당선인으로서는 좋은 기회가 됐다. 선거인 수만 놓고 보면 순천이 21만5,000여명으로 곡성(2만6,000여명)보다 8배 이상 많아 소지역주의가 작동할 경우 곡성 출신이 이 당선인에게 불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지인 비율이 높은 순천에서는 소지역주의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 대신 곡성에서는 이 당선인이 몰표(득표율 70.6%)를 받음으로써 선거 승리의 디딤돌을 놓을 수 있었다.

순천=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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